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열린 ‘서울펜쇼’ [박종진]

 


3년 만에 열린 ‘서울펜쇼’
2022.06.29

서울펜쇼는 2010년부터 처음 개최되었고,  2011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 두 번씩 열렸지만 코로나로 인해  2020년~ 2021년 두 해는 건너뛰었습니다. 이번 여름 6월 19일에 열린 서울펜쇼는 스물한 번째였습니다. 입장 1 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행사 시작 10시부터 끝날 때까지 발 디딜 틈 없이 900명이 넘게 찾아와 대성황이었습니다. 

(좌) 펜쇼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우) 펜쇼장의 인파


사실 펜쇼의 시작은 좀 더 일찍 충무아트센터 인근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면서 시작됩니다. 20대부터 80대까지 하나같이 트렁크엔 만년필, 잉크, 노트, 파우치, 연필이 빈틈없이 들어 있습니다. 햇수로 3년 만에 만나는 것이지만 인사를 하고 농담을 건네는 등 낯설고 어색한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국내 최대 만년필 축제인 ‘서울펜쇼’의 스태프(Staff)로 십여 년은 알고 지낸 사이 이기 때문입니다. 펜쇼의 참가자는 스태프과 일반으로 나뉘는데, 스태프는 회비를 내고, 전시 및 판매를 위한 공간을 배정받아 부스를 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책상을 깔고 의자를 놓고, 밀려드는 인파에 화장실 한 번 가기 어려워 끝날 때 즈음이면, “더는 못해”라고 저절로  투정이 쏟아져 나오지만, 헤어질 때면 하나같이 다음 펜쇼에 만나자고 하는 게  70여명의  스태프들입니다, 이번 글은 그런 스태프들 중 세대를 대표하는 다섯 분의 이야기입니다. 

 

 



본명이 따로 있지만, 저는 만년필 세계에선 유네엘(정다혜, 31)입니다. 2012년 스물한 살부터 ‘만년필 연구소’에 놀러 왔으니 만년필 생활은 10년 차입니다. 이번 펜쇼를 위해 준비한 것은 만년필 전용 노트입니다. 만년필 종이는 가볍고, 뒷면 배김이 없고, 잉크 발색이 좋아야 하고 또 잘 마르고, 글씨 번짐도 없어야 하는데 이런 종이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고, 이런 노트를 찾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때문에 직접 종이를 구입하고 재단부터 제책까지 직접 하게 됐습니다. 이번 펜쇼를 위해 준비한 기간은 한 달 반입니다. 노트에 습기가 찰까 봐 펜쇼  당일  오전 2시까지 포장에 제습제를

 

유네엘의 노트 부스


넣고, 그래도 걱정이 되어 오전 5시에 일어났습니다.

피아노(전승진, 38)=코로나가 오기 전 2019년 가을 펜쇼 때는 꽤나 고생했습니다. 실로 꿰어 책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중이었는데, 이 사실을 만년필 연구소장님이 알게 되어, 직접 책을 만들고  바깥은 가죽으로 쌓은 노트 51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때 고생한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엔 조용히 넘어가려 했지만, 웬걸 이번엔 잉크를 함 가져오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만년필보다 잉크가 더 많습니다. 잉크는 만년필보다 더 다양하고 골라서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이번에 출품한 잉크는 제가 갖고 있는 1,500개 중에서 110개 정도입니다. 

 

피아노의 잉크

 

 


리리티헤난(강지선, 41)=저는 뭔가를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십 년 전이었습니다. 아마도 봄이었습니다. 만년필 동호회에 가입은 되어 있었지만,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펜쇼 스태프로 참여할 마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날 역시 명동의 한 카페에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지나가던  파커 51님(만년필 연구소장)을 만났고, “여기서 뭐해요 펜쇼 스태프하세요” 그렇게 권한 게 인연이 되어 이제는 매번 펜쇼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는 곳이 제주도라서 매번 펜 쇼 때마다 휴가를 아껴 펜쇼에 맞춰 잡고 서울에 올라오곤 합니다. 이번에도 2박 3일 일정으로 올라왔고, 펜쇼엔 천으로 만든 만년필 파우치를 백 개 정도 들고 왔습니다. 천을 구입하고 바느질까지 직접 했습니다. 준비기간은 두 달 정도입니다. 

(좌) 리리티헤난의 부스 / (우) 리리티헤난


비케이(이병기, 42)=저는 만년필도 좋아하지만, 연필도 좋아합니다. 연필의 매력은 어쩌면 만년필과 상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글이나 그림으로 바뀌면서 사라진다는 것에 있습니다. 또 나눠 쓸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사용하기 좋아서입니다. 펜쇼는 2014년부터 계속 스태프로 참석했는데, 단 한 번 큰아이 입학 때 부모 면접 때문에 늦게 참석한 것 빼고는 늦은 적이 없습니다.

*사실 비케이님은 꽤 많은 연필과 만년필을 갖고 있지만, 올해도 자기 부스가 없었습니다. 명찰을 나눠주고 인원을 파악하는 접수를 친절하다는 이유로 매번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그 많은 연필을 가져오고도 맘껏 펼치지 못했습니다.

 

 



영웅펠리칸(차상욱, 54)=이번 펜쇼는 2박 3일 일정으로 아들과 함께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따라다닌

 

비케이님이 선보인  각종 연필 (왼쪽 상단의 연필은 1800년 후반의 연필이다.)


제 아들에게 만년필 연구소장님은 삼촌이나 다름없습니다. 참가 공지 있기 전에 숙소를 미리 잡았고, 만년필은 1,000개 정도를 갖고 가기로 했습니다. 펠리칸 만년필을 좋아하기 때문에 펠리칸 만년필이 많지만, 그밖에 180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만년필들도 꽤 많이 모았습니다. 만년필의 매력은 하나하나 다른 것에 있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모델이라도 10개면 10개 모두가 필기감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많이 모으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웅펠리칸의 만년필들


마지막으로 12년차 동호인 김용준(37)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울펜쇼는 접수, 전시, 판매, 상담, 수리, 공예 등 세계에서 가장 젊고 다양하며 즐거운 문화적 모임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이 순수한 회원의 노력으로 이루어짐에 매번 놀라움을 겪습니다."

 

 



참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단 한마디 덧붙이면 스태프, 일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11월 19일 토요일 가을에 열리는 서울펜쇼에 여러분도 참여하시지 않겠습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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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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