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아내, 국화빵 남편 [박상도]

 

 

붕어빵 아내, 국화빵 남편

2021.12.01

 

“아, 갑자기 붕어빵이 먹고 싶다.”

“어, 그래? 사올게, 기다려.”

“에이 됐어. 어디서 파는 줄 알고?”

“아냐, 지난번에 보니까, 이마트 가는 길에서 본 것 같아. 다녀올게.”

“오늘은 안 할 수도 있잖아. 됐어.”

 

아내의 말은 뉘앙스를 잘 살펴야 합니다. ‘어디서 파는 줄 알고?’와 ‘오늘은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방점을 둬야지 ‘아냐’와 ‘됐어’만 믿고 게으르게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대충 옷을 주워입고 나가려는데 딸아이가 같이 가주겠다며 따라나섭니다. 한편으로는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부담되는 중학교 2학년 딸내미와 필자 부녀는 그렇게 붕어빵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차를 몰고 서울 숲을 지나 지금은 메가박스 영화관이 생긴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합니다. 분당선 서울숲 역을 조금 천천히 지나가면서 주변을 살피는데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어, 이 근방이었는데?” 하며 유턴을 해서 한 번 더 둘러봅니다. 저쪽에 비닐로 씌워 놓은 노점 손수레가 보입니다. “아, 오늘은 너무 추워서 장사를 안 하나 보다.” 하며 딸아이의 눈치를 살피니,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애기야, 이왕 나왔으니 붕어빵 팔 만한 곳을 찾아볼까?” 했더니,

“그럼, 그냥 들어가려고 했어? 엄마가 언제 뭐가 먹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이야?”라며 핀잔을 줍니다.

 

그렇게 딸내미와 둘이 붕어빵을 찾아 서울 시내 순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앞에는 붕어빵을 파는 곳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양대학교 앞으로 가봤습니다. 한양대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마장동으로 넘어가는 먹자 골목으로 차를 몰았지만 계란빵을 파는 곳은 보이는데 희한하게 붕어빵을 파는 곳은 안 보입니다. 그즈음에는 골목마다 계란빵을 구워서 팔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계란빵의 원조는 오방떡인데 오방떡 안에 단팥 대신 계란을 통째로 까서 넣어 만든 게 계란빵입니다. 단팥 마니아인 필자는 이 계란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팥에 대한 배신감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살면서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음식을 필자에게 몇 개만 꼽으라면 어린 시절에 먹었던 국화빵과 오방떡이 반드시 들어갑니다. 틀의 한쪽에 밀가루 물을 부어 반쯤 익힌 다음 길쭉한 주걱에 듬뿍 얹은 팥소를 작은 꼬챙이로 균일하게 나눠가며 날쌔게 '착착착' 투하한 후, 다른 틀에서 반쯤 익어가는 밀가루 반죽을 '철컥'하고 합체를 시키면 마술처럼 국화빵이 만들어져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와, 밀가루 반죽끼리 서로 잘 붙는구나.”, “이 고소한 냄새는 밀가루 반죽 냄새일까? 팥소 냄새일까?”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가게 유리창에 코를 박고 넋 놓고 구경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대여섯 살밖에 안 된 그 시절의 필자에겐 한겨울에 국화빵 만드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꽤 큰 이벤트였습니다. 구경만 한 것이 아니라 자주 사먹기도 했는데, 갓 나온 뜨끈한 국화빵을 반을 갈라서 입으로 호호 불어 먹던 그 맛, 적당히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한 빵과 특유의 아린 맛을 달콤한 맛으로 중화시킨 팥소가 이뤄내는 하모니는 언제나 첫눈 같은 설렘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국화빵 집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어린 시절의 국화빵 맛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어졌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오방떡이었습니다.

 

오방떡은 일본의 ‘오반야키’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오반’이라는 타원형의 금화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린 시절에 오방떡을 먹으면서 유래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았고 어차피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만든 거라 크게 거부감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지 “왜? 떡이 아닌 것을 떡이라고 이름 붙였을까?”라고 의아해하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화빵 때와 달라진 것은 이미 중학생으로 훌쩍 커버린 필자가 더는 유리창에 코를 박고 노골적으로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오방떡을 굽는 모습을 재미있어하며 구경했던 기억입니다. 반죽에 계란이 듬뿍 들어간 오방떡은 국화빵과 달리 카스텔라 맛이 많이 났습니다. 필자가 살던 동네의 오방떡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와서 사먹을 정도로 맛있었는데 중년의 부부가 얌전하게 오방떡 반죽을 빚고 굽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람마다 경험은 제각각이라 필자의 아내는 대학 다닐 때 동네 버스 정거장 노점에서 구워주던 붕어빵을 제일로 칩니다. 연애할 때 바래다주면서 아내가 장인어른 사다 준다면서 한 봉지를 사서 내게도 한 마리 건네줬는데 식으면 맛없다고 해서 장인어른보다 먼저 맛을 보는 불경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 집 붕어빵의 특징은 붕어에 날개가 달려있어서 바삭한 날개의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던 기억입니다. 아내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말을 한 모양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은 붕어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팍팍한 살림에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이름 없이 늙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아빠가 주는 용돈으로 걱정 없이 붕어빵을 사가면서 남자 친구에게도 하나 건네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밤 필자와 딸은 붕어빵을 찾아 몇 군데를 더 돌아다녔고 결국 건대 앞 노점 밀집 지역에서 붕어빵 대신 팥소가 든 오방떡을 간신히 찾아서 아내에게 대령했습니다. 그러자 “뭐야, 이건 자기가 좋아하는 거네?” 하고 속없이 웃으며 오방떡을 먹는 아내의 모습엔 만가지 생각이 흐르는 듯했습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음식을 드시면서 “그때 그 맛이 아니야.” 하시며 씁쓸해 하셨는데 음식 맛이 변한 것이 아니고 세월이 변하고 내 상황이 변한 것이겠지요.

 

​며칠 전, 붕어빵을 파는 곳을 알려 주는 앱이 등장했다는 뉴스를 보고 6년 전쯤, 붕어빵을 찾아 헤맨 기억을 더듬어 겨울의 문턱에 낙서 같은 감상을 적어 보았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BECA 석사

현재 SBS아나운서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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