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없는 세상은... [이동식]

 

 


꿀벌이 없는 세상은...
2022.05.07

한식이 낀 지난달 초 성묘를 위해 서울 근교의 공원묘원을 찾았던 우리는 기름으로 굽고 볶은 제수를 상석에 펼쳐놓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술을 올렸는데, 이상하게도 벌이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성묘를 하면서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벌이 있을까봐 어린 손주들에게 손으로 뿌리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서 벌이 날아가기를 기다리라고 가르쳐 주었지만 저 밑에서 호박벌 같은 큰 벌 한 마리만 보일 뿐 우리 옆에는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는다. 산소에 오른 우리 모두 놀랐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화목이 많이 있어서 지난달 중순부터 약간 늦게 매화, 벚꽃, 개나리, 이팝꽃, 목련들이 정말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옆을 지나면서도 벌은 볼 수가 없었다. 그 꽃들이 거의 다 질 때까지 아예 벌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벌이 사라졌다"는 소식 그대로가 아닌가?

올해 꽃 피는 계절이 되었는데 전국적으로 꿀벌이 사라졌다는 뉴스

 

아파트 단지의 흐드러진 벚꽃. 그런데 벌이 없다


가 연신 올라왔다. 벌통을 채우고 마냥 날아다녀야 할 꿀벌들이 그냥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벌의 사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벌통이 그냥 비어 있단다. 전국에서 78억 마리 혹은 80억 마리가 사라졌다는 추정도 나온다. 이것이 무슨 일일까? 왜 벌들이 없어진 것일까? 벌들이 없어졌는지, 혹은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올해만 특별히 문제가 된 것은 아니기에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 하다가 막상 피부로 느끼니 이거 큰일 아닌가 걱정이 된다.

 

 



벌들이 대규모로 사라지는 현상은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미국에서 많이 발견돼, 이러한 현상을 CCD(Colony Collapse Disorder)라고 부른다고 한다. '벌집단의 붕괴 무질서'라는 뜻으로, 우리말로는 '벌떼 폐사 장애', 혹은 어려운 말로 '군집붕괴현상'이라고도 하는데, 2006년 가을 미국에서 시작돼 2007년에는 유럽으로 번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전체 주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이 현상을 호소했고, 특히 서해안과 동해안 양봉가는 상업적으로 키우는 벌 중 60∼70%를 이렇게 잃었다고 한다. 그 후 이 현상은 영국과 독일,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로 번졌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당연히 과학자들이 그 원인을 밝히려고 뛰어들었는데 아직까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피해지역에서는 벌통에 여왕벌과 알, 몇 마리 미성숙 일벌만 남긴 채 벌통 속 벌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지 않아서, 아마도 벌집을 향해 돌아오던 중 길을 잃고 어디에선가 죽은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이때에 독일 란다우 대학의 연구진이 휴대전화가 근처에 있을 때 벌들이 길을 잃고 벌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론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를 실시한 요켄 쿤 박사는 휴대전화가 CCD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전력선 근처에서 벌의 행태가 변한다는 것을 연구진이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얻은 결론이었다. 4년 후에는 휴대폰이 벌의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다시 발표됐다.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휴대폰을 사용할 때 주위의 벌들이 지나치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벌을 비롯해 곤충들이 소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휴대폰의 전자파가 소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꿀벌이 사라지는 데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살충제 같은 농약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꿀벌에 기생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방향을 인지하고 이동하는 꿀벌이 휴대폰 같은 무선통신 장비의 전자파 때문에 혼선이 생겨 집에 되돌아가지 못한다는 가설도 있다. 근래 유력하게 지목되는 건 지구 온난화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 봄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아 결국 벌들이 굶어 죽었거나,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는 등 이상기후에 꿀벌들이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벌들의 집단 폐사가 처음 확인됐고, 2011년에는 농약, 2012년에는 일부 지역에서 공사장 소음과 진동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최근에는 피해 농가의 벌에서 날개불구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일부 농가에서는 다른 바이러스도 몇 종 나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바이러스가 벌들이 사라진 원인으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가 있다고 무조건 발병하는 게 아닌 데다, 사체가 광범위하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약 피해도 적잖게 나왔지만, 농약에 중독된 벌은 혀를 내밀고 죽는데, 이런 사체가 많지 않았기에 이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 어쩌면 이 모든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불안해지는가? 가장 큰 걱정은 어쩌면 이러다가 우리가 맛있는 과일도 못 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장 초보적인 걱정 때문이리라. 꿀벌들은 자기들의 식량을 얻기 위해 속씨식물의 꽃 속으로 드나들면서 꽃가루를 전파한다. 실제로 꿀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약 4만km를 이동할 정도로 광범위한 활동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들이 묻혀다주는 꽃가루로 해서 과일이 열리고 숙성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과일도 먹지 못할 것이라는 원초적인 불안이 오는 것이다. 

