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출내기 농부, 봄의 취나물에 반하다 [신현덕]

 



신출내기 농부, 봄의 취나물에 반하다 [신현덕]


신출내기 농부, 봄의 취나물에 반하다

2022.05.03

요즘 취나물이 제철입니다. 쌈 싸 먹으면 입안에서 봄이 씹히는 별미입니다. 금방 데치면 쌉쌀한 맛과 싱그러운 향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시장에서 사다 먹을 때 느낀 맛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향긋하기도 합니다. 곰취는 와인의 떨떠름한 맛이, 참취는 씀바귀처럼 쌉싸래하면서도 아주 약하나마 매콤함조차 느껴져 자꾸 찾게 됩니다.

농사일을 시작한 첫해에 곰취 씨앗을 사다 뿌렸으나 갈무리를 잘못해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한 여름인 7, 8월에 뿌리는데 최고 온도가 24~26도를 넘으면 발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씨를 뿌리고 짚이나 부직포를 덮어주라고 조언했는데도 듣지 않았지요. 씨앗 봉투의 설명서와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딛고 다시 도전했으나 역시 실패. 일조량이 너무 적은 곳에 뿌렸고, 흙을 너무 깊게 덮었나 봅니다. 그런데도 두세 포기가 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보니 말라비틀어졌습니다. 흙을 파고 보니 뿌리와 줄기 사이가 끊어졌습니다. 벌레가 그랬을 텐데 원인은 밝히지 못했습니다.

지난해는 파종에 성공하겠다던 생각을 접고 모종을 샀고, 일부는 마을 어른이 주신 것을 함께 심었습니다. 곰취와 참취 14포기(구입 10, 주민 제공 4)입니다. 햇빛도 제법 비추고, 땅의 비옥도가 전보다 나은 곳을 선택했습니다만 가을까지는 별로 자라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주 작은 모종이어서인지 잡초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지요. 또 실패인가, 내년에는 어떻게 하나 고민했습니다.

올해 2월에도 취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3월 가고, 4월 중순이 되자 처음에 곰취 한 잎이 보이더니 이어 여기저기에서 돋았습니다. 잎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기가 참 지루했습니다. 지난달 하순 아주 어린잎을 딱 12장 땄습니다. 너무 이르지 않나 생각도 했지만 취나물이 줄 입맛을 다음으로 미룰 인내가 없었습니다. 저녁 밥상에 오른 취나물의 보드랍고 쌉싸름하며 쌀쌀한 맛에 취했습니다.

 

 


그 다음날 취 모종을 반 판이나 샀습니다. 무섭게 번진다는 동네 어른들 말씀에 은근히 겁을 먹고 있습니다만 많으면 나누기로 작정하고 다 심었습니다. 요즘 밭에 가면 맨 처음 취를 심은 쪽으로 한 바퀴 돕니다.


반장 댁에서 달래와 부추 모종을 몇 개 얻었습니다. 해가 지나면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확 번진다고 합니다. 양지바른 밭 맨 위 한편에 고이고이 정성들여서 심었습니다. 알싸한 달래 무침과 푸근한 달래 된장찌개를 먼저 떠올립니다.

지난주에는 가평토종씨앗모임 채선미 회장이 아욱, 쥐이빨 옥수수, 담배상추, 흰당근, 쥐눈이콩 등 10여 종의 토종 씨앗을 주었습니다. 잘 키워 보관하면 보조금과 함께 씨앗 대금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최초의 상업적 재배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밭에 가는 길은 신출내기 농민 교육장입니다. 마을을 관통해 가는 동안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본래 시골출신이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본 것이 아니라서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특히 가평의 기후에 관해서는 기상청보다 그곳에 오래 사신 분들의 경험이 더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어른들은 “5월 초순에 고추 심고, 메밀은 한여름 중복 때 뿌려야 하고, 들깨는 자랄 때 장대 들고 다니면서 순을 쳐야 열매가 충실해, 여긴 개울물이 차서 논농사는 잘 안돼”라는 등의 정보를 주고, 때로는 씨앗도 나눕니다.
작년에는 원철이 할머니께서 들깨 모종과 고구마 순을 주셔서 100평 남짓한 땅에 심었습니다. 유기농 핑계를 대며 화학비료를 안 주었더니 작황이 형편없었습니다. 씨를 주신 고마움에 답도 못하고 오가며 인사만 드립니다.

올해는 들깨 씨를 농업기술연구소에서 구해 놓았고, 모종 붓는 때를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들깨 심을 자리에 퇴비는 이미 듬뿍 뿌렸고, 이랑도 대충 만들었고, 기술연구소에서 발효한 액체비료도 한 말들이 통으로 한가득 구했습니다. 흠은 자동차 뒤 트렁크에 싣고 오다가 흘렸는데 지독한 냄새가 차안에까지 진동을 합니다. 물로 닦아내고 햇볕에 말렸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냄새를 맡고 다녀야 할는지 막막합니다.

 

 


봄이 지나기 전에 풍년을 비는 ‘씨앗고사’라도 드릴까 했는데 이 냄새로 대신할 계획입니다. 풍성한 가을 기다리면서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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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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