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관점에서 본 건설 현장 사고 시공사 교체..."그게 말처럼 쉽지 않죠"
계약 해지와 새 업체 선정때
조합원 분열·사업지연 `부담`
사업초기 지나면 더 힘들어져
건설 현장에서의 사고는 대개 규모가 크거나 결과가 치명적이어서 사회적 파장이 상당하다. 최근 연이은 현장 사고로 특정 건설사가 곤경에 처해 있다. 영업정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건설업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계약 해지 때 소송전 불 보듯
사업조건·하자담보 기간 등
계약 변경으로 접점 찾기도
같은 건설사의 연이은 사고라고 하지만 최초 발생한 비극은 철거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 건설사의 직접 책임으로 돌리기에 애매한 구석이 있다. 몇 년 전 도시정비법이 철거 업무를 시공 계약에 포함하도록 개정됨에 따라 발주처가 조합에서 시공자로 바뀌었을 뿐 철거 업무 자체가 건설사 본업으로 편입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발주처로서 관리 감독 의무까지 면할 수 없겠지만 책임 정도에 있어 철거 사고를 직접 시공 사고에 견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면 완공 직전의 아파트 붕괴는 건설사 업무 본령인 직접 시공 책임 사안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영업정지나 면허취소까지 거론되는 것도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 관련 사고였고 건설사의 직접 시공 책임 사안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의 파장에서 눈을 돌려 정비사업 현장으로 시야를 좁혀보면 해당 건설사가 수주와 관리, 두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징후가 체감된다. 시공자 선정 입찰에서 공사비 단가나 설계안, 자금 조달 능력과 조합원 분담금 조건 등 일반적 경쟁 이슈를 한꺼번에 집어삼킬 만큼 아파트 안전사고의 후유증은 컸다.
엄청난 핸디캡에도 얼마 전 수도권의 한 재건축 현장에서 신규 수주에 성공했다는 뜻밖의 뉴스를 접하고 보니 해당 건설사가 얼마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을지 짐작된다. 사고 수습과 기존 현장 관리에 매진해도 모자란 마당에 신규 수주에 열을 올린다는 비난이 들리지만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닌 듯하다. 파격적 조건 제시에 의한 수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재발 방지에 노력하겠다는 진지한 약속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택은 오롯이 조합원들 몫이기에 국외자로서 선정 결과를 두고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신규 수주는 조합원들 선택에 따르면 그만이지만 해당 건설사를 이미 시공자로 뽑아 놓은 조합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조합원들의 건설사 교체 목소리가 높지만 후유증이나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아 셈법이 복잡하다. 시공자 교체 요구는 브랜드 이미지 하락에 따른 주택의 상품성 저하와 안전사고 재발에 대한 우려가 주된 원인이겠지만 실행에는 감내해야 할 몇 가지 리스크가 뒤따른다.
당장 사업 지연이 우려된다. 기존 건설사 해지와 새로운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빚어질 조합원들의 분열과 소송전도 부담스럽다(시공자 교체 이슈가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부 해임과 맞물리는 상황도 드물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금융비용 부담과 시장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정비사업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사업 진행 정도가 비교적 초기라면 몰라도 이주·철거 등 본격적으로 금융비용이 발생하는 사업장들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 계약 해지 대신 안전성 강화 대책, 사업 조건 변경, 하자 담보 기간 연장 등 계약 변경을 통한 연착륙을 모색하는 조합이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계약 해지를 결정한다고 해도 절차가 까다롭다. 몇 년 전만 해도 민법이 보장하는 도급인의 해지 규정을 활용해 계약 위반 등 해지 사유가 없어도 법률적 측면에서는 특별한 리스크 없이 시공자를 교체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이 실무 관행에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계약 위반 사유가 없다면 조합원 총회에서 단순히 해지를 의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에 관해 미리 설명하고 가급적 금액까지 추산해 알려주거나 손해배상 안건을 별도로 상정해 의결해야만 계약 해지가 적법하다는 취지다. 낯선 논리 구성이지만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대법원 심리불속행 결정으로 확정된 사안이어서 시공자 교체를 결정하는 조합들은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만약 영업정지가 현실화되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해당 건설사를 시공자로 선정해둔 조합은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의해 일반분양 시기에 제한을 받는다. 조합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실상 후분양이 강제되는 셈이다. 이 경우 조합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민법상 계약 해지와 달리 손해배상 부담 없이 가능하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여러 건설사를 하나로 묶은 '컨소시엄' 형태로 시공자를 뽑은 조합들은 사정이 더 복잡하다.
문제가 된 특정 건설사만 배제하고 나머지 건설사들만으로 시공 계약을 변경하려는 시도가 많다. 하지만 컨소시엄을 구성한 건설사 간 합의로 지분을 조정하든가 해당 건설사 스스로 지분 관계에서 탈퇴한다면 모를까 조합이 컨소시엄 내부 관계에 관여해 특정 건설사를 배제하거나 지분을 변경할 수 있는 법률적 수단은 없다. 컨소시엄 전체 해지 카드를 꺼내 건설사들이 내부적 합의를 이루도록 사실상 압박하는 것이 고작이다. 건설사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조합은 전체 계약 해지와 새로운 시공자 선정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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