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속에서 살기 [홍승철]

 

 

제약 속에서 살기 [홍승철]


제약 속에서 살기
2022.06.10

재활병원에서는 병동의 보호사와 간호사, 치료실의 치료사들이 환자와 보조를 맞추어 행동을 천천히 하였고 달리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병원에 있는 동안은 별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퇴원한 후에는 집에서나 바깥에서나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행동을 실감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직접 하려고 듭니다. 느리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있으니까요. 집에서는 남들이 귀찮게 여길 일도 없습니다. 청소며 세탁, 밥 짓기, 적은 양의 설거지 등을 해냅니다. 말린 세탁물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처럼 반듯하게는 못하지만 할 수는 있으니 합니다. 얼마 전까지 겨울 이불을 사용했는데, 꽤나 무거워서 힘들었지만 직접 펴고 개기를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여름용 이불 개기는 상당히 쉽습니다.

외출하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합니다. 이 엘리베이터는 문 닫기 버튼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경과해야 닫히니 한참을 기다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문이 닫히려 할 때 누가 타면 도로 문이 열리고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닫힘 버튼을 눌러도 소용없으니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고 느껴집니다.

 

 



늦게 다가온 사람 중에는 아예 타지 않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혹시 자신이 타다가 문이 다시 열려 먼저 탄 이들이 오래 기다리게 할까봐 그러는 거지요. 그런가 하면 늦게 다가오는 이가 보이면 먼저 탄 누군가가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기도 합니다.

지팡이 짚고 있는 모습을 보고 “먼저 타세요” “먼저 내리시죠”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 말에 따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제 걸음이 느리니까 먼저 내리세요”라고 답하기도 합니다.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바쁘게 엘리베이터까지 달리다시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앞줄에 서려고 그러는 거죠. 어떤 이는 줄 밖에 서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면 슬쩍 앞쪽에 끼어듭니다. 새치기죠.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어렵지 않게 보던 풍경입니다.

얼마 전 장애인들이 이동할 권리를 주장하며 시위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장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는데, 엘리베이터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녀본 역에는 지하 대합실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엘리베이터가 역 한 군데에 한 대씩 있습니다. 나야 에스컬레이터도 이용할 수 있으니 이런 시설이 있어서 고맙다고 여기지만 휠체어를 타는 이들은 엘리베이터 숫자가 적어서 어려움을 느끼겠지요.    

지인들을 만나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약속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몸 상태가 나아진 결과라고 여기고 만남에 대한 기대감도 컸습니다. 만나면 오래간만이니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몇 차례 지나다 보니 걱정도 생겼습니다. 그들과 차이가 있는 행동이 그들에게 이질감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그것입니다. 식탁 위에서의 더딘 젓가락질에서부터 헤어지기 전 지하철까지 같이 걸을 때의 느린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 일행과 차이 나는 행동에 마음 쓰였습니다. 그런 내색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만의 기우인지 아닌지 살피며 지냅니다.    

가끔씩 글씨 쓰기도 합니다. 생활에 필요하기도 하고 손가락 근육 운동의 역할도 하니까요. 역시 천천히 쓸 수밖에 없습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더디고 손의 움직임은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쓴 글씨를 보면 속으로 웃게 됩니다. 빨리 쓰던 시절에는 쓰고 나서 하루 이틀 지나서 보면 못 알아볼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천히 쓴 글씨는 못 알아볼 데가 없습니다. 모양도 그전보다 반듯하다고 여겨집니다. 느린 점만 제외하면 글씨 쓰기는 전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꿈꾸기는 여러 해 전부터 드물어졌습니다. 어쩌다 꿈을 꾸어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아예 꿈이 꾸어지지 않았습니다. 11개월간이나 말입니다. 퇴원하니 어쩌다 한 번씩이지만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꿈꾸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내용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뻤습니다. 최근에는 꿈의 마지막 부분이 기억나는 일도 있습니다. 마음이 굳어졌다가 풀어지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신체의 제약이 없습니다. 꿈이니까 그런가요? 어쩌면 아직 과거 상황만 꿈에 나타나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현실에서 몸의 제약을 순간적으로 잊고 움직이려 한 적도 있습니다. 순간의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작에 제약이 있고 행동 영역에도 상당한 제한이 있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작이나 행동을 더 원만하게 할 수 있도록 애쓸 테지만, 지금 상태로도 할 수 있는 일을 더 늘려 갈 것입니다. 마치 지금 열 손가락으로 천천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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