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는 나이’ 예찬 [임종건]
‘세는 나이’ 예찬
2022.04.20
‘만 나이’로 나이 계산방식을 통일하겠다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방침은 나로 하여금 나의 생년월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됐습니다.
한국인의 나이 계산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태어난 해에 한 살을 먹고 다음해 첫날부터 한 살씩 더하는 '세는 나이'가 일상생활에서 쓰입니다. 둘째는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연 나이', 셋째는 양력 출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만 나이’입니다.
나는 호적상 1949년 7월 7일 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나의 생년월일은 아닙니다. 생존 시 부모로부터 들어 알기로 나는 정확히 1948년(戊子) 음력 7월 7일(양력 8월 13일) 어스름 무렵(戌時)에 태어났습니다.
호적상에 1년 늦게 출생신고가 된 것은 부모의 소홀 아니면 시대적 현상입니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그 시절, 돌을 넘기도록 생존하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선 출생신고의 기본 조건쯤으로 간주됐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생년월일을 양력 기준으로 1948년 8월 13일로 바꾸지 않은 채로 살아왔습니다. 나이 한 살 어린 것이 손해라고 생각했던 어렸을 적엔 “호적이 잘못된 거야”라고 해명을 했고, 직장에서 정년을 앞두고는 1년 덕을 보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
동갑내기들이 국민학교에 가는데 나만 학교에 못 가게 된 것이 억울(?)해서 부모에게 떼를 써 조기입학하게 된 것과, 조기교육 붐이 한창이던 때 양력으로 4월에 태어난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당기기 위해 음력생월인 2월을 양력인 것처럼 출생신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두 번 나이를 변칙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법을 어긴 것으로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죄의식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세 가지 나이계산법으로 인해 병역법 방역법 청소년보호법 등에서 혼란이 야기됐다면 원인은 행정편의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행정당국이 일찍부터 나이 계산은 만 나이로만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받는다고 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혼란이었습니다.
요즈음 SNS 공간에서 나의 생년월일을 밝혀야 할 때는 ‘1948년 7월 7일’로 올립니다. 나는 이를 제2의 출생신고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나는 생년만 바로잡고 월일은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합니다.
음력 7월 7일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전설의 명절 칠석인 것이 은근히 맘에 들고, 무엇보다 외우기가 쉽습니다. 서양에서도 7은 ‘럭키세븐’이라며 행운의 숫자로 칩니다. 7이 겹친 날이니 나쁠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2022년 4월 현재 호적상으로 1949년 7월 7일 생인 나는 만 나이로 72세 9개월이고, 센 나이, 연 나이로는 74세 9개월입니다. 양력의 실제 나이 1948년 8월 13일로 치면 만 나이로 73세 8개월이고, 센 나이와 연 나이론 75세 8개월입니다.
이처럼 나의 나이는 계산 방식에 따라 뒤죽박죽인데,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이 때문에 큰 불편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주민등록제도가 실시된 이후 나이에 관한 시비는 주민등록증이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경로석에서 나이로 시비가 붙으면 으레 하는 말이 “주민증을 깝시다.”이니까 말입니다. 이 점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의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병역법과 방역법, 청소년보호법 등에서 혼란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매년 1월 1일 5천만 국민이 동시에 생일을 맞는 나라라는 외국인들의 놀림이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혼란을 없애기 위해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인수위의 조치에 나는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센 나이에 대해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된 순간부터 계산한 나이인 만큼 나름의 합리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 살로 쳐준다 한들 어머니 뱃속에서의 10개월을 포함하면 2개월의 시차가 있지만 실제 나이와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존중, 태아존중의 한국적 나이계산법이라고 홍보하면 외국인들이 수긍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논점은 다르지만 지금 미국에선 낙태허용 기준을 놓고 임신후 15주 이전이냐 24주 이전이냐로 시끄럽습니다. 태아의 생명체 인정에 대한 이런 다툼은 자신의 잉태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태아에게 너무 애처로운 일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센 나이 관행을 후진적 퇴행적 관행인 양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복지수급 개시 등 행정상의 혼란이 야기되는 부분은 고치되, 사회적인 서열상의 문제 등 그 외의 부분은 사적인 영역이므로 국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국가가 나의 나이를 실제보다 세 살이나 젊게 해주겠다는 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나, 1949년 7월7일생으로 살다가 죽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양력의 실제 나이인 1948년 8월13일 생으로 호적을 바꾸라고 한다면 나는 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내 또래 사람들 가운데 흔한 일 일듯하여 소개했으나 개인사가 너무 길었다면 독자들의 용서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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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및 사장, 한국신문협회 이사를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퇴임 후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현재 한국 ABC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