재건축 시공사-조합, 공사비 변동분 반영 방법 놓고 '동상이몽'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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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 공사비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나"
건설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비사업장에서 공사비에 이를 반영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조합과 시공자간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물가와 건설공사비물가 중 상승률이 작은 지수를 기준으로 물가를 반영했지만, 최근 상승폭이 더 큰 건설공사비물가를 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건설사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통상 정비사업 시공자는 착공일 이후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서울시 정비사업 표준계약서상 착공 이후 공사비 변경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착공일 전까지는 공사비 인상이 가능하다.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들은 철거를 마친 후 착공에 들어가기 전 시공사와 협의해 공사비를 확정한다.
1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현장은 오는 7월로 예상했던 착공이 늦춰질 전망이다. 재개발을 통해 총 2451가구가 들어서는 이 단지는 지난 2019년 5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이미 이주 및 철거가 이뤄졌다. 일반분양 전 마지막 단계인 착공을 앞두고 있었는데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중단 원인은 시공사인 현대건설과의 본 계약이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대조1구역 공사비로 3.3㎡당 528만원을 제시했는데, 이는 대조1구역에서 시공자 선정 입찰공고를 낼 당시 제시했던 3.3㎡당 430만원과 비교해 98만원 오른 금액이다. 시공사 측이 제안한 혁신설계와 인상된 자재비 등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지난 1월 GS건설이 장위4구역과 체결한 공사비 3.3㎡당 465만원과 비교해 공사비가 과하다며 일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나왔다. 공사비는 잠정적으로 517만원에 합의된 상태다.
그러나 물가반영 기준이 문제로 남아있다. 현대건설은 계약서에 제시한 착공기준일보다 실착공일이 늦어질 경우, 지연되는 기간동안 건설공사비지수 인상분만큼 공사비를 올리겠다고 했다. 통상 시공사들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공사비지수와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중 증가율이 낮은 지수를 기준으로 공사비를 정하거나 아예 실착공일까지 공사비 조정을 하지 않기도 하는데, 현대건설은 건설공사비로 못박은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하기 위해 통계청이 작성하는 지수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직접공사비를 대상으로 재료와 노무, 장비 등 세부 투입자원에 대한 물가변동을 추정하는 지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통계를 작성하며, 공공 건설공사의 공사비 산정과 물가변동에 의한 계약금액 조정을 위한 기초자료로 쓰인다.
두 지수의 조사대상 품목이 다른 만큼, 지수 변동폭에도 차이가 있다. 올해 3월 건설공사비는 1년 전과 비교해 14% 올랐다. 최근 자재값이 급격히 오르는 바람에 이를 반영한 건설공사비지수도 오른 것이다. 대조1구역을 예로 들면 현대건설이 제안한 공사비 528만원이 건설공사비지수에 맞춰 오른다고 할 때, 사업이 1년만 지연돼도 3.3㎡당 공사비가 74만원이 증가한다. 만약 같은기간 4.1% 오르는 데 그친 소비자물가지수를 따를 경우 사업지연에 따라 증가하는 3.3㎡당 공사비는 22만원 수준이다.
대조1구역의 한 조합원은 “지난 1년간 설계변경과 계약내용 변경 등으로 조합원이 부담해야하는 공사비가 이미 7000만원 가량 올랐다”면서 “그런데 착공이 지연되면 건설공사비 기준으로 물가상승분을 반영해 공사비를 높이겠다고 해 비용이 더 들어가게 생겼다”고 했다.
오는 18일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있는 이문4구역(3720가구 건립)에서도 건설공사비지수 관련 문제가 불거졌다. 이곳은 1차 입찰 당시 롯데건설이 단독으로 참여해 유찰이 된 후, 2차 입찰에 롯데건설과 현대건설이 컨소시엄을 이뤄 단독으로 참여했다. 1~2차 모두 단독응찰로 인해 유찰되자, 조합 측은 도정법에 따라 수의계약으로 전환하기 위해 총회 의결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시공자인 롯데-현대건설 컨소시엄 측이 대조1구역 사례와 마찬가지로 건설공사비지수를 기준으로 물가인상분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심지어 시공자 측은 2차 입찰 기준일인 지난달부터 실착공일까지 물가인상분을 전부 반영할 것을 요구해 논란이 더욱 커졌다. 통상 입찰 당시 제안한 착공기준일(예상착공일)보다 실제 착공일이 늦어질 경우에만 사업지연에 따른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 기준일부터 물가인상분을 반영하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면서 “아무리 빨라도 계약 후 착공까지 4년은 걸리는데, 이 기간동안 공사비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했다.
계약 후 착공까지 4년이 걸린다고 가정하고, 매년 14%씩 물가가 오른다고 하면 공사비는 50% 이상 오른다. 2차 입찰에서 조합 측이 제안한 공사비는 3.3㎡당 520만원인데, 시공사 요구대로 공사비 인상분이 반영되면 800만원 이상으로 오른다. 이 경우 현재까지 서울에서 공사비가 가장 비쌌던 사직2구역(3.3㎡당 770만원)을 뛰어넘게 된다.
시공사들도 나름의 속사정은 있다. 자잿값이 상승폭이 40~50%를 널뛰는 상황에서 연간 상승률이 4% 수준인 소비자물가지수로는 공사비 인상분을 반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1톤(t)당 80만원이던 10mm 철근값은 1년만에 113만원을 넘었고, 90만원이던 H빔 가격도 135만원까지 치솟았다.
대조1구역 시공사인 현대건설 관계자는 “계약 체결일 상황에 맞게 정한 것”이라면서 “최근 자잿값이 전례없이 급등하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이문4구역 주관사인 롯데건설은 “계약 내용을 확인해줄 수는 없다”면서도 “자잿값 인상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합원 입장에서 이런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워보인다. 아직까지 건설공사비 지수를 기준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사례가 드물 뿐더러 이를 수용할 경우 오른 비용을 감당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문4구역의 한 조합원은 “지금부터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면서 “적어도 물가상승에 대한 공사비 변동은 다른 사업장 수준으로 돼야한다. 물가상승 위험을 모두 조합원에게 전가하는 사업제안을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자잿값이 꾸준히 오르는 한 공사비기준을 둘러싼 조합과 건설사 측의 갈등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자잿값 인상 여파로 공사비 상승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정부차원에서도 관련 법령이나 계약예규를 조정하려는 상황”이라면서 “별도의 지침이 없는 한 시공사 계약은 사인간 거래이기때문에 공공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비용을 높이려는 건설사와 이를 막으려는 조합 간의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온정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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