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뒤집기를 위하여 [정숭호]
이재명의 뒤집기를 위하여
2021.12.16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과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은 둘 다 안경을 꼈다는 점 빼고도 닮은 게 많습니다. 이재명을 지극히 싫어하는 사람들은 “뭐라? 6·25 때 신속한 미군 파병을 결정해 자유 한국을 지켜 준 트루먼이, 미국에서 ‘존경하는 대통령 조사’를 하면 언제나 5~8위 안에 들어간다는 트루먼이, ‘극혐’ 이재명과 어디가 닮았다는 거냐?”라고 하시겠지만 트루먼의 인품에 반해 『트루먼-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이라는 책까지 낸 ‘트루먼 전문가’로서 하는 말이니 제 말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둘의 닮은 점 몇 가지 꼽아보겠습니다.
첫째는 둘 다 어렵게 자랐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비천한 집안’ 출신이라고 밝힌 이재명의 성장기는 많이 알려졌으니 생략하겠습니다.) 트루먼은 미국 중서부 농촌 지역인 미주리주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 해 빠진 뒤까지 땅 파고 소여물 주고 밭 갈고 씨 뿌리고 소젖을 짰습니다. “농사라면 지긋지긋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농부였음을 자랑으로 삼은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은 못 갔습니다. 고등학교 학력으로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은 트루먼 이후에는 없습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삼십대 중반에 가게를 차리면서 진 빚을 평생 갚아야 할 정도로 돈이 없었습니다. 집이 없어 백악관에서 살던 때를 빼고는 평생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인 1958년 대통령 연금제도가 도입된 후에야 돈 걱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둘 다 지방 행정가 출신으로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도 트루먼 부분만 쓰겠습니다. 이재명이 “한다”는 거 역시 잘 알려졌으니까요.) 연방 상원의원으로서 워싱턴의 중앙 정계로 진출하기 전 트루먼은 미주리주의 큰 도시인 잭슨카운티에서 ‘판사(Judge)’를 지냈습니다. 그때 판사는 행정가였는데, 트루먼은 지역 조폭이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카운티 발주 공사를 독점하는 걸 단호히 끊어버렸습니다.
자동차가 마차를 몰아내고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던 시대라 도로망 확충과 포장 공사가 막대한 이권이 되었고, 조폭들은 스스로 건설회사를 차리거나 업자를 끼고 마구 해 먹던 때였습니다. 눈 감아준 판사가 백만 달러 챙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큰돈인 백만 달러가 근 백 년 전에는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는 모두 미국 사학자 데이비드 매컬로우가 써서 1993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트루먼 전기에 다 나옵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반듯이 자라나 ‘공평무사’가 무엇인지 잘 아는 판사 트루먼은 이 꼴을 참고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명실상부한 경쟁입찰제를 도입하고, 부실 공사는 반드시 배상토록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조폭들과 정상배들의 먹거리를 식탁에서 치워버리겠다고 각오한 거지요.
트루먼의 각오는 지역 조폭들의 속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사실 트루먼은 판사 선거에서 이 조폭 우두머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때 미국의 지방정치도 조폭이 좌지우지했던 모양입니다. 트루먼의 ‘배신’에 분노한 이 우두머리는 트루먼을 불러 “너 따위는 다음 선거에서 단칼에 날릴 수 있다”며 협박했지만 트루먼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트루먼 덕분에 납세자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연방 상원의원이 되어서는 군수산업체들이 2차대전이라는 비상 상황을 이용해 무기 등 군수 물품과 군부대 병영 건설공사의 단가를 마구 올리는 방식으로 ‘이윤극대화’에 나서자 특별위원회(트루먼위원회)를 구성,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군부는 트루먼위원회가 군수물자의 가격과 계약 과정, 납품 과정을 시시콜콜 따지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며 위원회 활동을 공공연히 반대했고 트루먼을 위협했습니다. 트루먼은 “제대로 하는 것이, 원칙대로 하는 것이 승리의 시간을 줄이는 길”이라며 굽히지 않았습니다. “트루먼은 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자기 할 일을 해버린 겁니다. 위원회가 현장 조사에서 불량무기, 불량함정, 날지 못하는 비행기까지 만들어 납품한 사례까지 찾아내자 군부는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트루먼위원회는 군수품 예산만이 아니라 장병들과 국민의 희생도 줄였습니다.
