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면 생각나는 두 사람 [김창식]




2월이면 생각나는 두 사람 [김창식]


2월이면 생각나는 두 사람

2022.02.21

매년 2월이면 유독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답니다. 한 사람은 어느 비 오는 설날 검정색 외투를 입고 대문간에 서 있던 중년 사내이며, 또 다른 사람은 몸이 성치 않아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좀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었을 거예요. 그날은 설날답지 않게 추적추적 비가 내렸는데,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참이었어요. 갑자기 대문께가 시끌시끌했습니다. 또 그 일인가 했지요. 며칠 전 대문 옆 감나무에 구렁이가 죽은 채 널브러져 있었거든요. 이번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웬 남자 어른이 비를 맞으며 서 있었어요. 검정색 낡은 외투를 입었고, 얼굴에 희끗희끗 버짐이 피었으며 수염이 삐죽삐죽 돋았습니다. 눈이 움푹 들어갔고 두 볼이 꺼져 광대뼈가 유난히 불거졌더군요.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서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집안 어른들이 그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거지는 아닌 듯했고, 생떼를 쓰러 온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무엇을 작정하고 온 것 같지도 않았고요.

 

 


그저 그 사람이 알아서 돌아갔으면 하는 대치 광경이 한동안 계속되었어요. 그때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의 손을 끌어 사랑채로 데리고 갔어요. 뒤를 따라가 보았더니 할머니가 떡국과 무짠지 반찬을 차려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은 처음엔 마땅치 않은 듯 오물거리며 떠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나보다 했는데 숟가락질이 갑자기 빨라지더니 삽시간에 대접을 비우더라니까요. 할머니가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참 유별난 사람이구망. 요것이 무슨 꼬락서니당가? 자네가 하모 요로코롬 욌싸면 쓰것는가?”

식사를 마친 후 달다 쓰다 말없이 대문을 나서던 그 사람이 눈길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휘둘러보고는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어요. “나가… 입이 백 개라도… 하모… 무슨 할 말이 있것소. 긍께... 그냥 왔다 가는 것이어라.” 힘겹게 말을 마친 후 돌아서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겨 떠나더라고요. 더없이 느린 걸음이었지만 한 번도 뒤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빗줄기가 한층 굵어졌고 이윽고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지며 상황은 그것으로 끝났지요.

나중 어른들 말을 들으니 그 사내는 이모부였어요.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때 이모와 같은 집에 살았지요. 이모부는 젊었을 땐 소문난 미남자였다고 하데요. 데릴사위로 들어왔는데, 봉사인 이모를 버리고 딴 색시를 찾아 집을 나간 것이었습니다. 나중 형편이 좋지 않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요. 뉘우치고 돌아오려 했으나 이번엔 집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갓방(끝에 있는 추녀 밑 방)에 함께 살던 이모도 대청에 나와 있었던 듯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되는 양 쪼르르 달려가 이모의 팔을 흔들었어요. “이모! 이모! 이상한 사람이 왔어라. 왔다 갔다카래.” 봉사 이모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습니다. 눈사위가 붉어지고 몇 번 눈을 깜빡였을 뿐.

                                                  *  
생각나는 또 다른 사람은 어릴 적 동네에서 보았던, ‘하늘배기’라 불린 몸이 성치 않은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지, 입학 전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집 앞에 큰길과 맞닿은 공터가 있었는데 우리들의 놀이터였지요. 엄마를 졸라 때 이른 설빔 옷을 차려입고 몇몇 아이들과 사방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하늘배기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놀고 있던 것은 건성이었고 실은 하늘배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군요.

 

 



하늘배기는 한쪽 다리가 없어 목발을 짚었으며, 반대쪽 손은 반쯤 말려 올라가 가슴께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고개는 기운 채 얼굴을 받치고 있어서 비스듬히 허공을 바라보는 모양새였고요. 하늘배기란 별명도 여기서 비롯했을 거예요. 머리는 밤송이처럼 짧은 데다 기계총이 옮아 곰팡이가 피었어요. 벌어진 입 주위로 침이 흘렀고 연신 눈알을 굴렸으며 말려 올라간 조막손이 그때마다 흔들거렸습니다. 나이는 잘 모르겠군요. 30대, 40대? 아니면 그보다 더 들었는지. 어쨌거나 움직임이 여의치 못한 약점을 알아챌 나이가 된 아이들에게 하늘배기는 놀림감으로 전락했습니다.

하늘배기는 어디에 갔다 오는지 모르지만 해가 서산에 걸릴 때쯤이면 언덕 자갈길을 절뚝거리며 올라와 집 앞을 지나가곤 했어요.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하늘배기가 나타나자 누군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노래를 선창했고,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이들이 합창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 "하늘~ 배기 설날은~ 어저께고요~" 하고 바꾸어 부르자 나머지가 키득키득 웃으며 따라 불렀습니다.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늘배기야 뭐하냐?" 그날도 우리는 노래를 하다 말고 하늘배기 앞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겁을 주거나 주위를 맴돌며 놀려댔습니다. "으… 흐흐…" 하늘배기가 멈추어 서서 눈을 희번덕거리고 목발을 내딛으려다 말았어요. 그가 우리를 향해 꼬인 고개를 비틀더니 띄엄띄엄 말문을 열었습니다. 쉬고 갈라진 목소리였어요. "그… 그으만… 해라. 새으을… 보오온다." 하늘배기의 얼굴이 다시 하늘로 향했어요. 하늘배기는 항상 그렇게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얼굴이 하늘로 들려 있으니 어차피 해, 구름, 새 같은 것들만 볼 수 있었을 것이고요. 하늘배기가 목발을 움찔거리며 걸음을 옮겼어요. 그런데 그날은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했습니다. 하늘배기가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답니다. 누군가 "하늘~ 배기 설날은~ 어저께고요~" 노래를 선창했지만 더 이상 따라 부르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날을 끝으로 하늘배기가 언덕바지 자갈길을 힘겹게 올라오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답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어요. 하늘배기가 '차부'에서 구걸을 하다 '도라꾸'에 치여 크게 다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성치 않은 몸에 다치기까지 했다면? 무거운 슬픔이 어린 우리들 마음을 짓눌렀던 것 같아요. 그 후에도 우리는 집 앞 공터에 모여 놀기는 하였으나 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늘배기에 대해 가끔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심드렁했고, 이야기도 오래 이어지진 않았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고요.

 



떠돌이 이모부와 몸이 성치 않은 하늘배기에 대한 기억은 마음속 깊은 곳에 화인(火印)이 되어 떠나지 않고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뚜렷해지는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연고도 없고 닮을 이유도 없는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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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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