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은....돈?

 

"'돈도 있어야'와

'돈만 있어야' 라는 개념은 하늘과 땅 차이다"

위정자들의 공헌이 크다

(편집자주)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첫째, 소득입니다. 지난 기사에서 우리는 '사람에게는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질문을 조금 바꿔서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답은 무엇입니까? 그렇다 또는 아니다와 같이 답은 아주 단순하지만 주관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답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합니다.

 

행복의 조건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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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돈이 많으면 좋지. 나쁠 게 뭐 있어?'라고 답할 것이고, 어떤 이는 '돈은 적당히 있어야지. 더 가지려고 욕심내면 불행해 지는 법이야.'라고 답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지 않고, '돈이라는 게 먼지 같은 거야.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생기고...', '내가 가져봐서 알잖아.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불안해져. 그러다 불행해지지.', '대한민국은 돈만 많으면 뭐든 할 수 있는 나라야. 돈이 최고지.' 등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냅니다. 제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했던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연구>에서 연구에 참여한 각 세대의 대표자들도 이런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위에 나열했던 일련의 행복연구에서 일반인들이 설문조사에 응답한 결과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꽤 일관된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행복수준이 높다'가 일반화된 결론입니다. 물론 이 결론에는 수많은 한계들이 있습니다. 우선 이것은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므로 모든 개인이나 가구, 가족들이 대체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각 소득분위 집단의 평균들 사이에도 본질적이라고 할 만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소득수준과 행복 사이에 수많은 변수들, 그리고 다양한 조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맥락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소득이 많다고 바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득은 많아도 지출이 더 많으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돌보고 있지 않다면, 더 오래 일하느라 과로를 한 탓에 건강을 잃는다면, 행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의 결합, 즉 맥락은 다른 소득계층에도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므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행복의 조건과 요소들이 더 잘 갖춰지고, 이를 통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명제는 참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숲에 있는 눈에 띄게 큰 나무들과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나무들의 불행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송파 세 모녀'는 후자의 작은 나무에 해당합니다. 더 큰 나무들에 가려져서 빛도 제대로 못 보고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나무입니다. 현대화된 문명국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주 큰 나무들도 심상치는 않습니다. 얼마 전 게임회사의 창업자였고, 10조 이상의 자산을 가진 기업인이 해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 정확한 배경과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맞은 비극의 원인이 돈은 아니겠지만 돈과 관련된 것은 사실일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돈이 많은 것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조각이 있습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털린이라는 학자가 주장한 것인데,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행복수준도 올라가지만, 일정 소득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로는 행복수준이 정체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 연구가 시계열 분석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특정 시점에 여러 소득계층의 행복수준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소득수준이 올라갈 때 행복수준도 같이 올라가는지 분석한 것인데, 대체로 그런 경향을 보였지만, 일종의 한계점이 있어서 그 수준을 넘어서자 행복수준이 더 올라가지 않더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그 한계지점은 연봉 1억 1천만원 안팎이었습니다. 보사연의 행복연구에서도 소득분위별 행복수준을 분석하였지만, 최상위 소득분위를 월 1천만원 이상으로 묶어버렸기 때문에 이스털린 역설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정리하면서,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제 결론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조건들의 기본 조건으로서, 소득은 생계가 아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지난 기사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3인 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그 수준은 월 400만원 정도입니다. 만약 이만큼의 소득을 직접 제공해 줄 수 없거나 줄 생각이 없다면, 현물이나 서비스, 공공 인프라를 통해 지출수준을 낮춰주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큰 비용이 들어가게 만드는 사회적 위험의 발생가능성을 낮추면 됩니다. 자신의 일을 통해 400만원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월 1,500만원, 연봉으로 2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들로부터는 세후 1억 5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보장해 준다면 세금을 더 거둬들여도 괜찮다는 다소 거친 제안도 할 수 있겠습니다.

