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의사들이 욕먹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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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도 마찬가지
"장삿속 보이는 병원에는 다시는 안가"
(편집자주)
"폐암‧갑상선암‧대장암 등 근거없는 과잉 건강검진 많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포럼서 전문가들 지적
암 질환 발생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과도한 암 건강검진이 시행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발병 가능성을 조기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 무분별한 진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암연구소에서 ‘과잉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열린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보건의료포럼에서 이같은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폐암·갑상선암·췌장암, 무증상 건강한 성인은 검진 불필요
이날 포럼에서 발표에 나선 명승권 국립암센터 대학원장에 따르면 한국은 55~74세 30년 이상 흡연력이 있는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폐암 확인을 위한 흉부 저선량컴퓨터단층촬영(LDCT) 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2019년부터 시행 중인 국가폐암검진 사업도 이 기준을 따른다.
명 원장은 “정해진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고위험군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한 흉부 CT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 각국이 건강검진 권고 기준을 마련하는 데 참고하는 미국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USPSTF) 지침에 따르면 흉부 CT 검사 권고 대상은 20년 이상의 흡연력이 있으면서 현재 흡연자이거나 금연한 지 15년 이내인 50~80세 성인이다. 미국국가종합암네트워크(NCCN)도 30년 이상의 흡연력이 있으면서 금연 후 15년 미만인 경우 또는 50세 이상이면서 20년 이상 흡연력이 있는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실시하도록 권고한다. 명 원장은 “연구 결과를 근거로 마련된 기준을 따르지 않는 검진은 효용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2019년 기준 국내에서 가장 발병률이 높은 암인 갑상선암의 경우에도 불필요한 검진이 이뤄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명 원장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한 해 갑상선 초음파 검사에 쓰이는 비용은 1321억원에 이르지만 조기 갑상선 초음파 검사가 갑상선암 사망을 줄일 수 있다는 근거는 부족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무증상인 성인에게는 갑상선 초음파 검사가 불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명 원장은 “USPSTF와 홍콩 암예방선별검사 암전문가연구단체 모두 평균적인 위험도를 가진 무증상 성인에게 갑상선암 검사를 권하지 않는다”며 “검사를 통해 사망률이 저하된다거나 기타 임상지표를 향상시킨다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까지도 무증상 성인에서 갑상선 초음파 검사가 사망률 저하에 도움이 된다는 무작위비교 임상시험 연구는 없다”고 덧붙였다.
20년 뒤 한국에서 연간 1만6000명의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는 췌장암도 불필요한 CT검사 사례가 적지 잖다는 지적을 받았다.
차재명 강동경희대병원 교수는 "대한소화기암학회 등 유관기관 9곳이 참여한 2021년 한국 췌장암 진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CT 검사는 방사선 노출과 조영제 부작용, 높은 비용 등으로 단순히 췌장암을 선별하기 위한 검사로 권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CT 검사는 수진자 건강에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국가폐암검진연구(NLST) 연구에 따르면 수진자 2500명 중 1명은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암 사망 위험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이 아니지만 암으로 진단되는 사례도 있다. 명승권 원장은 “이탈리아에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수진자 25.8%는 폐결절 부피가 2배로 커지는 기간이 400일 이상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폐암 진단을 받았다”며 “증상이 문제가 되는 수준까지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과잉진단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 진행속도 더딘 기대여명 10년 미만 고령자, 암 건강검진 불필요
전문가들은 증상이 없는 젊은 성인 외에 고령자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암 검진이 이뤄진다는 지적도 내놨다.
최윤정 국립암센터 교수는 “2022년 한국인 기대수명은 남성 80.5세, 여성 86.5세인데 기대수명을 기준으로 봤을 때 75세 이상 노인은 암 검진의 이득보다 위해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기준 암검진 수검 대상자 중 266만명은 75세 이상이었다. 이 중 101만명이 검진을 받았으며 85세 이상 수진자도 9만명에 달했다.
고령자에게 암을 찾아내기 위한 조기검사가 큰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국립암센터 연구에서 75~84세 고령자의 경우 위암 검진을 받아도 사망 대응위험도가 유의미하게 감소하지 않았다. 유방암 검진 또한 70세 이상 여성의 유방암 사망률을 낮추는 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해외 유관기관에서도 기대여명에 따른 검진종결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USPSTF는 유방암과 대장암에 대해 각각 75세, 76세인 경우 개인 건강 상태에 따라 암 조기발견을 위한 검진을 권고한다. 미국암협회 또한 유방암과 전립선암에 대해 기대여명이 10년 이상일 경우에만 선별검사를 계속하고 86세부터는 검진을 시행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미국 외과학회는 기대여명이 10년 미만이고 가족력이나 과거력이 없는 경우 대장암 검진을 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최 교수는 “일반적으로 70대 중반이 넘는 고령의 경우 암 진행 속도가 더디며 또 암 발견 후 치료 시작에서 사망에 이르는 기간을 고려했을 때 암 검진을 통한 이득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암 조기발견을 통한 사망률 감소는 수술, 항암, 방사선 등의 치료를 감내할 수 있는 건강 상태가 뒷받침됐을 때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 국내 검사 건수, 인구수 대비 높아
건강검진 항목에 흔히 포함되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의 국내 검사 건수가 인구수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차재명 교수는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실시된 PET-CT 검사 건수는 17만3306건으로 2017년 15만2229건과 비교해 4년 만에 2만건이 증가했다”고 말하며 “또 현재 한국에는 186대의 PET-CT기기가 운영 중인데 의료기관 수에 비해서 다소 많다고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수치를 살펴보면 과도한 검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미국예방의학회, 미국가정의학회 그리고 PET-CT 검사에 가장 적극적인 미국핵의학회도 건강한 성인에게는 검사를 권장하지 않는다”며 “증상이 없는 성인이 암을 조기에 찾아내는 목적으로 PET-CT 검사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강연한 이재호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일반 건강검진 수검자 중 20% 이상이 이미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 같은 질환 이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불필요한 검진이 시행돼 재원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분별한 검진은 의료자원 활용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의료비 지출 증가의 원인이 된다”며 “동네 병의원에서 주치의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필요한 경우에만 검진이 시행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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