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의사의 한마디 [김수종]

 

 

 

그 장의사의 한마디 [김수종]


그 장의사의 한마디
2022.05.10

얼마 전 증조할머니 산소를 장의사(葬儀社)에 맡겨 이장했습니다. 접근이 어려운 야산 깊숙이 있던 산소를 가족 묘지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조상의 묘소를 파헤치고 유해를 수습해 옮기는 것은 자손들에겐 여간 무거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이 트는 새벽에 장의사(葬儀師) 일행과 함께 산소에 도착해서 파묘를 시작했습니다. 증조할머니는 100여 년 전에 타계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여서 유해가 어떤 상태인가 생각하며 지켜보았습니다. 땅을 한참 파내던 장의사가 삽을 세우고 손에 호미를 들고 조심스럽게 흙을 긁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유해를 감지한 것입니다.

유해는 너무 오래되어 두개골, 다리뼈, 치아만 남아 있었습니다. 치아가 마치 옥수수처럼 가지런히 흙 속에 묻힌 것을 보고 증조할머니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옛날에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장의사는 다리뼈 치아 두개골 순으로 유해를 수습했습니다. 그는 두개골이 보이자 흙을 털어낸 후 양손으로 감싸 쥐었습니다. 그리고 살짝 자신의 가슴에 가까이 대면서 마치 연극배우가 독백하듯이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얼굴이 자그마해서 참 예쁘시네요."

 

 



멍하니 유해 수습 장면을 바라보던 나는 장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남의 시신을 수습해주는 일을 하는 장의사로서 어쩌면 직업적인 립 서비스였을 수도 있으나, 직업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태도와 말투가 너무 진지했습니다. 그것은 유해에 손을 대는 장의사로서 유해의 혼백에 대한 외경과 위무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종의 주문이었을 듯합니다.

나의 DNA가 생성되기 훨씬 이전에 일생을 살았던 증조할머니 시대를 잠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고종이 즉위할 즈음에 태어나서 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사망했으니 증조할머니는 조선시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장의사의 한마디가 갑자기 백골이 진토가 되어버린 증조할머니를 오늘의 시점으로 불러들인 듯하였습니다.  증조할머니도 기분이 좋아서 배시시 웃을 것 같다는 환각을 아주 짧은 순간 가졌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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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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