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나!...원룸-빌라 ‘생계형 임대소득자’에도 세금 폭탄

 

    박경희(가명·51) 씨는 경기 성남시 아파트와 부모에게서 증여받은 서울 마포구 원룸주택을 보유한 1가구 2주택자다. 다주택자지만 매일 편의점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연 2000만 원 정도인 월세가 유일한 수입원인 그가 늘어나는 부동산 세금을 미리 준비하려고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일이다. 최근 그는 1억101만 원짜리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았다. 지난해 종부세(110만 원)의 92배로 늘어난 것이다. 편의점 알바로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퇴로 막힌 종부세

원룸-빌라 ‘생계형 임대소득자’에 세금 폭탄

 

 

‘매물 유도’ 단기 목표만 좇다 부작용

이 ‘종부세 폭탄’은 정부가 지난해 7·10대책에서 등록 임대사업자(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8월부터 의무임대기간이 5년 이하인 원룸, 빌라 등 비(非)아파트와 모든 아파트에 대한 임대사업자 신규 등록이 금지됐고, 기존 임대주택은 잔여 의무임대기간이 지나면 강제 말소됐다. 과거 전·월세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임대주택 등록을 장려했던 정부가 임대사업자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관련 제도를 전격 폐지한 것이다. 원래 임대사업자는 종부세 합산 배제 등의 혜택을 받았다.

 

정부는 이런 세금 혜택을 없애면 다주택자가 매물을 처분해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봤다. 문제는 임대사업자의 세금 부담이 비상식적으로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납부 세액을 전년도 3배 이하로 제한하는 ‘세 부담 상한선’이 있지만 강제 말소된 임대사업자에게는 이 같은 상한선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에 따르면 생계형 임대사업자 중에서 등록이 강제 말소된 뒤 바로 다주택자가 되면서 집을 매각할 때까지 별도의 유예기간이 없어서 올해 종부세 폭탄을 맞은 사람이 많다. 정부와 여당은 “종부세는 상위 2%만 내는 세금”이라고 강조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올해 종부세가 1억 원 넘게 부과된 박 씨는 자산가라야 하지만 연간 2000만 원의 임대수입과 알바비가 수입의 전부다.

 

박 씨가 부모로부터 원룸주택을 증여받은 2011년은 집값이 급락했을 때였다. 투기 목적의 취득과 거리가 먼데도 거액의 종부세가 부과된 건 정부가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간주하고 규제 일변도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다주택자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기능을 간과한 정책 부작용이 종부세 급증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피할 길 없고, 퇴로도 막혔다

이호승 대통령정책실장은 최근 ‘종부세 폭탄’ 논란에 대해 “예고를 했었고,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길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대주택 상당수가 집값 상승과 거리가 먼 원룸이나 빌라, 오피스텔이었던 만큼 정부가 기대한 매물 유도 효과는 거의 없었다.

 

박 씨도 지난해 원룸 건물을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수 문의조차 없었다. 임대사업자 폐지와 다주택자 규제로 임대 소득을 목적으로 원룸과 빌라 등 비아파트를 찾는 수요 자체가 사라진 탓이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강제 말소된 임대사업자 중 상당수는 올해 종부세 폭탄을 맞았지만 주택을 처분하고 싶어도 처분 못 해서 ‘퇴로’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세금 부담을 줄이려고 보유주택을 임대주택으로 재등록하려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상 어렵다. 임대보증보험 의무가입이라는 새로운 요건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임대보증보험은 ‘깡통전세’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피해를 막으려는 안전판 격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려면 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문제는 까다로운 가입 요건이다. 은행 대출금과 전·월세 보증금이 집값보다 높거나, 대출금이 집값의 60%를 초과하면 가입할 수 없다. 가입 자격을 갖추려면 은행 대출을 상환하거나 보증금을 낮춰야 한다. 현금이 없으면 가입이 불가능한 셈이다.

 

 

 

올해 종부세 납부기한은 다음 달 15일까지다. 박 씨는 하루만 늦어도 300만 원이 늘고, 이후 하루 2만5000원씩 불어난다. 은행 대출로 종부세를 내려 했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다주택자는 원칙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고, 최근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였다. 거주 중인 아파트를 팔아도 양도소득세와 대출금, 종부세를 내고 남은 금액으로는 인근 전셋집 구하기도 빠듯하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집값 상승은 공급이 부족해서인데 규제 위주의 정책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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