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조원 재난지원금 도대체 뭐가 남았나..."그 돈으로 GTX 노선 4개 건설할 수 있어"

 

 

나랏돈 국민 혈세를 자기 마음대로 써

 

박정희·박태준, 역경 딛고 대일청구자금으로

제철소 건립해 한국 산업화의 기적 일으켜

 

“돈 내 맘대로 쓰지마라”는 이건희 명언 되새겨야

 

   1960년대 말 대일 청구 자금으로 건설한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다. 1965년 박태준 포철 사장은 “공업 국가의 꿈을 실현하려면 제철소를 건립해야 한다”는 박정희 대통령 명에 따라 제철소 건립에 착수한다. 문제는 1억달러가 넘는 건립 자금. 박태준은 1969년 초 미국 워싱턴을 오가며 세계 5국 8개 회사 연합인 국제차관단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한국에 제철소를 짓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는 냉정한 평가와 함께 고배를 마셨다. 낙담한 박태준이 대안으로 떠올린 것이 한일 협정에서 농업 부문에 쓰기로 한 대일 청구 자금 전용이었다. 박태준은 수없이 일본을 오가며 설득한 끝에 일본 정부의 승인과 일본 철강업계의 기술 지원을 받아내 영일만 허허벌판에 첫 삽을 떴다. 박태준이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 제철소는 조상의 피 값으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각오를 다졌다는 대목에서는 숙연함마저 든다.

 

25조원 재난지원금 도대체 뭐가 남았나...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5차 재난지원금) 오프라인 신청 첫 날인 지난해 9월 13일 대전 중구 산성동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국민지원금 방문신청 및 이의제기를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신현종 기자

 

 

 

 

1972년 제철소 건설이 한창일 무렵, 박정희 대통령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조선소 건립을 요청한다. 포항제철에서 곧 양질의 조선용 후판을 제공할 테니 조선소를 건립하라는 불같은 지시였다. 차관 도입을 위해 미국·일본을 돌아다녔다가 푸대접만 받았던 정주영은 영국 바클리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바클리은행마저 차관 제공을 거절하자, 정주영은 이 은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럽 선박업계 거물을 찾아가 500원권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키며 “한국은 영국보다 무려 300년 전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해, 차관 도입과 함께 선박 2척을 수주했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한국 산업화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만약 박정희가 제철소 건립 대신 국민들에게 대일 청구 자금을 나눠줬다면 지금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 1위의 조선과 가전, 세계 5위의 자동차 산업을 일구기는커녕 농업과 소비재 산업에만 의존하다 몰락한 남미 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5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 43조4600억원을 살포했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지원 외에 전 국민에게 나눠준 돈만 25조3000억원에 이른다. 문 대통령은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했다.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지만, 25조원은 분당만 한 신도시를 조성해 국민들에게 시세의 반값으로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약속하는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노선 4개를 모두 건설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신 노선 4개 중 1개라도 먼저 완성해 수도권 외곽에서도 서울 직장으로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게 했다면 젊은 세대가 지난 4년간 도심의 낡은 빌라라도 사겠다며 그 난리를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짜로 생긴 돈으로 삼겹살을 사 먹는 기쁨이 아무리 크다 한들, 부채를 잔뜩 지고 ‘영끌’해서 산 주택 가격이 떨어질까 봐 밤잠을 설치는 괴로움을 10분의 1이라도 상쇄하겠나.

 

 

게다가 정부가 개념 없이 뿌린 돈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보복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 작년 하반기부터 농산물에서 음료, 비누·샴푸·화장지, 주류·과자류, 삼겹살·설렁탕·치킨·라면·영화 관람료까지 안 오른 게 없다. 지나치게 많이 풀린 돈이 주식·부동산 버블에 이어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고 이제는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스멀스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작년 재난지원금 덕에 공짜 삼겹살을 즐겼던 서민들이 앞으로는 두고두고 더 비싼 삼겹살을 먹게 생겼다.

 

리더는 돈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직접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지는 못할망정, 남이 죽어라 고생해서 벌어온 돈을 적어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쓰려는 염치는 있어야 한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돈을 내 맘대로 쓰지 마라. 어떻게 쓰는 게 가치가 있는지 돈에 물어보라. 판단이 흐리면 낭패가 따른다”고 했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라도 곱씹어 보기 바란다.

조형래 산업부장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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