 

7 optimum conditions for happiness at work

행복의 조건은....돈?

https://eveash.com/people-human-resources/7-optimum-conditions-for-happiness-a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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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좋아서 행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둘째, 일과 여가입니다. 보사연의 행복연구에서는 행복의 조건에 '소질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을 질문에 포함하여 묻고 그 수준과 소득분위별로 각 조건의 우선순위를 매기도록 한 뒤 분석하였습니다.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도 항목에 포함되었습니다. '일'은 모든 소득분위에서 4위 안에 포함되었고, 최상위 소득계층에서는 돈보다 더 높은 순위를 보였지만, 대체로 가정과 건강, 돈에 밀렸습니다.

 

그리고 여기 은밀한 맥락이 있습니다. 저는 이전 기사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사연의 행복연구에서 70대, 60대, 40대, 30대, 20대 남성들과 인터뷰를 했는데요. 초기 질문으로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행복 점수는 몇 점인가? 그 점수를 부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련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일'과 관련된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양적 연구의 설문조사처럼 '일'을 처음부터 문항에 넣어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 당연히 답변을 해야 하기 때문에 표시가 되고 다른 항목들보다 우선순위가 높을 수 있지만, 아예 질문에 포함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물어봤을 때는 일의 가치나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인터뷰의 후반에 일에 대해 직접 물어봤을 때도 일이 즐겁거나 의미가 있거나 그 때문에 행복하다는 답변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일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연구 참여자들에게도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일을 하는 거지, 솔직히 즐거워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행복에 일은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습니까?

 

일은 우리의 행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요? 일단 일 자체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대체로 즐겁고,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보람을 느낄만한 것이라면, 행복의 요소들이 증가하고, 행복의 총량도 커질 것입니다. 일의 양과 질도 중요해 보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보다 지나치게 많은 일이 쌓이고 있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며, 그에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심리적으로는 디스트레스를 받고, 신체적으로는 건강이 악화될 수 있으며, 여가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일의 의미를 잃어갈 수 있으며, 그 과정과 결과로 행복감은 매우 낮아질 것입니다. 또한 일에 대한 정해진 보상으로서 급여, 다른 말로 '소득'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자리의 질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위에서 스쳐지나간 한 문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상위계층에서는 돈보다 소질과 적성에 맞는 일이 더 높은 순위를 보였다"는 문장입니다. 실제로는 최상위계층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득분위가 올라갈수록 나타는 일종의 추세입니다. 그러니까 고소득자들은 돈보다 일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이 높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 중에 하나는 '여가생활'의 우선순위가 매우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행복의 조건으로서 1순위를 물어봤을 때는 여가생활이 5위 정도에 머물렀지만, 2순위를 물어봤을 때는 거의 모든 소득계층이 여가생활을 1위로 꼽았습니다. 일과 여가는 '대체관계', 그러니까 일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지면 여가시간이 줄어들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족, 건강, 소득, 일과 여가가 모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겠습니다. 최소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그 '가족'의 생계와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득을 늘릴 생각으로 일을 너무 많이 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고, 여가시간이 줄어들면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해집니다. 그러면서 가족과 관계도 멀어지거나 최소한 더 가까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소득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갖고 있는 '소비'에 영향을 미치며, 가족관계의 질, 그리고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여가를 잘 활용한 사람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겠지요.

 

이처럼 행복의 조건들은 서로 맞물려 있고, 영향을 미치며, 순환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의 중심에 '일과 여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른이 된 이후 우리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아동과 청소년에게는 그것이 '학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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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신일까 복일까?

