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사와 고란초, 고석정의 고란초를 보며 [박대문]

 


고란사와 고란초, 고석정의 고란초를 보며
2021.12.22

 

고란사와 고란초, 고석정의 고란초를 보며 [박대문]
고란초 (고란초과) 학명 Crypsinus hastatus (Thunb.) Copel.


‘고란초(皐蘭草)’ 하면 백제와 고란사(皐蘭寺)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란사에서 고란초를 볼 수가 없습니다. 지난달 철원 한탄강 강줄기에 우뚝 솟은 고석정(孤石亭)에서 싱싱하고 튼실하게 자라고 있는 고란초를 만났습니다. 굳세고 활기차게 자라는 고석정의 고란초를 보면서 고란사 사찰 이름의 근원이며 백제 왕궁과 궁녀의 애환이 얽혀 있는 고란사의 고란초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꺽정(林巨正)의 전설이 담긴 고석정과 백제의 전설이 얽힌 고란사의 고란초가 중첩되어 떠올랐습니다, 고란사의 고란초가 고석정에서처럼 풍성하고 활력 있게 잘 자라지 못하고 사라진 이유가 뭘까? 백제와 삼천궁녀가 잊혀 가듯 고란사의 고란초마저 잊혀 가니 우리 가요 ‘백마강’의 노랫말이 더욱더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고란사는 충남 부여읍의 부소산(扶蘇山) 북쪽 백마강변에 있는 절입니다. 고란사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98호,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사찰의 유래는 암벽에 자라고 있는 고란초로부터 온 것이라 한다....』, 또 다른 ‘고란초와 고란 약수’라는 안내판에는 『... 전설에 따르면 백제 임금이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 오게 하였다. 이때 고란약수터 주변에서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불렀는데, 약수를 떠 오는 궁녀들이 임금에게 바칠 물동이에 고란초 잎을 한두 개씩 물 위에 띄워 옴으로써 고란 약수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고란초는 백제 시대에 이미 백제 궁중에 알려진 식물이며 고란사가 있기 이전부터 고란 약수(皐蘭藥水)가 있었고,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자랐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고란초가 있어 ‘고란사’라는 사찰 이름이 붙여졌지, 고란사가 있어 고란초라는 식물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란초 없는 고란사가 되고 말았으니 고란사의 고란초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고란사와 고란초를 생각하면 가요 ‘백마강(손로원 작사, 허 민 노래)’의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먼 역사의 뒤안길, 백제는 멸망하고,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진 삼천궁녀는 잊혀 갔지만 그래도 고란사, 고란초, 낙화암이 남아 있어 그 옛날을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란초마저 사라져 고란초 없는 고란사가 쓸쓸히 옛터를 지키고, 말 없는 백마강과 낙화암에 고란사의 종소리만이 더욱 애잔하고 슬프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고란초 없는 고란사는 붕어 없는 붕어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필자가 수년 전 고란사에 갔을 때는 고란정(皐蘭井) 위 암벽 틈에 고란초라고 쓰인 표지판 옆에 고란초 두세 포기가 보일 듯 말 듯 연명하듯이 붙어 있었는데 최근 전해 들은 바로는 그나마도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백제의 멸망과 삼천궁녀의 애절한 참사를 지켜보며 백마강과 함께 유구한 세월을 이어오며 잘 자라던 고란초가 최근 들어 자취를 감췄을까?

고란초는 기후변화나 수질오염 같은 환경오염에 민감한 특성이 있어 환경지표 식물로서도 가치가 높은 식물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고란사의 보수공사와 함께 고란정 위에 약수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붕을 설치했습니다. 그 결과 고란정에서 물이 증발하여 위에 자라는 고란초가 필요한 수분을 섭취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약수터의 지붕 때문에 수분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공기 흐름을 방해하고, 수많은 관광객 왕래에 따른 어떠한 영향으로 고란초가 쇠퇴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란사와 고란초, 고석정의 고란초를 보며 [박대문]
고란사의 고란초를 생각나게 하는 고석정(孤石亭)의 고란초


고란초는 양치식물로 고란초과에 속합니다. 혹한기의 한겨울에도 푸르게 그 자태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견뎌내는 상록 다년초입니다. 이름은 흔히들 백마강변의 고란사 뒤편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고란사에 세워진 안내판 내용을 보면 그 반대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 고란초가 있어 고란사라 했지, 고란사 뒤편에 있어 고란초라 명명했음이 아니라는 것이 안내판의 설명입니다. 고란초는 고란사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몇 군데, 특히 공기에서 습기를 취할 수 있는 강가 절벽이나 바닷가 숲속에서 자라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고란초 생김새의 특징은 주맥이나 측맥이 뚜렷하고 잎 가장자리는 검은빛이 도는 물결 모양이며 잘 자란 잎몸은 2∼3개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또한 잎몸 중앙맥 양쪽에는 지름 2∼3mm의 둥근 포자낭군이 2줄로 배열하고 있는데 익으면 황색으로 변하고 포막은 없습니다. 잎몸 앞면에 오돌오돌한 원형 자국이 돋보이는데 이 부위 뒷면에 포자낭군이 붙어 있습니다. 뿌리줄기는 길게 옆으로 뻗고 잎자루는 길이가 5∼25cm, 딱딱하며 광택이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약재로 이용합니다. 종기와 심한 염증에 효과가 있고 소변을 잘 보지 못할 때도 사용합니다.

고란초는 그늘진 곳에 일단 뿌리를 내리면 공중의 수분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이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고석정의 고란초는 한탄강 강줄기 한가운데 솟아 있는 기암에 붙어 자라고 있어 고란사의 고란초처럼 수분 흡수의 장애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철원 팔경 중의 하나로서 철원 제일의 명승지이므로 많은 관광객이 오갑니다. 또한 조선 명종 때에 의적당(義賊黨)의 두목 임꺽정(林巨正)이 활동하면서 칩거했던 곳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어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곳입니다. 그러한 만큼 앞으로 그 주변에 어떤 관광시설이 들어설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이 주변을 개발할 경우 관계 당국은 고란초의 생태 특성을 감안하여 이곳 고석정의 고란초에는 고란사의 고란초처럼 멸종위기에 당면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2021.12월 고석정의 고란초를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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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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