 꿀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숫자가 줄어들다가 멸종해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게 한낱 기우이면 다행이겠다. 어떤 과학자들은 꿀벌이 없으면 사람도 못 산다고 말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농작물의 75%가 꿀벌 등의 꽃가루 매개 활동에 의존하며, 꿀벌이 사라지면 세계의 식량 생산이 현재의 29% 수준으로 감소한다.

나아가 생태계 붕괴를 초래할 수

이 흔한 풍경을 앞으로는 더 보기 어려워지는 것일까?


있다고 경고한다. 박종균 경북대 생태환경대학 교수는 국립생태원 칼럼을 통해 “꿀벌이 사라져 식물의 화분 매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사라지게 된다”며 “자연히 식물을 먹이로 삼는 초식동물이 사라지고 분해생물과 미생물도 도미노처럼 연쇄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식량 고갈과 사막화 현상이 발생해 인간의 생존도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이다.

이런 상황이니 사과도 못 먹을 것이라는 걱정은 차라리 걱정도 아니다. 그러니 이 봄에 꿀벌이 보이지 않는 것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올해 봄꽃들이 피기도 늦게 피었지만 또 지는 것도 너무 빠른 것이 혹 이런 벌이 없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인류가 벌의 멸종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우리 생활이 큰 곤란을 겪을 것 같다.

 


몇 년 전 국내에서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인해 국내 토종 꿀벌의 씨가 마르자 관계기관과 양봉업계가 대책 마련에 나섰고, 농촌진흥청은 낭충봉아부패병에 강한 새 토종꿀벌 품종 개발을 마쳤다고 한다. 이 신품종 토종벌은 2017년부터 2년간 전국 9개 지역에서 현장 실증 및 지역 적응시험을 거쳐 낭충봉아부패병의 저항성을 확인했다며 2021년까지 전국에 보급한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이미 시한을 넘겼다. 이에 대한 더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꿀벌 멸종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일종인 ‘티아클로프리드’를 EU시장에서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은 꿀벌 정자의 건강을 떨어뜨려 생식을 방해하고 기억력 및 위치 파악 능력에 현저한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꿀벌이 줄어든다는 소식만 더 들리고 있다.

사실 다른 원인이야 그렇다 쳐도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며 하루, 아니 한시도 그것 없이는 못 사는 휴대폰이라는 이 괴물이 꿀벌의 실종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휴대폰의 극초단파가 꿀벌의 생활영역을 침범해서 그들의 생체리듬이 깨지고 소통수단이 망가져 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을 쓰지 않을 수는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꽃이 피어도 벌이 없어 수정이 안 된다면 어쩌면 예전에 우리들이 송충이를 잡으러 젓가락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고 쥐잡기 운동을 한 것처럼, 모두가 붓을 들고 과일나무의 꽃으로 가서 화분을 옮겨주는 전 국민 운동을 해야 하나? 아니면 아주 작은 드론을 수 천만 개 만들어 이 드론이 꽃 속에 들어가 벌과 같은 역할을 해주도록 해야 하나? 평화로운 이 봄에 짧은 봄꽃을 떠나보내며 정말 기우 같은 그런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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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 KBS 베이징, 런던 특파원, 부산방송총국장, 해설위원실장 역임.
은관문화훈장 수훈. ‘책바다 무작정 헤엄치기’, ‘온계 이해 평전’ 등 저서 20여 권, 공저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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