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권오숙]

 


코로나로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2021.12.23

시어머니가 입원해 계셨던 대전의 재활병원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터진 건 12월 5일이었고 우리 가족에게 그 소식을 알린 것은 12월 6일이었습니다. 내용은 어머니 병실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격리되었으니 알고 있으라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가족 톡방에 이런 알림 글이 처음 떴을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크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88세의 고령이고 기저 질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코로나로 인한 사망은 남의 얘기였고,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남편이 병원에 전화해보니 다행히 어머니는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 음성 환자끼리 격리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온 가족이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재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격리되었는데 무증상이라는 소식이 왔습니다. 그때부터 뉴스에서 대전 시설들의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비로소 정신이 바짝 들어 관련 기사들을 뒤져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던 병원은 종사자 1명의 감염에서 비롯되어 총 15명이 감염된 상황이었습니다. 뭔가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갔지만 아직 어머니가 무증상이라는 것에 안도하면서 온 가족이 어머니가 이겨내시리라 믿고 또 그러길 기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서양고전읽기’라는 강좌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까뮈의 <페스트>를 읽고 있었습니다. 팬데믹 상황의 우리 모습이 까뮈가 그리고 있는 페스트 상황의 오랑 시와 너무 닮아 있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코로나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습니다. <페스트>에는 역병 발발 초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였던 무사안일한 태도, 페스트 사태가 심각해지자 벌어진 약탈과 사재기 등 비정상적인 행동, 그런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암거래 등으로 이익을 챙기는 이기주의, 인명(人命)에 대한 존중심으로 뭉친 자원 보건대 활동, 사태가 오래 지속되자 점점 무뎌지는 사람들의 마음 등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 펼쳐지는 여러 양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읽은 책의 끝부분에서 자원 보건대에서 봉사했던 인물들과 작품의 서술자인 리유 의사의 부인 등 많은 사람들이 페스트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 대목에서 덤덤하게 “선생님 시어머니도 시설에서 집단 감염으로 양성 판정을 받아 현재 격리중이다”고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학생들도 좀 놀라서 걱정하긴 했지만 역시 별일 있겠냐는 덤덤한 반응이었습니다. 여전히 작품 속에서 벌어졌던, 또 최근 뉴스에서 종종 전해졌던 그런 비극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호전과 악화의 소식이 번갈아 들려오더니 15일부터 고열과 폐렴 증세, 산소 농도의 저하 등 어머니의 병세가 심각해졌습니다. 이때부터 충남대, 건양대 등 대학 병원에 계속 요청했으나 병실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시청이나 보건소는 전화 통화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폐가 급격히 나빠지고 혈압이 떨어져서 도파민을 처방하고, 범혈구감소증까지 보이는 상황에 이르자 의사가 가족들과 긴급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의사는 다행히 다음 날 아침 건양대 병원 병실을 확보했으나 아무래도 어머니가 그날 밤을 버티지 못하실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견을 말했습니다. 의사의 브리핑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고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침까지만 버티면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하룻밤을 견딜 수 있는 조처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니.... 의료 지식이 없는 가족들은 119 구급차라도 불러 산소 공급을 하자는 등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그런 정도의 산소는 재활 병원에서 현재도 콧줄로 제공하고 있고, 구급차의 산소통도 2시간 정도의 투입량에 불과하다며 우리들의 비현실적인 제안마다 힘겹게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무기력하게 어머니가 아침까지 버텨주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6시 3분. 어머니가 별세하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7시 경 어머니는 유골로 변해 가족들에게 돌아오셨습니다. 코로나 사망자는 화장조차도 일반인들의 화장이 다 끝난 뒤에나 이루어졌습니다. 전날 밤 의사와 미팅을 마치고 영상 통화를 요청하여 뵌 것이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우리들은 두 눈을 감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힘내시라고, 내일 병원에 가면 곧 치유되실 거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어머니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신 듯 몇 번 눈을 깜빡이셨습니다.

어머니의 유골을 기다리던 그 음울하고 어두운 시각, 하늘에선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가을 날 낙엽들 누운 자리에/ 겨울이 그 설움 눈으로 내리네.”라는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의 시구처럼 그 눈은 꼭 너무 허망하게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셔야 했던 어머니의 죽음이 애달파 내리는 하늘의 눈물 같았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황망하게 세상을 뜨셨습니다. 발인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3일 전 저녁 7시쯤 지나갔던 마장 휴게소를 비슷한 시각에 다시 지났습니다. 만 3일 만, 삶과 죽음의 경계의 가벼움이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쓸쓸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신 불쌍한 우리 어머니가 부디 그 억울함을 훌훌 털고 편히 잠드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고 하루 빨리 이 생이별의 비극이 종식되기를 기원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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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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