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지덕(木鷄之德) [박상도]

 

 

목계지덕(木鷄之德) [박상도]


목계지덕(木鷄之德)
2022.04.12

휴대폰으로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굳이 볼 필요가 없는 기사들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털에서는 기사가 트래픽 순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특정인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알려진 사람의 개인적인 한마디가 취재를 바탕으로 보도하는 균형 잡힌 정론기사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선관위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명언으로 원저자를 잘못 소개하고 한겨레와 중앙일보 등이 그대로 받아써서 망신을 당했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Marie de Maistre)의 명언을 조금 확대하면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기사를 소비한다.”라는 말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편이 갈려 으르렁거리는 세상에서는 보고 싶은 기사만 보고, 그 기사를 근거로 상대를 공격하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편향된 기사로 인해 대중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자신만의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데,  유사 언론인의 함량 미달 기사들이 이러한 확증편향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질 기사가 어느 때보다 많이 소비되고 있고 이들은 어느덧 언론 생태계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습니다.

최근에 김정숙 여사의 옷값이 등장하는 기사가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며 추측과 증언이 난무하고, 이랬다저랬다 아옹다옹하는 꼴이 참 가관이었습니다. 이 사안이 이렇게 피곤해질 사안인가요?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모두 사비로 구입한 거고 카드로 결제했다.”라는 말이 뉴스가 되어 보도되자 또 다른 증언이 나오면서 “그게 아니던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는 도중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한 샤넬 자켓이 김정숙 여사가 프랑스 방문 때 입었던 동일한 옷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피곤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들이 극명하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싸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사실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은 입증된 팩트는 없이 등장인물의 주장만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달자면, 국가행사에 영부인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입는 의상이 한두 벌이 아닐 텐데 그걸 다 사비로 사서 입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법과 원칙에 맞게 예산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과는 별도로 사비로 의상을 구입했다고 했으니 그 내역을 공개해서 이런 분열을 종식시켰다면 참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언론 역시 팩트에 의존해서 가치 있는 뉴스만 내보내는 것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네티즌들이 김정숙 여사가 공식행사에서 입은 의상 수를 센 자료는 팩트가 될 수 있지만, 그걸 어떤 돈으로 샀는지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제대로 된 보도가 되려면 김정숙 여사에게 물어 봐야 합니다. 사비로 샀으면 본인이 가장 잘 알 것 아닙니까? 지금이 과거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데 영부인에게 못 물어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본인이 의전 비서관을 시켜서 말을 한 건지 의전 비서관이 스스로 나서서 얘기한 건지 그 내막은 모르겠으나 남이 얘기를 하니 말이 많아지는 겁니다. 사비로 구입했다는 말을 경제공동체가 아닌 남이 대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으니 논란이 되는 겁니다.

다만, 굳이 직접 밝히고 싶지 않다면 그것 또한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자유이니까, 법과 원칙에 따라 품위 있게 결과를 기다리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을 일이 있으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되, 화합을 위해 포용하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영부인 옷값이 지금 당장 알아야만 하는 시급한 국정과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탄핵당한 전 대통령 때도 옷값을 가지고 그렇게 말이 많더니 세월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으니 딱한 일입니다. 방귀 뀐 이불 속을 들춰서 냄새를 확인하는 것보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 아닐까요?

 

 



요즘은 기사가 하나 뜨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재생산되고 이슈가 증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매체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같은 사안도 해석을 다르게 합니다. 이럴 거면 언론의 정치적 중립을 포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선거에서 이긴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 또는 유사 언론인은 벌써 5년 후를 도모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떠오르는 권력,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과 5년 후를 도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권력의 견제는 언론의 소임이지만, 5년 후를 도모하는 것은 정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뉴스라는 이름을 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잦아들었지만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겠다고 하니 한동안 난리가 났습니다. “국가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 “이전비가 너무 든다.” “용산 미군기지 땅의 토양 오염 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 등등 반대 여론이 꽤 있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도 있고 반대를 위한 구실을 애써 찾은 것 같은 주장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어이없는 뉴스는 이번에도 탁현민 비서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도한 거였습니다. "여기(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 묻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굳이 이런 얘기까지 기사화되어 대중이 알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장자(​莊者) 달생편(達生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8세기경 중국 주(周)나라의 선왕(宣王)이 투계(鬪鷄)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가 싸움닭 한 마리를 들고 당대 최고의 투계 사육사인 기성자(紀渻子)라는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닭을 최고의 투계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성미가 급한 선왕이 열흘이 지나자 기성자에게 물었습니다.

“닭이 충분히 싸울 만한가?”

그러자 기성자는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驕慢)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열흘 후 선왕이

“이제는 어떤가?”라고 묻자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0일이 지난 뒤 선왕이 다시 묻자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躁急)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라며 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열흘이 지난 뒤 선왕이 묻자 기성자는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木鷄)가 되었습니다. 닭의 덕(德)이 완전해졌기에 이제 다른 닭들은 그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

목계지덕(木鷄之德)은 보통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소양으로 어깨에 힘주지 말고 작은 일에 동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여 상대가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온화한 카리스마를 뜻합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리고 이런 사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해 그림자만 봐도 이리저리 날뛰는 이 경박한 세상에서 목계지덕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져서 뉴스가 바로 서고 우리 사회가 품격을 되찾기를 희망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BECA 석사
현재 SBS아나운서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