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1) [박종진]

 

 


종이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1)
2022.02.16

"밀향지(蜜香紙)는 밀향수의 껍질로 만드는 것으로, 엷은 갈색이며, 무늬가 마치 생선 알과 같으며, 매우 향기가 나고 질기며, 물에 담가 두어도 썩지 않는다. 태강 5년(서기 284년)에 로마에서 종이 3만 폭을 바쳤는데, 황제는 만 폭을 진남대장군 두예에게 하사하여 《춘추석례》 와 《경전집해》를 편찬하여 바치도록 했는데, 종이가 도착하기 전에 두예가 죽어서 명령을 내려 그 집안에서 그것을 보관하게 되었다."
-《중국제지 발전사》 94 페이지 2012년 펴낸곳 學古房-

밀향지는 무슨 종이일까요? 3세기 경에 로마에 종이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권(圈)에서서 사용하던 파피루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파피루스는 종이가 아닙니다. 종이는 반드시 두드려 풀어헤치는 고해(叩解) 작업을 거친 식물의 섬유로 만들어진 것이 종이입니다. 파피루스는 영어 페이퍼(Paper)의 어원이 되었지만 고해 작업 없이, 나일 강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의 껍질을 벗긴 것을 얇게 잘라 가로와 세로로 붙여 건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이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1) [박종진]
(좌) 파피루스 / (우) 마대의 표면 같은 파피루스 표면


진짜 종이의 역사는 서기 105년 만들어졌다는 채륜의 종이가 가장 유명하지만 현대 고고학은 기원전 2세기경에 시작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파피루스가 당시 중국(진(晉)나라)에 쓸모가 있었을까요? 진남대장군 두예가 죽어 책 편찬이 중단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핑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왜냐면 표면이 고르지 않아 붓(筆)으로 파피루스에 글을 쓰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파피루스는 이후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그 집안에 계속 보관되다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종이 역시 갈대 펜(Reed pen)과 첨필을 사용했던 로마에서 환영받지 못했을 겁니다. 끝이 뾰족하고 딱딱한 갈대 펜과 종이는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서예나 동양화에 사용되는 선지(宣紙)에 펜촉으로 글씨 쓰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이웃 지역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종이는 붓을 쓰고 같은 유교 문화권인 인접한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전해졌을 것이고, 일본은 우리나라가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파피루스 역시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지중해 인근(隣近)을 석권한 것처럼 유럽에 도달하는 데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둘은 커다란 차이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종이는 종이를 만드는 기술 즉 제지술(製紙術)까지 전파된 반면 파피루스는 계속 이집트에서 독점하고 생산했다는 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 강에서만 자라는 식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유명한 두 역사적 사실이 그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먼저 종이입니다. 《일본서기》에 "고구려 영양왕이 610년 봄 3월에 승려 담징과 법정을 일본에 보냈다. 그 중 담징은 오경에 능통 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을 잘 그리고 그림 그리는 물감과 종이, 먹을 만들 줄 알았으며 물레방아를 만들어 처음 돌렸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고구려인 담징이 제지술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파피루스에 연관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 지중해 인근 페르가몬(Pergamon)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경쟁하는 도서관이 있었는데, 경쟁을 싫어했던 이집트가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자, 당시 페르가몬의 왕이 양피지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양피지를 페르가먼트(Pergament)라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양피지를 뜻하는 영어 파치먼트(Parchment)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양피지는 아주 오래전(기원전 약 2500년 경)부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페르가몬에서 만든 것은 채륜이 종이를 만든 것처럼 획기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개선하고 정립한 것이겠지요.

어찌됐든 종이와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이리 저리 움직일 수 있고, 파피루스는 이집트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이는 서기 750년경에 이르면 같은 문명권인 동쪽, 남쪽으로 가던 것이 다른 문명인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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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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