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외 원전 수주 준비 어디까지 왔나(Feat. 체코 원전)

 

세계 최고수준 원전건설 기술… 체코 두코바니서 재현한다

2009년 ‘바라카 신화’ 다시 한번…韓·美·佛 3파전

 

8조원 규모의 가압경수로 건설

수주 성공땐 차기 사업에 유리

유럽 진출의 발판 삼게될 수도

 

   지난 18일 오후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버스로 2시간가량 이동해 도착한 두코바니시(市).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르제비치시에서 남동쪽으로 불과 30㎞ 떨어진 이 도시에는 체코 최초이자, 체코 총 전력 소비량의 20%(연간 15TWh)를 생산해 내는 두코바니 원자력 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126㏊에 달하는 두코바니 원전 부지 가장자리 4개의 냉각탑 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밀밭이 나타나자, 이리 베즈덱 체코전력공사(CEZ) 언론담당 헤드는 “1200㎿ 규모의 가압경수로 원전 1기가 추가로 지어질 자리”라고 소개했다. 탄소중립·에너지 위기 극복의 방편으로 각국의 원전 회귀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사업비 8조 원이 투입되는 이번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사업권을 둘러싸고 한국(한국수력원자력), 미국(웨스팅하우스), 프랑스(프랑스전력공사·EDF)가 벌이는 불꽃 튀는 3파전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원전수출 걸림돌이던 ‘탈원전’

尹정부서 폐기뒤 신뢰도 상승

美·佛 상대하려면 총력전 펴야

 

한수원, 현지화 노력 높은 평가

 

한국 해외 원전 수주 준비 어디까지 왔나(Feat. 체코 원전)
두코바니=글·사진 박수진 기자

 

탈(脫)원전 백지화·원전 10기 수출을 공약한 윤석열 정부로서는 13년 만에 바라카 원전 건설 신화를 재현할 수 있는 첫 기회인 이번 수주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특히 체코 정부가 이번 프로젝트 외에 검토 중인 최대 3기의 원전 추가 건설 사업권 확보에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유럽 진출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원전 강국 재도약의 시험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프라하와 두코바니 현지에서 만난 체코 학계·산업계와 지역 주민들은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건설 경험·가격 경쟁력·적기 시공 능력·현지화 노력 등을 고려하면 한국은 최적의 파트너”라며 특히 “리스크(위험) 요인으로 작용했던 전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폐기됨으로써 약점이 사라지고 신뢰도가 제고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경쟁국인 미국과 프랑스가 정치·외교력이나 지역적 인접성을 무기로 공세를 펼칠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며 “대통령을 필두로 민관을 아우르는 총력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한국 해외 원전 수주 준비 어디까지 왔나(Feat. 체코 원전)
두코바니 원전 홍보관 외부 전경.

 

경제성·안전성·현지화 전략으로 공략 

2009년 수주에 성공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우리나라가 해외에 건설한 최초의 원전이자, 중동지역 첫 원전으로 체코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우수한 품질, 예산·공기(工期)를 맞추는 능력, 합리적인 가격 등이 바탕이 된 바라카 프로젝트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던 만큼 이번 두코바니 사업을 맡을 만한 역량을 갖췄다는 것이다. 체코 원전 종합 전문 기업 누비아 본사에서 만난 알레시 도쿠릴 이사는 “제시간에 계획된 예산으로 진행된 바라카 프로젝트는 유럽 국가들이 참조할 만한 훌륭한 사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원전 기업인 시그마그룹의 요세프 페를릭 이사회 의장은 “한국 원전 산업은 신뢰성 있고 안정적이며 기술적인 면에서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학계 평가도 비슷하다. 이고르 ?스 체코 기술대 원자력-물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체코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원전을 건설할 만한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팀 후원, 봉사활동 등 오랜 기간 추진해 온 현지화 노력은 한수원을 경쟁 기업과 차별화하는 대목이다. 두코바니 원전 지역 주민으로, 한수원이 후원한 아이스하키팀의 다니엘 슐라팍 매니저는 “한수원은 뒤늦게 현지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한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오래전부터 활발한 파트너십 활동을 통해 이미 지역 주민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로 신뢰도 상승 

새 정부의 탈원전 백지화 정책도 원전 수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 탈원전 기조가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체코 원전 업계와 주민들의 설명은 180도 달랐다. 원전을 줄이는 정책이 5년간 한국 원전 산업을 위협해 왔고, 새 정부가 원전 지원 강화를 약속하며 이 같은 우려가 해소됐다는 평가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09년 발전소 터빈 분야 선두 기업인 체코 스코다 파워를 인수해 설립한 두산 스코다 파워의 강석주 법인장은 “(한국 정부의) ‘국내외 원전 정책이 다른데 무슨 상황이냐’며 온도 차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도쿠릴 이사는 “국내적으로 국내 기술을 활용해 원전을 직접 짓지 않으면 신뢰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 정부가 새로운 원전을 건설한다고 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체코 국회의원 출신인 비체슬라프 요나시 두코바니 지역협의회 의장 역시 “(한국) 정부의 탈원전 입장이 한수원의 원전 사업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애 요소였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한국 해외 원전 수주 준비 어디까지 왔나(Feat. 체코 원전)

 

미(美)·불(佛) 상대하려면 총력전 펼쳐야 

체코 현지의 긍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원전 종주국 미국, 유럽 원전 강국 프랑스도 해당 기업 경영진이 체코를 방문하는 등 활발한 수주 활동을 펼치고 있어서다. 최근 한·미 정상이 수출시장 동반진출 등 원전동맹 강화에 합의했지만, 두코바니 사업의 경우 일단 국가별 단독 수주전이 이어지고 있다. 강 법인장은 “결정 전까지 매우 치열한 싸움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요나시 의장은 “미국이나 프랑스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나 유럽연합(EU)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는 만큼 정치·외교적인 면에서 한국이 열세일 수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에 제공할 수 있는 기술·비용 등의 측면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본입찰이 개시된 만큼 이제는 민관 수주 역량을 결집해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 수출은 대통령의 비즈니스(업무)”라며 “원전 기술만 갖고 수출이 되는 게 아니라 금융, 문화, 국방 등 총체적인 지원이 필수”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체코를 방문해 ‘탈원전 시즌 2’는 절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원전 수출 후 핵연료 공급, 부품 교체 등 사후 관리와 공급까지 보장한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 경쟁력과 사업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체코 정부와 소통하며 최적화된 사업 제안을 준비해 왔다”며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반드시 수주하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우리 원전의 우수성과 경제성에 대한 홍보와 외교적 수주 노력을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민관 공동의 ‘원전수출전략추진단’도 만들어 조속히 가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 경제부 / 차장 문화일보

 

[탈탈원전] 건설업계, 원전 건설에 다시 주력...차세대 원전 해체와 SMR 시공도

 

 

https://conpaper.tistory.com/10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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