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은 아파트들 발걸음 빨라졌다...왜
서울 노원구 월계동 ‘월계시영(미성·미륭·삼호3차)’ 아파트는 지난 13일 노원구청에 재건축을 위한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이른바 ‘미미삼’으로 불리는 이 단지는 총 32동, 3930가구 규모로 강북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힌다. 1986년 준공돼 재건축 가능 연한인 30년을 훌쩍 넘었지만, 문재인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면서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월계시영은 지난 8일 정부가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발표하자마자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월계시영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김태연 위원장은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규제 완화 발표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며 “노원구에 재건축 추진 단지가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릴까 우려해 신청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내년 1월부터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가 완화되면서 한동안 멈춰 섰던 서울 아파트 재건축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안전진단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건축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거나, 탈락이 우려돼 안전진단을 무기한 연기해온 단지들이 앞다퉈 안전진단 신청에 나섰다.
서울 곳곳서 안전진단 신청 봇물
재건축 안전진단은 예비안전진단과 1차 정밀안전진단, 2차 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 순으로 진행된다. 이걸 통과해야 정비구역 지정이 되고 조합 설립을 할 수 있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가 안전진단 항목 가운데 가장 통과하기 까다로운 ‘구조안전성’ 비율을 20%에서 50%로 높이면서 적정성 검토 단계에서 최종 탈락하는 단지가 늘었다.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하면 예비안전진단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고도 일부러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하지 않고 버티는 노후 단지가 많았다.
그러나 정부가 내년부터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재건축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구조안전성 비율을 50%에서 30%로 낮추고, 재건축이 가능한 점수 범위도 기존 30점에서 45점으로 높였다. 이 점수는 낮아야 재건축의 필요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 2차 정밀진단인 ‘적정성 검토’ 역시 지자체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받도록 해 1차 정밀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이에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고도 정밀안전진단을 미뤄왔던 단지들이 속속 사업 재개에 나섰다. 지난해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3단지’와 서초구 서초동 ‘현대아파트’가 이달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월계시영과 붙어있는 노원구 월계동 ‘삼호4차’도 내년 1월 정밀안전진단 신청을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진행 중이다.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한 성동구 응봉동 ‘대림1차’ 역시 지난 19일부터 주민들에게 정밀안전진단 신청 동의서를 걷고 있다.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해 재건축이 좌절됐던 단지들도 재도전에 나선다. 강동구 명일동 ‘고덕주공9단지’는 최근 강동구청에 예비안전진단을 다시 신청했다. 이 단지는 작년 6월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했다. 지난 2020년 적정성 검토에서 고배를 마신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9단지’도 예비안전진단 신청을 위해 주민 동의서를 걷기 시작했다.
도심 공급 확대 위해 ‘재초환’도 풀어야
이처럼 안전진단 신청에 나서는 노후 단지들이 늘면서 초기 단계 재건축 사업 추진 속도에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해 서울 도심 내 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의 최종 관문인 초과이익환수제(재건축으로 상승한 집값 일부를 재건축 부담금으로 환수, 재초환)도 과감히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지난 9월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 면제 금액을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고, 누진 구간도 2000만원 단위에서 7000만원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의 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박합수 건국대 겸임교수는 “재건축 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초과이익환수제를 폐지하는 수준으로 완화해 서울 도심 공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정비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신수지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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