세 번째는 대통령선거를 둘 다 ‘언더독(열세 후보)’으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둘 다 기득권 공격을 기본 선거 전략으로 삼은 것도 비슷합니다. 1948년 미국 대선에 현직 대통령인 트루먼은 민주당 후보로 지명돼 재선에 나섰지만 모든 여론조사는 그가 진다고 전망했습니다. 그가 이길 거라고 내다본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자 더 이상의 여론조사는 무의미하다며 투표일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모든 여론조사 회사가 조사를 그만둘 정도였습니다. 언론도 현직 대통령인 그에게는 조명을 비추지 않고 경쟁자인 공화당의 듀이만 챙겼습니다. (듀이는 뉴욕주 검찰총장을 지냈습니다. 상대가 전직 검찰총장이라는 점도 트루먼과 이재명은 닮았네요!!)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루스벨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아무 준비 없이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았음에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종전 직후에는 지지율이 80%를 훌쩍 넘었습니다. 하지만 물가 급등, 실업 증가, 주택난, 노조 파업, 흑백 갈등 등등 전쟁 후유증에 때문에 지지율은 급락했습니다.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은 벌써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압도적으로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로 트루먼은 ‘사상 최고의 역전승을 거둔 대통령’이라는 평가까지 듣게 됐습니다. 트루먼이 승리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꼽힙니다. 상대방이 여론조사 결과만 믿고 안일하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 트루먼은 겸손한 자세로 밑바닥을 훑고 다녔던 것이 승리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트루먼은 부인과 외동딸까지 유세에 데리고 다니며 때로는 그들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가정이 화목함을 보여줬지만 듀이는 명문가 출신 부인을 유권자들에게 그렇게까지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듀이는 선거운동 내내 갈등을 해소하자며 ‘통합(Unity)’만을 강조한 반면 트루먼은 유세장에서 만난 농부와 노동자 등 서민들의 손을 붙잡고 “나도 농부였다오. 내가 당신들 문제를 잘 알지, 암 알고 말고”라며 ‘밑바닥 정서’를 훑었습니다. 트루먼은 유세가 끝나면 수첩에 그 지역의 투표 결과를 자기 나름 예측해 적어뒀는데, 실제 투표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고 합니다. 어떤 여론조사보다도 더 정확한 예측이었던 거지요. 트루먼은 이 수첩을 한 기자에게 특종을 하라고 보여줬지만 그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론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집권 여당 후보인 이재명도 20대 대선을 80여 일 앞둔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에 뒤지고 있습니다. 이재명은 과연 이 격차를 뒤집을 수 있을까요, 뒤집으려면 무얼 해야 할까요? 트루먼을 통해
이재명을 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트루먼은 말을 뒤집은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집 출신이라고 스스로를 비천하다고 생각한 적도 말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겸손하고 친절했습니다. 여기서는 이 말 하고 저기서는 저 말 한 적도 없습니다. 전임자 루스벨트가 이끌었던 '뉴딜정책'의 부작용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지만 트루먼은 후퇴하지 않고 오히려 뉴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맞받아쳤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명언도 많이 남긴 트루먼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여론조사를 했다면 유대인들을 가나안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을까?”라는 말도 했습니다. 여론조사가 결정의 유일한 근거는 아니라는 뜻인데, 이재명이 요 며칠 사이 “국민의 뜻이라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부동산 정책, 탈원전 정책 등 지난 5년간 민주당 정부의 정책이자 자신도 앞장서 지지했던 정책을 기름 끓는 프라이팬에서 빈대떡 뒤집듯 뒤집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박정희, 전두환을 호남에서는 악의 화신처럼 비유하더니 영남에서는 “공도 있는 사람들”이라며 말을 바꿨습니다. 말을 뒤집으면 판세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런 뒤집기 때문에 “저렇게 쉽게 자주 뒤집는 걸 보면 이재명은 당선되면 지금 하고 있는 자기 말을 순식간에 뒤집을 거”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트루먼과 이재명은 닮은 게 아니라 매우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재명이 지금처럼 뒤집기를 계속한다면 이름-Truman-처럼 진실하고 겸손하게 선거운동을 했던 트루먼과 같은 뒤집기를 보여 주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재명 지지자들 사이에 이재명 자서전 읽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내 책과 비교해서 읽으면 내 분석이 틀리지 않음을 알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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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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