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반전(反轉)의 드라마 [함인희]

 

 

자식농사, 반전(反轉)의 드라마 [함인희]


자식농사, 반전(反轉)의 드라마
2022.05.16

‘자식농사’라는 말, 농사를 시작하고부터 자주 곱씹게 됩니다. 자식 키우는 일과 농사짓는 일 사이엔 참으로 닮은 점이 많은 듯합니다. 밭이 비옥해야 하고 씨가 튼실해야 함은 기본일 테지만, 농사든 자식이든 정성을 쏟아야 풍성한 수확이 가능함은 물론이요, ‘하늘이 도와야지’ 내 맘대로 안 된다는 점에서도 절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이곳 당산마을 주민들은 원래 월산리라는 곳에서 동족부락을 이루며 살던 분들인데, 세종시 개발이 확정되면서 국가로부터 토지 보상을 받고 이주해왔답니다. 이주 과정에서 집집마다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제법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하네요. 한데 그 보상금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희비쌍곡선이 교차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학창 시절 전교 1, 2등을 다투거나’ ‘수재(秀才) 소리를 귀에 달고 살던’ 자식을 둔 분들은, 대개 논 밭 팔아 자식들 공부시킨 덕분에 보상받을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프기 마련인데, 이웃들이 저마다 보상금을 챙기는 와중에 ‘땡전 한 푼 못 챙긴 분’들은 홧(禍)병에 드러눕기 일보 직전이었다네요.

 

 



반면에 ‘반에서 꼴등을 도맡아 했던 자식’ ‘가출을 밥 먹듯 했던 자식’ ‘당최 공부엔 뜻이 없던 자식’ ‘엉덩이에 뿔난 채 술 담배 일찍 배운 자식’ 등, ‘그런 자식’ 둔 집안은 땅이 고스란히 남아 배부를 만치 보상을 받았다는 게지요.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더라구요. ‘돈 냄새는 천리 밖에서도 난다’는 말마따나, 부모님 곳간에 땅 보상금이 쌓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자식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하나둘 찾아와서는 한밑천만 도와 달라 애걸복걸하는 바람에 그만 딱한 사정의 주인공이 된 분들이 여럿이랍니다. 당신들 살 집 한 채라도 남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구요, ‘그 많던 보상금을 한 달 만에 모조리 날린 분’도 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보상금으로 집 한 채 마련하고 남은 돈으로 땅을 잡아놓은 분들만 현상 유지에 성공했다는군요.

가장 드라마틱했던 자식농사의 반전 드라마는 산신령처럼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동네 어르신이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1947년생(生) 돼지띠인 당신 고등학교 동기는 아들만 둘을 두었답니다. 그 친구는 첫째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양쪽 어깨에 콘크리트라도 바른 듯 우쭐해지곤 했답니다. 아버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첫째는 명문 카이스트대에 보란 듯이 합격했다지요. 졸업 후엔 대기업에 취직하는가 했더니 직장생활보다는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다 했다는군요.

첫째 아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무조건 믿어왔던 아버지, 가족, 중고교 동창, 친지,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다니며 사업 자금을 끌어모아 큰아들 사업 밑천을 댔답니다. 대박을 꿈꾸면서요.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쪽박을 차고 말았다네요. 덕분에 그 친구는 동창들로부터 절연(絶緣) 당하고, 부인과는 이혼 직전까지 가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을 어디에 하소연하느냐며 그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픈 심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더랍니다.

 



한데 이 친구의 자식농사에도 기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둘째 아들이 주인공인데요, 형 만한 아우 없다 해서 그랬는지, 형의 맹활약에 눌려서 그랬던지, 둘째 놈은 공부와 담쌓은 채 부모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고 합니다.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녀석,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애원을 하더랍니다. “아버지, 저 대학 안 가는 대신 한 학기 등록금 제게 주십시오. 10년 후에 10배로 갚아드리겠습니다.”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을 손에 쥔 둘째 놈은 그 길로 필리핀으로 갔답니다. 원래 밑바닥에서 굴러먹던 놈이니 걱정도 크게 안 했지만 기대도 별로 없었답니다. 간간이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오던 녀석은, 정말 10년 만에 약속을 지키러 나타났더랍니다. 아버지께서 빌려주신 돈에 대한 이자라면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멋진 외제 승용차(벤츠 S300인가 뭔가)를 덤으로 가져왔다는군요.

산신령 할아버지는 그 친구 보면서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 그르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십니다. 그러고 보면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듯 효도 또한 성적순은 아닌 모양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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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함인희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로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 <사랑을 읽는다> <여자들에게 고함> <인간행위와 사회구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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