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그렇게 벌목하다니 [이성낙]




부끄럽다, 그렇게 벌목하다니
2022.05.19

얼마 전 국내 일간지에 “옮겨 심으라는데도···분당구청, 가로수 70그루 잘라냈다”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기사는 이어집니다. “···500여m 구간 도로 양쪽으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무성한 이 일대 명소였다. 그런데 얼마 전 70그루가 잘려나갔다. 분당구청이 인근 호텔 공사 시행업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허가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2022.4.17. 조선일보)

부끄럽다, 그렇게 벌목하다니 [이성낙]
“분당구청, 가로수 70그루 잘라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더니’, ‘시곗바늘’이 한참 뒤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 악몽을 꾼 것은 아닌지 놀랍고, 놀라웠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1960~70년대, 우리네 산야는 ‘벌거숭이 산’이라는 부끄러운 대명사 그대로였습니다. “이미 전국이 사막화 현상에 진입하였다.”라고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참상이 뇌리에 박혀있던 그 무렵,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창 너머로 펼쳐지는 광대한 ‘푸른 숲 바다’를 보며, 넋을 잃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니, 얼마나 필자가 충격적으로 그 ‘숲 바다’의 모습을 받아들였던 것인지 짐작하게 됩니다. 그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숲은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국제공항 인근 지대에 조성된 ‘인공 숲’이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1970년대 Frankfurt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선호했던 주말 산책 지역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한 기회에, 필자가 공항에 착륙하며 보았던 그 ‘푸른 숲’이 퍽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필자의 말을 듣던 참석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이야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랬답니다. “나는 온 세상이 내일 멸망한다는 것을 알아도, 나는 오늘 작은 사과나무를 심으련다.

 

(Wenn ich wüsste, dass morgen die Welt unterginge, würde ich heute noch ein Apfelbäumchen pflanzen)”라고 하였답니다. (참고: 근거 기록은 없다. 그러나 전설처럼 전해 온다.) 그네들의 나무 가꾸기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였습니다. 독일에서 자주 듣는 격언 중의 하나입니다. ‘매사에 너무 서두르지 마라’라는 의미로도 원용되곤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인들의 다른 차원의 ‘나무사랑’을 실감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청명한 날 친구 집 정원에서 초여름 날씨와 주변 풍광과 커피 향을 즐기고 있는데, 불쑥 친구는 투덜대며 불평의 한마디를 던집니다. “저 나무의 무성한 잎은 햇빛을 가릴 뿐만 아니라, 가을에는 그 떨어지는 낙엽이 하도 많아 처리하는 데 물리적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저 나무를 자르겠다고 구청에 신고하였는데, 담당 공무원이 와서는 "이런저런 조건을 내놓는데, 그 조건들이 녹록지 않았다.”라고 하소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개인 소유 정원수를 벌목하겠다는데도 구청의 허가를 받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답은 단호하게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뭇 다른 우리 현실 이야기입니다. 근래 강원도 설악산을 다녀오면서 극심한 산림파괴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주변, 군데군데 산기슭이 파헤쳐져 있고, 그 자리에는 주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양광 집열기 판’이 생뚱맞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한두 곳이 아닙니다. 1960년대 황폐된 ‘민둥산’의 기억이 무슨 악몽처럼 떠올랐습니다.

‘태양광 집열기 판’을 세우기 위해 그 자리에 섰던 나무를 아무 거리낌 없이 벌목해버린 것입니다. ‘자연 파괴 현장’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 그런 볼썽사나운 벌목 현장은 전국 곳곳 깊은 산중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금수강산은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야만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 소리 높여 외칩니다. “벌목은 극도의 자연 파괴행위”라고. 

며칠 전, 앞서 언급한 우리네 살벌하고 무차별적 벌목을 떠올리며, 독일 친구에게 수년 전에 들었던 그 정원의 나무가 벌목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답은 "여전히, 구청으로부터 ‘벌목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면서, “나무의 그늘을 즐기세요.”라는 권고를 들었을 뿐이랍니다. 불편한 심기가 저 건너 유럽대륙에서 이곳까지 생생히 전해왔습니다.

https://www.bund-berlin.de/mitmachen/baumfaellung-stoppen/

https://www.bussgeld-info.de/baum-faellen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러운 벌목행위 자체를 중대 자연 파괴행위로 간주해야 한다는 우리네 사회적 공감대가 절실합니다. 파손되어가는 우리 금수강산을 지켜보는 것이 부끄럽고 가슴 아파서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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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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