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누구인가? [김창식]
그분은 누구인가?
2021.12.15
그분은 누구인가? ‘칠월이면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는 손님’(이육사)이 아닙니다. 요즘 세간의 화두인 ‘대장동 그분‘도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분’은 말구유에서 태어나 낮은 데로 임함을 몸소 실천한 분을 일컫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필자는 특정 종교의 신도가 아니며,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도 않습니다. 참다운 종교의 시작과 지향점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보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하는 삶!'
몇 년 전 한 문우가 쓴 글이 생각나는군요. 제목이 <버려진 화분>이었을 거예요. 작가가 아파트 공터에 버려진 플라스틱 화분을 발견하고 거실 베란다로 옮겨온 이야기로 첫머리가 시작됩니다. 이어서 그보다 전 이야기인 미국에서의 오랜 이민생활을 접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정황과 배경이 뒤따릅니다. 낯선 고국 땅에서 다시 시작한 삶은 막막할 뿐더러 익숙지 않은 것이었지요. 새로운 삶에 그럭저럭 적응하는 가 싶던 차 작가의 삶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납니다. 시나브로 까닭을 알 수 없는 헛헛한 마음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에요.
착잡한 마음의 정체는 30년 넘게 살다 떠나온 미국 생활에 대한 향수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따가운 햇볕에서 느꼈던 명쾌함과 집안 어느 곳에서도 사시사철 푸른 나무를 보며 살았던 그 평온함을 그리워합니다. 후반부 서사는 놀라움을 안깁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나름 보살핀 화분에서 철쭉꽃이 피어난 것이에요. 작가는 작은 생명의 움틈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의지를 회복합니다. 그런데 철쭉꽃이 하필 성탄일에 피어났다고 하네요. 언뜻 하찮아 보이는 작은 것을 통해 생명에 대한 경이와 신비를 느끼게 하는 글이었어요.
영국의 팝가수 마리안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 1946~ )이 1965년도에 불러 널리 알려진 노래 <작은 새(This Little Bird)>도 생각나는군요. 가수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사람에 따라 듣기 거북함을 느낄 정도로 허스키하지요. 연무가 낀 초겨울 날씨(그러니까 요즘 같은 12월의 어느 날이겠군요)처럼 스산합니다. 황량한 흑백 풍경화처럼 심란하게 마음을 긁어대는군요. 하지만 흐릿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위태로운 목소리 속에 묘한 감미로움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입니다.
마리안 페이스풀의 일생은 술과 담배, 마약, 구금, 신경쇠약, 재활치료, 동거, 이혼 등으로 얼룩졌으며 '껌 씹는' 비행소녀의 이미지도 갖고 있습니다. 그녀를 '악녀(惡女)'라고 칭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지나친 폄하일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어둠의 늪 속으로 몰아넣은 불우한 여인이었지만, 남을 파국 속으로 끌어들인 팜므 파탈은 아니었습니다. 부스스한 머리에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채 웅크리고 있는 스틸 사진을 보면 그녀 자신이 추위에 떠는 한 마리 '작은 새'처럼도 여겨집니다. 이쯤해서 노래의 가사를 살펴볼까요?
‘작은 새 한 마리/누가 이 세상에 내려보냈나/바람결에 태어나 바람결에 잠자며/....../하늘 높이 날아서/사람의 시선이 닿질 않네/새가 땅에 내려올 때는 오직 한 번/ 그건 죽으려 할 때’
노래에 나오는 작은 새가 상징하는 것은 상처 입은 순수한 영혼이겠지요. 박남수의 시에 나오는 '포수의 조준경으로 날아드는 새'가 날아오릅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해석도 가능하겠지요. 원문을 보면, 새는 알을 까고 나온 것이 아니라 '지구 바깥에서 누군가 내려보낸 것(There's a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 down to the earth to live on the wind)'이며, '하늘 높이 날아 사람 눈에 보이지 않지만(He flies so high up in the sky out of reach of human eye)' '그 새가 땅에 내려올 때는 딱 한 번 죽을 때(And the only time that he touched the ground is when that little bird dies)'입니다. 도대체 누가 하필 죽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란 말인가요? '작은 새'를 'She'가 아니라 굳이 'He'로 칭한 것도 이채롭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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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2006 자유칼럼그룹
This little bird - Marianne Faith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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