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 [김창식]

 

4월의 시 [김창식]


4월의 시
2022.04.27

4월도 어느덧 끝자락이군요. 4월이면 생각나는 시 몇 편을 소개합니다. 우선,

# ‘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 멀리 떠나와/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의 <4월의 시>입니다. 이 시는 운율이 감칠맛 나서 전문을 소리 내어 읽고 싶습니다. 그리움, 청신함, 간절함, 쓸쓸함 같은 고즈넉한 정서가 전해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생명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았어요. 마지막 연을 읊조려 보죠.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제하의 시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도 비슷한 정조로 다가오는군요. 1950년대 고등학생이었던 이제하가 <<학원(學園)>>지를 통해 교유하게 된 유경환 시인의 편지를 받고 답장 형식으로 썼다는 시입니다. '피곤한 그리움'이라는 표현이 특히 와 닿는군요.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흐르는/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어/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소싯적에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 첫 부분을 읽고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목이 꽃밭이나 정원, 하다못해 잔디밭도 아니고 을씨년스런 ‘황무지’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첫 연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어요. 4월이면 날씨도 풀리고 그나마 살 만한데 왜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일까?

 

 


이어지는 다음 구절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는 그나마 알아듣겠는데 ‘기억과 욕망을 뒤섞는다’니 이것은 또 무슨 뜻이람? 나이가 들어 하늘과 땅 구분 정도는 할 줄 알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그런대로 가늠하게 된 지금에서야 역설적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맥락이야 조금은 다르지만 세월호 참사와 4·19혁명도 4월에 있었네요.

#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

독문학자이며 시인인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입니다. 4·19가 났던 그해 12월 어느 날 해 질 녘 ‘정치와는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젊은 그들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요. 순수, 의리, 사랑, 우정, 그에 더해 가난한 일상과 병역 문제... 세월이 흐르고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만난 아재들의 이야기는 레퍼토리가 다릅니다. 월급, 물가, 처자식, 그밖에 떠도는 세상 이야기 등등.
시인은 역사의 진행 과정에 대한 투철한 참여 의식을 갖고 있던 세대가 나이가 들며 현실에 길들어 가는데 대한안타까움과 회한을 토로합니다. 필자는 4·19가 나던 해 중학교 1학년 철부지였어요. 무언가 수상쩍은 일이 일어났나보다 갸웃했을 뿐 뒤이은 휴교령에 신바람이 났습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깨우치는 역사적 사건’이었음은 나중에야 알았어요. 노년의 중턱에서 서성이는 지금 이 시를 떠올리면 누구에겐가 빚진 것만 같은 느낌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 ‘껍데기는 가라/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참여시, 저항시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신동엽 시인의 시입니다. 동학농민운동과 4·19혁명 같은 역사 속 의미 있는 사건을 떠올리며 반봉건, 반제국주의와 분단극복, 화해의 의지를 결연한 심정으로 노래합니다. 껍데기와 겉치레, 억압과 폭력이 사라지고, 순수함과 정결함만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절절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시이기도 하죠.

 

 


지난 18일 코로나19 사태로 2년여 지속됐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상황이 나아졌다기보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우리를 내쫓고 주인 행세를 하는 무소불위 바이러스에게 애걸복걸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냥 함께 가자고, 제발 우리 좀 끼워달라고.’ 지금도 불안불안하지만 지난 2년여 겪었던 코로나 상황은 돌이키기도 끔찍하군요. 간절함을 담아 시를 패러디합니다.


‘코로나는 가라/델타도 가고 오미크론도 가라/그리하여, 다시 코로나는 가라/향기로운 흙 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감염병 패거리는 가라’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