 

셋째, 종교입니다. 보사연의 행복연구에서 종교는 행복의 조건 중에서 매우 낮은 우선순위를 보였습니다.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를 가지고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종교생활을 제법 열심히 하며, 때로는 종교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거나 싸우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위 연구결과는 우리나라 국민의 종교성이 상당히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의 경우 일요일에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미사와 예배를 드리고, 그중 일부는 몇 시간을 더 머물면서 종교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맥락의 조각도 있습니다. 앞서 일에 대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질적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서 행복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을 때, 30여명의 참여자들 중에서 종교를 언급한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행복하면 떠오르는 말, 행복의 조건, 행복의 요소 등을 탐색한 것인데, 아무도 종교를 떠올리지 않은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절반 가까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나중에 종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았을 때만 자신에게는 종교도 중요하다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저는 한 개신교단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대학에서 일하고 있고, 평생 개신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으니 개신교에 대해서만 설명해 보겠습니다. 종교생활은 개신교 신앙을 가진 사람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다른 종교들이 그러하듯이 개신교에서도 신의 명령이 중요합니다. 개신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의 명령은 '야훼'로 알려진 신,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이들은 그것이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늘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거기에 적힌 신과 영적 지도자들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제가 이해하기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그 하나님의 명령은 생명을 존중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평화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족과 지인도 이웃의 범주에 들어가겠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는 것처럼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 곤경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웃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했으니 말입니다.

 

실제로는 이런 명령을 잘 지키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원래' 구원과 축복을 받기 위해 또는 이미 구원과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하는 명령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른바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낯선 이웃들을 사랑하고 돕기 때문에 로마시대에 기독교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개신교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 돈을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데 사용함으로써 신의 명령을 따르게 되며,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라고 불리는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복신앙'이라고 하여 물질의 복을 구하는 기도를 권장하는 시대가 한국 개신교의 역사에 있었습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게 해달라고, 남편이 추진하는 대규모사업의 계약이 체결되게 해달라고,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개신교인들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 같습니다.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제가 알기로 그것은 개신교인답지 않은 태도입니다. 그런 복은 다른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도 늘 원하는 것이니까요. 기독교인들은 뭔가 다른 걸 행복과 조건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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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멀고도 가까운 행복의 조건

 

넷째, 자유입니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수준을 묻는 항목 중에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freedom to make life choices)'가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사항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항목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보이면서 전체 행복지수가 낮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신에게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반드시 다녀야 하며,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인문계와 실업계, 예체능계 중에서 선택해야 하고, 인문계 안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의 대안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다양성은 제한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모두 선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게 선택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고, 성적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나마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들은 자유가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들도 내가 원해서 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아마도 근무시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직업과 직급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헌법 조항에 적혀 있는 자유의 목록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은 신체, 거주와 이전, 직업선택, 주거, 사생활의 비밀, 통신 비밀, 양심, 종교, 언론출판, 집회결사,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갈등을 빚게 한 것은 이런 자유를 쟁취하려는 노력과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 간의 싸움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영역에서 자유를 제한받을 때 우리는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다섯째, 평등입니다. 헌법에서 자유의 목록은 길지만, 평등은 단순합니다.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합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해 왔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여전히 진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특정한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똑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판결을 받고, 다른 처우를 받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 판단하고 집행하는 자들이 불법을 자행하는 것도 적지 않게 봅니다. 이러한 일들은 그런 처우를 받은 피해당사자의 행복수준을 낮추거나 매우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사회 집단과 구성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차별, 가정과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갑질, 권력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억압,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가는 계급화가 모두 이 헌법적 가치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적어도 명시적으로 옹호하는 구성원이나 집단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는 은밀하게 의도적으로, 다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평등과 차별을 조장하거나 그런 행위를 하거나 당연하게 여깁니다. 김지혜 교수의 얇지만 무거운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그 은밀한 작동기제를 찬찬히 파헤치고 '당신도 마찬가지다'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평등해야 우리는 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행복의 조건으로서 소득, 일과 여가, 종교, 자유, 평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일과 자기 자신, 가족, 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가시간이 필요합니다. 일과 여가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종교가 해당 종교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을까요? 그 종교가 지향하는 믿음과 행위가 그 종교인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지, 그들이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다른 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은 흔들 수도 개정할 수도 없는 헌법의 가치이며, 매우 현실적인 행복의 조건이지만, 행복 연구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영역입니다. 우리 자신이 자유로운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실제로도 평등한지 늘 반성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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