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과 남아있는 시간 [김수종]
잃어버린 시간과 남아있는 시간
2021.12.27
바이러스의 지배를 받으며 2021년이 저뭅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방역 지침이 강화되면서 올해 송년 분위기도 망가졌습니다.
지침이 강화되기 바로 전날 송년 점심 모임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물러난 언론인들이 사적으로 만나 얼굴 보고 밥 먹고 친교하는 모임입니다. 모임 이름이 '삼금회'입니다. 매달 셋째 금요일 점심을 같이하기로 해서 모이다 보니 붙은 이름인데, 이름 덕분에 용케 그날 인원제한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정월 셋째 금요일에 만난 후 2년만의 모임이었습니다. 모두들 느끼는 시간은 쏜살같은데 22번의 모임 기회를 놓쳤다는 걸 알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아쉬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나이에 2년이면 젊을 적 4, 5년 몫인데 바이러스 때문에 그 시간을 잃어버린 기분"이라고 누가 말하자 모두 공감하는 눈치였습니다.
2년이 짧은 시간 같은데 세월이 흐른 자국이 얼굴과 대화에서 묻어나왔습니다. 주름이 늘었습니다. 대화를 이어가다 익숙했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애먹는 모습이 옛날보다 심해진 듯했습니다.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임의 멤버 중 선배 한 분은 올해 타계했습니다. 꼭 10년 전 그 선배를 포함해서 몇 사람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후배들이 헐떡거리며 겨우 장터목에 도착하자 그는 벌써 천왕봉을 밟고 내려오면서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허약해 가지고는..." 하며 다시 함께 올라가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같이 찍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0년은 무척 긴 세월인데 지나고 보니 찰나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간다"는 얘기가 실감납니다. 옛날 시골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는 여름방학 한 달이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게 길었습니다. 요즘은 여름 한 철이 일주일 지나듯이 빨리 지나갑니다. 학원 다니랴 스마트폰 들여다보랴 바삐 하루를 보내는 요즘 초등학생들도 우리 때처럼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는지 궁금합니다.
세대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느끼는 것은 생체시계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 이 자유칼럼에 신경학자의 실험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청년과 노인에게 3분의 시간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재어 보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청년은 3초밖에 오차가 나지 않는 반면, 노인은 평균 40초나 더 경과한 후에 3분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청년의 생체시계가 나이든 사람의 생체시계보다 훨씬 빨리 간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생체시계가 늦게 갈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가버린다는 얘기입니다. 시간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한 학자의 설명이 더 실감납니다. 계곡을 흐르는 강물은 시계에 표시되는 시간으로 일정한 속도로 흐릅니다. 청년은 강물보다 빨리 달립니다. 중년은 강물의 속도와 비슷하게 걷습니다. 그러나 노년은 강물의 속도보다 뒤처져 걷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거라네요.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생체시계가 그러니 별 수 없습니다. 더욱 아끼며 잘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젊은 날 "인생을 길게 내다보며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에겐 여전히 그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는 "짧게 내다보며 살자."라고 말해주고 싶어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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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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