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금펜(1) [박종진]
우주에서 온 금펜(1)
2022.04.26
힘줄이 보일정도로 너무나 사실적인 이 그림은 1540년 경 마리누스 반 레이메르스발러가 그린 '두 명의 세리(稅吏)'란 작품입니다.
수북하게 쌓인 동전 위에 뭐든 긁어 오겠다는 표독스러운 얼굴에 갈퀴 같은 손을 가진 사람과 장부에 뭔가를 적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이 사람들 위에 저당 잡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촛대와 집문서나 땅문서 같은 문서들까지. 정말 영혼까지 탈탈 털어갈 세금을 징수하는 자들의 방입니다. 특히 왼쪽의 세리가 쥐고 있는 살짝 바깥으로 휘어진 깃펜(Quill)은 너무나 잘 표현되었습니다. 저 그림을 고른 것도 갖고 싶을 정도로 잘 생긴 깃펜이 제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깃펜은 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필기구였습니다. 주로 거위 깃털이 사용되었고, 오른손으로 글을 쓸 때 시야 확보가 좋은 왼쪽 날개가, 그 중 길고 굵은 두 번째, 세 번째 것이 선호되고 비쌌습니다.
순전히 재미를 위한 제 생각이지만 저렇게 잘 차려입은 부자들인 세리의 깃펜이 안으로 휘어지고 가늘고 볼품없는 것이었다면 저 그림에 어울렸을까요? 혹시라도 시대물 영화, 드라마에 깃펜이 나오면 눈여겨봐 주세요. 왕 또는 귀족과 부자들이 안으로 휘어진 것을 쓰거나 하면 그 영화는 별 볼일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어찌됐든 돈이 많든 적든, 글씨를 아는 사람들은 철펜(steel pen)이 나오기 전까지 깃펜을 썼습니다. 철펜이 나온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깃펜은 한두 페이지를 쓰면 그 끝이 닳아 뭉툭해지기 때문에 칼로 깎아 주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불편함? 불편함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1000년도 훨씬 넘게 깃털을 뽑고 뜨거운 모래에 넣고 칼로 깎아 쓰다가 1800년대 갑자기 불편함을 느껴 철펜이 나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지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물결, 공교육의 등장, 종이를 만드는 기계(초지기)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 철펜이 깃펜을 밀어내기 시작했을 겁니다.
철펜은 1700년대 후반 산업혁명의 본고장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철펜은 깎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잉크에 녹슬고 깃펜의 장점인 탄력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펜촉에 기다란 홈을 내어 탄력을 만들었고, 녹스는 것은 대량생산하여 가격을 대폭 낮추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렇지만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녹슬지 않고 무뎌지지 않는 펜촉을 갖고 싶은 욕망이었습니다. 거기에 본능과 같은 사치와 허영도 함께 존재했고 몇몇 사람은 인생을 걸고 여기에 도전했습니다. 1820년대 초반 두 가지 생각은 거의 동시에 등장하였습니다. 하나는 짐승의 뿔, 자라의 등껍질 같은 것을 펜촉 모양으로 만들고 다이아몬드를 붙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금으로 펜촉을 만들고 역시 루비나 다이아몬드를 접착제 등을 이용하여 펜 끝에 물리는 것이었습니다. 잘 되었을까요? 성공했다면 요즘 우리가 쓰고 있는 만년필의 펜촉엔 루비나 다이아몬드가 붙어있을 겁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역시 과학이었습니다. 6개의 백금 중 1803년 팔라듐, 1804년 로듐을 발견한 영국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William Hyde Wollaston 1766~1822)이 1823년 금펜에 자기가 찾아낸 로듐을 붙여 이 문제의 답을 제시합니다.
그렇담 이제 인간의 욕망은 완전히 해결된 것일까요? 해결의 열쇠는 우주에서 옵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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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