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잔소리 말고 밀어 부쳐!"...공무원 "혐의 시인" 검찰 진술

 

"결과만을 목표로 국정운영"

월성원전 자료 삭제 공무원 "혐의 시인"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라는) 결과 만을 목표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월성 원전 경제성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가운데 1명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이 공무원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를 무단으로 삭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첫 재판이 14일 대전지법에서 열렸다. 신진호 기자© 제공: 중앙일보 

 

대전지법 형사11부(박헌행 부장판사)는 14일 공용전자기록 손상 및 감사원법 위반, 방실침입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국장급 공무원 A씨(53)씨와 B씨(50), 서기관급 C씨(45) 등 3명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지난해 12월 대전지검이 3명을 기소한 지 1년 만이며, 그동안 5차례의 공판 준비절차가 진행됐다.

 

감사원 감사 직전 한밤중 문건 530개 삭제 

A씨와 B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2019년 11월께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2월 23일 기소됐다. C씨는 2019년 12월 1∼2일 심야에 삭제를 실행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공판 준비절차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삭제된 자료 530건의 성격과 파일 삭제 경위, 감사원의 영장 없는 디지털 포렌식 적법성 등에 대해 30건 가까운 의견서를 재판부에 보내며 치열한 다툼을 벌여왔다.

 

 

 

검찰은 이날 피고인들에 대한 진술조서 등 관련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한 뒤 “산업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조직적으로 모의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삭제한 범죄”라며 “이들이 삭제한 자료는 청와대와 한국수력원자력 협의한 것으로 530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를 무단으로 삭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첫 재판이 14일 대전지법에서 열렸다. 신진호 기자

 

이어 “(감사원의)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황당한 자료는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A씨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C씨가 인정했다"며 “원전 즉시 가동중단은 청와대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기 때문에 감사원에 제출되면 파장이 클 것 같으니 제출하지 말자고 (A씨 등이) 지시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검찰 압수수색 뒤 서울서 모여 대처방안 논의

검찰이 제출한 증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 다음 날(11월 6일) 서울에서 A씨 등 3명과 변호인들이 모여 검찰 수사를 대비하는 회의를 연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휴대전화에 포렌식 방지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고 주기적으로 대화를 삭제한 사실도 있다”고 말했다.

 

한밤중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파일을 삭제한 C씨는 “A씨와 B씨의 지시로 (문건을) 삭제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A씨는 감사원 서면조사(문답서)에서 자신이 B씨와 C씨에게 파일 삭제를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판에서는 피고인 중 한 명이 산업부 동료 공무원과 나눈 문자도 공개됐다. ‘청와대와 장관이 책임져야 할 일인데, 실무진만 감사를 받게 돼 짱(짜증) 난다’는 내용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A씨 변호인은 “(우리 피고인을) 검찰이 30번이나 불렀다. 신문 과정에서 혐의와 관계없는‘직권 남용’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며 “다른 피고인의 진술이 바뀌고 있는데 이는 검찰이 회유와 협박을 통해 원하는 답변을 얻어낸 것으로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A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여러 차례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3월 감사원 직원 등 증인 신문 

재판부는 방대한 분량의 검찰 증거에 대한 조사 과정을 마치는 대로 증인 신문 일정을 잡을 방침이다. 내년 1월 18일 한 차례 더 재판을 연 뒤 3월쯤 증인 신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 사건 재판에 채택된 증인은 원전 정책 관련 산업부 공무원과 감사원 직원 등 9명으로 신문 과정에서 추가로 더 많은 사람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월 8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진호 기자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재판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부당개입 혐의를 받는 백운규(57) 전 산업부 장관·채희봉(55)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정재훈(61)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 사건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관심을 끈다. 백 전 장관 등 사건은 21일 같은 재판부 심리로 3차 공판준비를 앞두고 있다. 월성 1호기 계속 가동 경제성을 200억 원대로 낮춘 최종 평가서를 작성, 한수원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된 공인회계사도 백 전 장관 등과 같이 재판을 받는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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