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후 숨진 호프집 사장님... 빈소엔 서울대생 조화 가득...왜
‘낙카(낙성대 카스타운)’
학생들 "어머니 같은 분"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며 온라인에서 추모 잇따라
13일 오후 4시 30분쯤 찾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장례식장. 좁은 복도에 다닥다닥 늘어서 있는 근조화환에는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일동’, ‘39대 서울대학교 사범대 학생회’ 등이 적혀있었다. 이곳은 2010년부터 13년째 서울대학교 근처에서 술집을 운영해온 사장 김은주씨의 장례식장. 김씨의 죽음이 대학교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지자, 술집을 자주 찾던 학생들이 한푼두푼 모아 근조화환을 보낸 것이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술집 ‘카스타운’은 낙성대역 인근에 있다고 해서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낙카(낙성대 카스타운)’로 불리는 곳이다. 이 ‘낙카’를 운영해온 김씨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사장님 그 이상의 존재였다고 한다. 이날 화환을 보낸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신재용(28)씨는 “학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해주시고, 대학 생활의 시작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이모님이 있던 ‘낙카’는 서울대생들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다”고 했다.
김씨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굵직한 20대의 추억을 함께 했다. 이날 오후 장례식장을 찾은 박세훈(26)씨는 “2018년 초에 군대 갈 때는 탕수육, 떡볶이라도 더 먹으라고 챙겨주시고, 지난해 12월 취업했을 때도 축하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울대 사범대생 최경은(24)씨는 “이모님께 오늘 가도 되냐고 여쭤보면 ‘자리 없는데 경은이 오면 자리 만들어준다’며 원래 안 여는 방도 열어주고 그러셨다”면서 “예전에 술 취한 학생이 만취해 몸을 못 가눴는데 사장님 부부가 직접 차를 몰고 1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사는 학생을 데려다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 동아리 회식, 축제와 같은 좋은 날만 이 ‘낙카’를 찾는 건 아니었다. 풋내기였던 학생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취업을 준비하며 쓴맛을 볼 때나, 직장을 얻어 학교를 떠난 후에도 이곳을 찾아 술잔을 기울였다. 서울대 사범대생 박지윤(26)씨는 “졸업을 조금 늦게 해서 힘들어할 때 이모님께서 그래도 잘 될 거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셨던 게 기억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례식장을 직접 찾지 못하는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조문글을 남겼다. 온라인 부고 사이트에는 발인날인 14일 오전까지 270개가 넘는 조문 메시지가 달렸다. “찾아가는 수많은 학생들 중에 한 명이었을 뿐이었는데도 갈 때마다 알아봐주시고 웃으며 맞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등의 내용이었다. 한 외국인 학생은 “지내던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 와있는 동안 카스타운에서 지낸 시간만큼은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습니다”라고 했다.
학생들이 김씨를 추억하는 만큼, 김씨에게도 학생들은 손님 이상의 소중한 존재들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고 난 뒤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 10일 오전 세상을 떴다. 김씨의 남편인 이광천(53)씨는 “아내가 학생들을 자주 봐야 하니 3차 백신을 맞는 것이 좋겠다며 접종을 하고 내게 자랑하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찾아올 줄 몰랐는데, 학생들을 좋아하던 아내가 가는 길이 쓸쓸하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박정훈 기자 조선일보
-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주택 구매 대출⋯
-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원인 분석 결과⋯
- 미래지향적 하우스 톱 15 VIDEO:TOP 15⋯
- 현대건설 컨소시엄, 파나마 메트로 3호⋯
-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회담 진전...전⋯
케이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