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부의 붕괴 2기: 허영 헌법학자, "말문 막히고 참담한 심정"
헌법재판소(헌재)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파면을 선고한 것과 관련, 국내 헌법학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헌재가 오히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현실을 보며 말문이 막히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허영 교수는 지난 7일 <문화일보>에 기고한 기고문을 통해 “헌재의 결정은 존중한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재의 논증은 많은 법리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헌재가 배척한데 대해, 허영 교수는 “국가긴급권 행사 여부는 그 주체인 대통령만이 판단할 수 있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다. 따라서 사법부는 그에 대한 적법성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 다만, 극히 예외적으로 심판해야 하는 경우는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긴급권 행사의 원인·과정·결과를 종합적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 헌법학계의 정설이다. 대통령이 국가긴급권 행사로 처벌·파면된 사례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의 원인과 결과를 무시하고 과정만 부각해서 위법한 증거를 기초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세계 대통령 탄핵 심판사에 부끄러운 선례를 남겼다”고 꼬집었다.
국회 측 탄핵소추위원단이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 부분을 철회해 동일성 원칙이 상실됐음에도, 헌재가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함에 따라 소추 사유의 철회 내지 변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데 대해선 “헌재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갖는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무시했고, 적법 요건의 판단에서도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절차적 정당성을 철저히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소추 사유의 철회·변경은 소추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소추의결서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것을 허용했다”며 “내란죄를 철회했어도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논리도 견강부회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내란죄로 소추하는 것과 비상계엄이 위헌·위법하다고 소추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며 “내란과 직권남용은 그 구성요건이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직권남용은 재직 중 소추의 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탄핵소추가 적법하다는 결정은 중대한 적법절차 위반”이라고 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메모를 증거로 채택한 것과 관련해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한 증거는, 모두 헌재법을 어기고 수집한 수사기록이며 그 성립의 진실성이 의심되는 가필된 메모와 오염된 증언”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특히, 메모는 이번 탄핵소추를 촉진한 핵심 증거인데도 피소추인 측의 필적 감정 요구를 헌재는 즉시 기각했다”면서 “의심되는 증거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라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법의 증거법칙을 어겼다”고 꼬집었다.
국회의 권한 행사가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헌법이 예정한 경로를 벗어나 야당이나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데 대해선 “국회의 폭거로 인한 국정 마비를 정치적·제도적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도 허구적”이라며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거대 야당의 폭거를 막을 정치적·제도적 수단은 없다”고 직격했다.
허 교수는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라고 훈시했지만, 그 자구책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며 “헌재도 인정한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돼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어떻게 파면을 정당화할 만한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헌재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민주주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고 다수의 힘으로 무엇이든 밀어붙이는 야당을 견제할 어떤 민주적인 방법이 있는가”라고 재차 따졌다.
그러면서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헌재가 오히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현실을 보며 말문이 막히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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