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허가청과 문화재청과의 싸움] 문화재보호법 위반 논란 ‘왕릉 뷰’ 아파트, 입주 시작..."시공사에 피해가면 안돼"
인천 서구청이 공사 허가
모든 책임은 모두 관공서가 져야
왜 시공사까지 피해를 주려하나
(편집자주)
논란은 계속
관할구청, 소송중에도 승인 강행
“1년 가까이 가슴 졸이며 지냈어요. 이제라도 입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31일 오전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의 한 아파트. 6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는 A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파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기 김포시 장릉에서 직선거리로 약 400m 떨어져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며 향후 법원 판단에 따라 철거가 이뤄질 수 있다며 입주를 반대했지만 관할 구청이 승인을 강행해 이날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한편 유네스코는 최근 문화재청에 “올해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 왕릉의 보존 상태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뜻을 전해와 자칫 세계문화유산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735채인 이 아파트는 장릉 역사환경보존지역 안에 지어져 일명 ‘왕릉뷰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이날 단지 곳곳에는 ‘입주를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오전에 이사를 진행한 집도 있었다.
검단신도시에는 이곳을 포함해 아파트 3개 단지가 장릉 보존지역 안에 지어졌다. 인천 서구와 문화재청은 문제의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청은 2017년 장릉 반경 500m 내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을 개별 심의하겠다는 방침을 김포시에 알렸지만, 이를 전달받지 못한 인천 서구가 강화된 기준을 인지하지 못한 채 2019년 아파트 건설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공사 중단을 명령했고 상층부 철거를 주장했다. 건설사들은 이에 맞서 법원에 공사 중지 명령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는데, 1·2심 모두 건설사가 승소해 공사가 재개됐다. 업계에서는 이날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문화재청이 재판에서 승소하더라도 강제 퇴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 유네스코 ‘위험 유산’ 지정 가능성
앞으로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자격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유네스코는 3월 ‘올해 열리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 왕릉을 보존 의제로 선정해 논의하겠다’고 문화재청에 알려왔다. 김포 장릉을 포함해 최근 왕릉 인근에 신도시와 공공택지개발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창릉(경기 고양시), 태릉(서울 노원구) 등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지 살피겠다는 뜻이다.
국내 세계문화유산이 세계유산위원회 보존 의제로 논의되는 건 처음이다. 이창환 상지대 환경조경학과 명예교수는 “위원회에서 ‘위험 유산’으로 지정돼 향후 집중 관리될 가능성이 높다”며 “김포 장릉 사태가 나쁜 선례로 남아 지속적으로 한국의 문화재 관리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장릉과 창릉, 태릉 등 세 곳에 대한 보존현황보고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며 “(지정 취소 여부 등은) 논의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서부경찰서는 이날 “김포 장릉 인근에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 3곳의 대표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일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건설된 아파트에서 주민들의 입주가 31일 시작됐다.
김포 장릉은 조선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가 묻힌 무덤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왕릉에 포함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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