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산행 일지 [김수종]

 

 

늦가을 산행 일지

2021.11.25

 

늦가을의 산 공기가 싸늘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머리가 허옇게 센 산행객 예닐곱 명이 우면산 둘레길 쉼터에 자리잡았습니다. 이들은 반세기 전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창생들입니다.

 

일행 중 한 사람(선생님)이 배낭에서 인쇄물을 꺼내어 두 장씩 나누어 줍니다. 중국 송(宋)나라 시인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생사자(生査子)라는 한시(漢詩) 40자와 중국어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해 놓은 병음과 번역이 달려있습니다.

 

선생님이 한시를 해설해 줍니다. 건조합니다. 그는 중국 문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장사를 하기 위해 중국을 자주 드나들며 중국어를 배운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일행은 그가 시키는 대로 읽어도 보고 해석도 해야 합니다. 한시든 중국어든 그가 일행 중 제일 잘 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구절 15자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今年元夜時(금년원야시)

月與燈依舊(월여등의구)

不見去年人(불견거년인)

 

"올해 정월 보름날에도 달빛과 등불은 예나 다름없는데, 지난해 정월 보름에 왔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구나." 이 싯귀가 소리없이 떨어지는 낙엽과 교묘한 공명을 일으킵니다. 설명이 끝나자 선생님은 작고한 대만 여가수 덩리쥔(鄧麗君)이 노래한 이 시의 유튜브 음악을 틀어줍니다.

 

 

 

산행객들의 공부는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일본어 시간입니다. 히라카나, 가타가나, 한자로 빼곡히 씌어 있는 종이가 테이블 위에 펼쳐집니다. 종이 상단에 '星(ほし)'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테의 소설 '별'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알퐁스 도테의 소설을 일본어로 읽다니 이 사람들이 대단한 일본어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전혀 아닙니다. 나는 몇 개의 토씨와 접미사만 익숙할 뿐

 

산중 공부

 

거의 모르는 말들입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읽었던 소설이니 줄거리를 알고 있고 한자 단어가 많아서 퍼즐 풀듯이 내용을 맞춰갑니다. 게다가 한글 번역이 한 쪽에 붙어 있으니 일본어를 무시해도 됩니다.

 

사실 선생님이 섭섭해할까 미안해서 교재를 들여다볼 뿐이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머리에 남는 일본어는 없습니다. 딱 하나 그날 내가 배운 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단어는 '星'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한자어만 보면 히라카나 'ほし'와 밤하늘의 별이 연상되니 나름 대단한 성공입니다. 한자가 없이 히라카나로만 척 알아볼 수 있는 일본어 단어는 50개가 안 될 것입니다.

 

40분쯤 걸리는 한시와 일본어 공부가 끝나면 점심 시간입니다. 메뉴는 각자 들고 온 김밥이나 컵라면입니다. 숲에서 먹는 컵라면이 참 맛있습니다. 선생님의 부인이 동행하는 날이면 방울토마토 몇 개씩 배급됩니다.

 

점심이 끝나면 일행은 또 걷습니다. 사당역 근처의 둘레길 내리막에 'MOA'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여기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굿바이하는 게 관행이 되었습니다. 바리스타이자 여주인이 그날 산행객 숫자에 맞춰 카페라테를 만들어줍니다. 그녀가 내미는 커피값 청구서에는 한두 잔 값이 할인되어 나옵니다. 이심전심의 거래입니다.

 

 

한 해 54주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우면산 둘레길 걷기는 계속됩니다. 어느 날 누가 "오늘은 희망탑에 올라가자"고 제안하면 우면산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참가자는 5명에서 10명까지 매번 다릅니다. 나는 출석율이 안 좋은 편에 속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판쳤던 지난 2년 동안은 자주 나가 어울렸습니다. 최근 김포시로 이사해서 전철을 하루 여섯번 갈아타야 하니 그게 고민입니다.

 

이 산행그룹이 잘 유지되는 것은 리더, 즉 선생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오충일입니다. 해병대로 월남전에 참전해서 죽을 고비를 겪었던 그는 친구들 일이라면 솔선해서 앞에 나섭니다. 1970년 대 종합상사 사원이 되어 일본에서 근무한 후 오퍼상을 창업하여 조그맣게 사업을 벌였습니다. 일본 사업가와 친교가 깊어 중국에서 만든 일본 브랜드 제품을 지금도 수입하여 판매합니다. 그래서 그는 일본과 중국을 제집드나들 듯했습니다. 일본어는 원래 잘했고 필요에 의해 중국어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동창생들은 1990년대 중반에 달음질치듯이 연주암까지 올라가다가 2000년쯤엔 헬리콥터장으로 목표가 낮아지더니 차츰 왕바위로 내려섰고 7, 8년 전부터 우면산 코스로 바꿨습니다. 나이 따라 고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오 사장이 제안해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산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는 해외여행이 유행하던 때라 일본과 중국을 여행할 때 써먹자며 공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학 때 또는 퇴직 후 구청복지관에서 일본어나 중국어를 잠시 배운 사람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산행교실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시작할 땐 여행용 일본어나 중국어를 하다가 쉽게 풀어쓴 '삼국지'를 교재로 2년가까이 공부했다고 합니다. 오 사장의 권유로 내가 참여하고 보니 '홍루몽'을 산행할 때마다 한 페이지씩 읽고 있었습니다. 오 사장은 교재를 구입해서 나눠주고 중국 노래나 일본 엔카 유튜브를 보내 주는 등 보통 열심이 아닙니다. 좋은 리더 한 사람 덕분에 산행객들은 일주일마다 행복한 하루를 충전합니다.

 

나이가 들면 마음에 맞는 친구가 절실히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이렇게 써먹을 것 같지도 않는 공부를 하며 산행을 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지인들이 속절없이 세상을 하직하거나 동년배 또는 후배들이 낙엽처럼 떨어지는 걸 보면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가슴을 채웁니다. "지난해 보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구양수의 싯귀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불면증이 심하다는 나의 호소에 의사가 처방을 해줬습니다. "몸을 피곤하게 움직여 보십시오. 햇볕을 많이 쬐십시오." 걸을 수 있을 때 햇볕을 받으며 걷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유칼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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