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서 소음 이야기] 샷 망치지 않으려면

 

골프장에서 "OK" 빼곤 모두 구찌

 

   2020년 10월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컨트리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샌더슨 팜스 챔피언십 마지막 날 18번홀.

스페인 출신 세르히오 가르시아(42)의 70㎝ 버디 퍼트 성공으로 승부가 결정 났다. 퍼트 스트로크를 하는 순간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필드에서 소음 이야기] 샷 망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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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은 눈을 감는 가르시아의 퍼트 기법을 화제 기사로 올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실은 3년 전부터 이 방식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날도 1번홀 3m와 4번홀 2.5m 버디 퍼트를 모두 눈감고 성공시켰다. 스트로크 순간 눈을 감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손목 꺾임과 고개 회전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골프계에 회자되는 "퍼트는 귀로 확인하라"는 격언이 가르시아를 통해 증명되는 장면이었다. 보지 않고 대신 듣는 행위가 몰입과 집중에 특효약임을 못 박은 셈이다.

 

와인 3락(樂)이란 말이 있다. 와인은 눈으로 즐긴 다음 코로 자극받고 마지막으로 혀로 음미한다.

골프는 소리의 향연이다. 소리를 즐기고 소리에 무너진다. 변화무쌍한 소리를 컨트롤하는 과정이다.

 

티잉 구역에 올라 셋업을 할 때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때 동반자들의 조그만 소곤거림이 귀를 어지럽힌다.

 

백스윙 톱에서 다운스윙으로 연결되는 순간까지 소리나 다른 홀에서 불쑥 함성이 들리면 미스 샷으로 이어진다. 이때 셋업을 풀 수 있다면 대단한 멘탈 소유자이거나 프로선수다.

 

훌륭한 티샷은 눈으로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파장이 짧고 경쾌한 타구음이 나오면 성공적인 티샷이다.

 

울리는 소리가 둔탁하면 정타에서 벗어났다. 거리 손실을 입거나 방향이 원활하지 못하다. 공이 클럽 페이스의 무게중심에 정확히 맞으면 울리지 않는다.

 

"새 드라이버를 샀는데 치기에 훨씬 편하고 방향도 좋아. 그런데 임팩트 순간 소리가 별로야."

 

 

종종 골프를 함께하는 고교 선배가 티샷을 해놓고 푸념했다. 옆에서 보기엔 훌륭한 티샷이었는데 실제 가보니 예전보다 10m 정도 덜 나갔다.

 

타구음도 둔탁해 청량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쾌한 타구음을 들으면 해방감을 느낀다.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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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웨이에서의 아이언샷도 소리에서 승부가 난다. 멋진 아이언샷은 "짝"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완성된다.

이때 클럽이 손에 착 감긴다. 옆에서 지켜보는 동반자도 기분 좋은 감각을 향유한다.

 

때리는 소리가 나면 뭔가 불만족스럽다. 손도 아프다. 정타가 아니면 소리 자체가 맑지 않다.

 

페어웨이에선 온간 소리와의 싸움이다. 공을 치려는 순간 동반자가 캐디에게 자기의 남은 거리를 물어보거나 클럽 번호를 거명하며 가져오라고 말한다.

 

물론 고의가 아니라지만 샷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갑자기 다른 홀에서 "볼~"이라는 경고음이 날아들어 샷을 망치기도 한다. 이때 웬만해선 셋업을 풀지 못하고 그대로 진행한다.

 

 

골프대회에선 갤러리들의 정숙을 요구하지만 아예 술 마시고 고함을 지르는 대회도 있다.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16번홀로 갤러리들에겐 골프 해방구로 통한다.

 

경험 많은 캐디는 공이 나무나 바위에 맞는 소리만 듣고도 페어웨이로 들어왔는지 OB구역으로 나갔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일단 소리가 크고 선명하게 들리면 살았을 확률이 높다.

 

페어웨이 방향으로 튀어나와야 선명하게 들린다. 튀어서 밖으로 멀리 나가버리면 소리도 가늘고 작다.

 

과학 용어로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다. 음원이 관측자에게 가까워지면 파장이 짧아져 크게 들리고 멀어지면 파장이 길어져 가늘게 들리는 현상이다.

 

개방된 공간에선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른 홀에서 "볼"이란 소리를 들으면 어느 방향에서 공이 날아오는지 도무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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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땐 무조건 머리를 숙여 쭈그리는 게 상책이다. 방향을 분간 못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볼~"이 아니라 "포어(fore)~"가 정확한 표현이다.

 

 

 

 

페어웨이에서 잘 보이지 않는 연못(해저드)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거나 다른 홀 상황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만약 보이지 않는 동반자라면 연못에 공을 찾으러 갔을 수도 있으니 챙겨야 한다.

 

전국 골프장에 해마다 연못 익사 사고가 한두 건씩 생긴다. 구조 요청을 하더라도 동반자들이 자기 플레이에 집중하기에 들리지 않는다.

 

연습장에서 교습가들은 눈으로 보지 않고 임팩트 순간 나는 소리만 들어도 귀신같이 정타인지 구별한다. 소리에 스윙의 모든 과정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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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io garcia via youtube  edited by kcontents

 

그린에서야말로 소리와의 전쟁이다. 내리막 경사에서 동반자의 결정적인 한마디가 3퍼트로 연결된다. 소위 구찌가 가장 난무한다.

 

승부를 가름하는 퍼트라면 잡음이나 구찌가 심할 때 셋업을 풀고 재시도하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경험과 고도의 자제력이 요구된다.

 

퍼트 실패는 대부분 손목을 꺾거나 미리 페이스를 열고 닫는 데서 비롯된다. 주범은 눈으로 공이 홀에 들어가는 것을 먼저 확인하려고 해서다.

 

눈으로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니 그립을 잡은 손이 따라 돌아간다. 공을 치는 순간 눈은 그대로 고정하고 귀로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게 정석이다.

 

 

 

 

가르시아는 아예 눈감는 경지에 올랐다. 보지 않고 듣겠다는 의도다.

 

이때 나는 "땡그랑"은 천상의 소리다. 맑고 가벼운 성공음이 튀어나온다. 요즘은 홀컵이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이 소릴 듣기 힘들다.

 

정작 골프장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따로 있다. 80㎝ 내리막 경사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퍼트를 하려는 순간 들려오는 "오케이(OK)" 한마디는 복음이다. 골프에서 OK 빼곤 모두 구찌라는 말도 있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매일경제

 

Sergio Garcia's Biggest Driving Secrets To HIT YOUR DRIVER STRA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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