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六堂)처럼 덕담하기 [노경아]

 


육당(六堂)처럼 덕담하기
2022.01.03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의 시 ‘해’입니다. 자연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이지만 이 시에는 뜨거운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 밝게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읽힙니다. 그런 까닭에 새해 첫날 아침과 참 잘 어울리는 시입니다.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1일 새벽 아무것도 담지 않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 근처 배봉산으로 향했습니다. 아뿔싸! 해맞이 명소도 아닌 야트막한 동네 뒷산인데 ‘해맞이 불가’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하다 중랑천 공원 벤치에 앉아 해맞이를 했습니다. 늘 보던 태양이지만 새해 첫날 아침 솟아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니 마음이 설렜습니다. 인생에 새로운 희망을 걸었기 때문일 겁니다.

해돋이는 해 뜨기 전 어둠 속에서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 더욱더 아름답습니다. 기다림 끝에 해가 떠오르자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섰습니다. 태양빛 때문인지, 사람들의 얼굴이 소망과 행복으로 곱게 물듭니다.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중년 부부도, 포옹하고 키스하는 젊은 남녀도, 왈왈 짖어대는 강아지들도 모두모두 아름답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집에서 떡국을 끓여 먹고 나니 스마트폰 문자로 연하장들이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전부터 휴대폰 문자가 연하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받는 이의 이름도 없는, 의례적인 문구의 연하장을 받으면 좀 서운하기도 합니다. 나만을 위한 ‘맞춤’이 아닌 ‘기성복’ 같은 느낌 때문일 겁니다.

덕담(德談)의 계절입니다. 이맘때면 연하장 받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정성스럽게 손글씨로 마음을 전하는 글을 읽으면 한겨울 추위가 봄눈처럼 녹아내렸습니다. 아랫목에 엎드려 오랜 친구의 오글거리는 문장들을 읽으면 나도 몰래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까맣게 잊고 있던 학교 선배나 동기한테서 연하장이 오면 며칠 동안 설레기도 했지요. 새해를 맞으며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축복의 글을 보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을 얻곤 했습니다.

덕담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입니다. 상대방이 뜻한 바를 이루길 바라는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육당(六堂) 최남선은 ‘조선상식-풍속 편’(1948)에서 언어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언어에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그는 “덕담은 말한 대로 실현된다고 믿으면서 하는 말”이라며 “따라서 덕담은 과거형으로 해야 바람이 꼭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내 집 마련이 꿈인 조카에겐 “올봄에 집을 샀다지. 축하한다”, 1인 방송인이 되고 싶은 친구에겐 “전 세계 팔로어가 수천만 명이라고. 대단해”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육당의 말대로 미래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덕담을 건네니 정말로 좋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뭐든 잘될 것만 같습니다.

자유칼럼 독자님들, 2022년엔 웃음이 넘쳐나고 바라던 것들을 다 이루셨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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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 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 담당 연구원, 이투데이 교열팀장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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