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기억은 어제 같건만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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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기억은 어제 같건만 [황경춘]


90년 전 기억은 어제 같건만
2022.04.11

나이 9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전반적인 체력 감퇴는 물론이고 특히 기억력, 순발력 등을 관장하는 뇌 활동의 둔화에 자주 당혹감을 느낍니다.

음악 요법을 강조하는 어느 일본 노인 요양원에서 있었던 실화로, 치매에 시달리는 80대 여성 환자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더니 서슴지 않고 그녀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교가를 3절까지 전혀 막힘없이 유쾌한 표정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2~3일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환자가 70년 전에 다닌 학교의 교가를 한 자도 틀림없이 불렀다는 것입니다.

기억력이 쇠퇴하여 최근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일제 강점기여서 일본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교가가 없고 대신 매년 가을에 열리는 운동회 때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그 지방의 큰 행사로서 학부형뿐만 아니라 그 지방의 고위 관리를 비롯해 많은 내빈도 참석했습니다. 그 운동회 날 부를 노래이니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 학제는 초등학교인 '보통학교' 6년을 마치면 상급 학교인 5년제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이 '고등보통학교'는 한 도(道)에 몇 곳밖에 없어 학생들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저는 1938년 3월에 경쟁률 3~4 대 1의 '고등보통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4월 1일자로 법령이 개정돼 교명이 '고등보통학교'에서 '중학교'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인구 3~4만의 소도시 진주 시민들은 저희가 어디를 가도 '고보생' '고보생' 하면서 사랑과 존경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중학교에는 일본어 교가가 있었습니다. 저는 졸업한 지 8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이 교가를 3절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8,90년 전에 부르던 노래는 어제 일같이 기억하면서 2~3일 전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거나, 친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친지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당황하게 될 때 우리 몸의 신비한 작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과연 정상인과 치매 환자의 경계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일본의 세계적 치매학 연구의 선구자이며 작년 11월 92세로 타계한 하세가와 카즈오(長谷川 和夫) 박사는 죽기 3~4년 전에 자기가 치매에 걸렸다고 일본 최고 부수를 자랑하는 월간 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글로 공표하여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치매 증세는 오후가 되면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고 상세히 설명한 하세가와 박사의 주장을 의심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치매에 관한 반세기가 넘는 연구와, 치매 환자 복지에 바친 그의 헌신적 인생이 있었기에 그만큼 신뢰를 받았던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2004년에 치매라는 단어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라고 부르기로 공표하고, 일반 국민들도 그때부터 이 새로운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세가와 박사와 그의 동조자가 치매 환자의 인권을 존중하여 오랫동안 주장해온 운동 결과입니다.

하세가와 박사는 그의 글에서 치매 초기에는 오전에는 정상인과 다름없이 일을 하다가 오후가 되면 증상이 나타나 기억력이 둔화되고 2~3일 전에 한 일도 쉽게 기억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자 연구실이나 외부에 약속이 있어 갈 때에는 꼭 부인을 동반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후에 저도 걱정이 되어 오전과 오후 시간에 인지(認知) 활동 상태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볼 때가 있습니다. 체력적인 면에서 피로도의 차이는 조금 느끼지만 인지측면에서의 뚜렷한 변화는 발견하지 못해 아직까지는 정상인과 비슷한 범주 안에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근시 판정을 받아 안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저는 시력에 특히 관심이 많아 노안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70대 초반부터 단골 안경점을 통해 세밀한 검안을 1년에 두 번씩은 꼭 했습니다. 그 안경점 주인이 돌아가신 후에도 최신 검안 시설을 갖춘 안경점을 골라 1년에 한 번은 면밀한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5년 전 단골 안경점에서 “이 이상 시력을 보강해 줄 렌즈는 없습니다.”라는 선고를 받은 뒤로는 외출할 때 외에는 안경을 아예 쓰지 않고 있습니다. TV의 자막이 다 읽기도 전에 새로운 자막으로 바뀌다 보니 일일이 다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것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청력도 웬만한 것은 알아듣지만 전부 다 알아듣지는 못하고 그저 대화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치아는 아직도 자연치 20여 개와 임플란트 3개를 합쳐 저작(咀嚼)활동에 큰 불편함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백수(白壽)가 될 때까지 그나마 이 정도의 체력과 기력을 유지하며 아이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5년 전부터 척추협착증으로 인해 외출 시에는 꼭 휠체어와 가족의 신세를 져야 하며 실내에서도 보행보조기 신세를 져야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이 얼마일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지금 이상의 부담은 끼치지 않고 편히 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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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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