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이 별명은 똥순이 [한만수]
영순이 별명은 똥순이
2021.11.18
골목 사진을 찍을 생각으로 며칠 구로동을 걸어 다녔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만 해도 동네의 공터에는 미끄럼틀이며, 그네나 시소 등이 설치된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터에서는 단 한 곳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낡은 아파트 단지에는 그네나 시소 대신 원통형 미끄럼틀이 설치된 곳을 서너 군데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 대신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원판 돌리기, 하체 좌우로 흔들기 같은 운동시설입니다.
어린이 놀이터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들이 노는 광경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출산 인구가 줄었다고 하지만 뭔가 균형에 맞지 않는 도심의 모습처럼 보여서 좀 씁쓸했습니다.
도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시의 아이들이 학원이다, 교습소다, 방과후 수업이다 하여 놀 시간이 없다면, 시골은 아이들 자체가 없습니다. 한때는 1천여 명이 다니던 초등학교 전교생 수가 60명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예전의 아이들은 책가방을 집에 던져두기 무섭게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등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한참 크는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건강이나 정서(情緖)에도 좋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아이들의 부모들은 미세 먼지며, 옷에 먼지가 묻는다는 이유로, 뛰어다니다 다칠 수 있다는 염려에 밖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예전에 아이들은 거의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골목이며 공터,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다보니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십니다. 장난을 쳐도 과격하게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는 친구의 뒤통수를 냅다 갈겨 버리고 도망치는 장난은 흔합니다.
맞은 쪽은 맘먹고 도망치는 친구를 쉽게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고무신을 벗어서 뒤통수를 향해 냅다 던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고무신만 던지는 것이 아니고, 돌멩이며 나무토막 가리지 않고 던져 버립니다.
재수 없으면 날아온 동멩이가 뒤통수를 맞힐 때도 있습니다. 피가 나기 시작하면 쑥이나 종이 같은 것으로 대충 지혈을 하며 집으로 달려갑니다.
제가 살던 곳은 면소재지치고 좀 인구가 많아서 의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리 터진 아이 손을 잡고 의원으로 가는 보모님들은 드뭅니다. 장독대에서 된장을 떠 와서 붙이고 수건이나 헝겊으로 상처를 묶어 주는 것으로 치료 끝입니다. 또는 정지 아궁이에 걸려 있는 가마솥 밑에 묻어 있는 검댕을 숟갈로 긁어서 물에 착착 개서 상처에 붙이면 피가 멈춥니다.
눈에 다래끼가 나면 눈썹 한 개를 뽑아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의 납작한 돌 위에 올려놓습니다. 눈썹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다른 돌멩이로 눌러 놓습니다. 몰래 숨어서 누가 실수로 돌멩이를 차 버리는지 숨을 참으며 지켜봅니다. 그도 아니면, 집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가서 돌멩이를 누가 차 버렸는지 확인을 합니다. 누군가 돌멩이를 차 버렸다면 다래끼가 그 사람에게 옮겨간다는 비방입니다. 신기하게도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알레르기 증상으로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고깃국을 먹습니다. 한여름에도 검은 옷을 입고 솜이불 속에서 자고 나면 두드러기가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음식을 급하게 먹고 체했을 때는 등을 두들겨준 다음에, 팔뚝을 손목까지 주무르고 엄지손톱 밑을 바늘로 따줍니다. 검은 피가 나오고 잠시 후면 길게 트림이 나오며 속이 시원해집니다.
재래식 화장실은 자세를 균형있게 잡지 못하면 미끄러지거나 빠질 수도 있습니다. 친구 여동생 이름이 영순인데 별명이 똥순이였습니다. 저 혼자 화장실 출입을 할 수 있는 대여섯 살 때 똥순이가 화장실에 빠졌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의 똥통은 열 말 정도 들어가는 항아리를 묻거나 시멘트로 만듭니다. 중학교 때 합천 해인사에 놀러를 갔는데 해우소가 너무 깊고 엄청나게 커서 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친구와 둘이서 숲속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나왔습니다.
똥순이네 화장실도 합천 해인사의 해우소만큼은 안 되지만 꽤 깊었던 모양입니다. 똥순이가 마당 평상에서 고구마를 먹다 말고 화장실에 갔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자기 집 화장실을 누가 쓰고 있어서 원정을 왔다가 똥통에 빠진 똥순이를 발견했답니다.
개한테 물렸을 때는 사람을 문 개털을 가위로 잘라다 불에 태운 재를 상처에 붙이면 낫습니다. 다 죽어가던 똥순이도 똥물을 삼베에 걸러서 만 하루를 묵힌 똥물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똥순이는 그 후로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본명인 영순이보다 똥순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는 점입니다. 동네 또래들이나 언니 오빠뻘 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똥순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순이 자신도 똥순이라고 불러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예쁘장한 얼굴로 어른들께 인사도 잘하고 공부도 곧잘 했습니다. 상고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한날은 똥순이네 집 최대의 경사이기도 했습니다.
서울 남자하고 결혼을 해서 애를 업고 친정에 왔을 때까지 어른들이나 친구들은 “똥순이 친청왔구먼” 이라며 반겼습니다.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를 보면 거리에서 약초를 파는 장수들이 있습니다. 요즘 세대들은 무슨 풀이며, 나무껍질이나, 동물의 똥이 약이 될 수 있냐고 의아심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외상을 치료하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1970년대에만 해도 아버지 친구분들이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약 한 번 안 사 먹어 봤다.”고 하는 말을 흔하게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동네에 의원이 있어도 민방치료에 의존했던 까닭은 경제적인 이유가 컸겠지만, 민방의 효능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해가 노을이 지고 해가 으슥해질 때까지 밖에서 뛰어놉니다. 어두운 밤길을 뛰어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기도 하고, 얼굴에 상처가 나기도 하지만 당사자나 부모들은 예사로 여겼습니다.
요즈음 부모들이 기절초풍할 말이겠지만 “아이들은 다치고 깨지고, 싸우기도 해야 건강하게 큰다.”라는 말이 무시로 통용되기도 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2006 자유칼럼그룹
Recent Article
- [은밀한 글로벌 어젠다] 1.2조 달러 인⋯
- 빌 게이츠, IT에서 에너지회사로 전환?.⋯
- [건설 M&A]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지분⋯
- 연구기관들 "내년도 집값 오른다"...상⋯
- 접종 후 폐 1시간만에 녹아버려 사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