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원의 감동 [임종건]
50만 원의 감동
2022.02.11
6년 전인 2016년 8월 나는 이 칼럼에서 ‘비전 트립’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해외의 불우 아동을 돕는 컴패션 코리아라는 자선단체를 통해 10년째 후원해 온 아프리카 우간다의 로날도 아테게카라는 어린이를 만나고 온 여행기였습니다.
당시 고교 2학년이었던 아테게카는 이제 고교를 졸업하고 직업훈련학교를 거쳐 나이 25세의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작년 11월 직업학교에 다니는 그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띄웠습니다.
나는 편지에서 15년 동안 너를 후원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것, 학교를 졸업하여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은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무슨 일을 하든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나는 15년 동안 매달 4만 5천원의 후원금을 보내어 아테게카의 교육비와 양육비를 후원해 왔습니다. 생일 때와 크리스마스 때는 후원금보다 적은 금액으로 선물금을 보냈습니다. 나는 마지막 편지에서는 글만이 아니라 특별한 뜻을 동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컴패션 코리아에 문의했습니다. 정한 금액을 초과하는 후원금, 지정된 날짜 이외의 선물금, 후원금 이외의 물품을 보내는 것 등을 금하는 것이 컴패션의 후원 원칙입니다. 컴패션 코리아는 ‘독립 축하금’ 성격의 나의 후원금 전달은 무방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편지에 격려금 50만 원을 넣어 보냈습니다. 사회인으로 무슨 일을 하든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직업훈련을 계속한다면 교육비로 보탬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지난달 초 아테게카로부터 온 편지는 나에게 형언키 어려운 감회를 갖게했습니다.
아테게카는 그 사이 미용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차린 미용실 내부를 배경으로 찍은 얼굴사진과 함께 그동안의 후원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코흘리개 소년이 어엿한 사업가로 성장한 모습도 대견했지만, 한국 돈 50만 원이 우간다에서 발휘하는 가치를 발견한 것은 놀라움이었습니다.
아테게카는 컴패션 우간다로부터 165만8,100 우간다 실링의 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돈으로 그는 28가지의 미용기구 및 비품들을 샀다면서 그 명세를 적어 보내왔습니다. 그 돈은 아테게카에게는
아주 쓸모 있는 창업자금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그가 샀다는 미용도구의 품목과 가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단위 : 실링)
▲미용기계 2개-40만 ▲전선연장코드-2만5,000 ▲40W 전구-2만 5,000 ▲형광전구 2개-3만 ▲태양열선풍기-6만 ▲소파-20만 ▲태양열충전지-7만 ▲플라스틱 빗자루-8,000 ▲태양열패널 20W-3만 5,000 ▲태양열전구 4개-2만 ▲1.5mm 철선 20m-3만 ▲태양열 Lump Holder-1만 2,000 ▲pacolater-3만 ▲거울 2개-22만 5,000 ▲커튼-8만 ▲샴푸-3만 ▲무스액-2만 ▲안면세척제-1만 6,000 ▲화장분 4개-1만 ▲솔과 빗-6,000 ▲수건-1만 ▲미용오일-6,000 ▲나무의자-3만 ▲3개월 월세-21만 ▲운송비-2만 ▲사탕-100 ▲앞치마 3개-3만 ▲젤리-2만
50만 원이면 한국에선 4인 가족이 외식 한 번 하면 그만인 돈입니다. 그러나 이 돈이 우간다에서 이렇게 큰돈이라고 생각하니 원화가치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스럽고,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인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나라가 부자일수록 그 나라의 돈은 가치가 큽니다. 나라가 가난하면 가치가 떨어지고 나라가 부도라도 나면 돈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립니다. 1997년 IMF외환위기 때 한국은 급격한 원화가치의 하락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수출을 잘 해서 외화를 벌어들여야 합니다. 아울러 나라와 기업과 가계가 모두 재정적으로 안정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 자유민주체제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5,000달러(2021년 기준)의 선진국이 되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된 유일한 나라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자산을 제3세계 국가들과 나누어 세계를 보다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비전이어야 합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사람을 뽑는 대선이 불과 한 달도 안 남았습니다. 난무하느니 네거티브요, 코로나19를 핑계댄 돈풀기 경쟁뿐입니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의 비전을 말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원화의 가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가치가 국제사회로부터 높이 인정받고 고마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어줄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유시장민주주의의 확고한 신봉자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가 빚을 조금은 무서워하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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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및 사장, 한국신문협회 이사를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퇴임 후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현재 한국 ABC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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