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병폐 건설현장 안전사고...보여주기식 처벌 강화만이 능사인가?
부실, 불법, 떼쓰기… ‘건설 비상식’ 근절 못하는 까닭
처벌 강화만으로 건설현장 건전해지지 않아
‘적정 공사기간ㆍ공사비용 산정 의무화’가 핵심
하지만 보여주기식 대책만 양산한 정부와 국회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는 고질적 병폐다. 최근엔 한동안 잠잠하던 건설사의 부실시공 논란까지 겹치면서 ‘안전문제’가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건설현장의 고질병을 ‘처벌 강화’로만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적정 공사기간ㆍ공사비용 산정 의무화’란 근원적인 문제를 뒷전으로 미뤄놓고 보여주기식 대책만 양산하고 있다는 거다.
# 사례❶ 올해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중대한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게 가해지던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면 사업주가 현장의 안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안전 관련 투자도 늘려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법의 제정과 시행을 강력히 요구해온 노동계는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는 효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10대 건설사 중 8곳이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해 사업주의 방패막이로 삼은 데다, 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서다.
# 사례❷ HDC현대산업개발이 위기를 맞았다. 지난 3월 30일 서울시는 HDC현산에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시민 9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에 내려진 행정처분이다. HDC현산이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해체 작업을 해 구조물의 붕괴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1월 발생한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건에도 강력한 처분이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서울시에 ‘가장 엄중한 처분’을 요청해서다.
현행법상 가장 강력한 처분은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이다. 사실상 퇴출 요청인데, 그만큼 처벌 수위가 높다는 의미다. 주목할 점은 HDC현산 사고를 계기로 처벌 수위가 더 세질 전망이라는 거다.
국토부는 3월 28일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시설물 중대 손괴로 일반인 3명 또는 근로자 5명 이상 사망하면 시공사 등록말소와 5년간 신규 등록 제한 ▲5년간 부실시공으로 2회 적발된 시공사는 등록말소와 3년간 신규 등록 제한의 조치가 이뤄진다.
# 사례❸ 최근 건설현장에선 여러 노조가 일자리를 요구하는 통에 공사 진행이 원활하지 않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만 있었을 때는 그나마 관리가 수월했는데, 다양한 노조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관리가 어려워졌다는 거다. 실제로 현장 네트워크를 이용해 새로운 건설현장을 찾아내고, 해당 시공사를 압박해 일자리를 받아내는 게 노조들의 가장 주된 업무가 된 지 오래다.
중요한 건 다양한 노조가 같은 요구를 하다 보니 시공사로선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거다. 노조는 시공사를 협박하기도 하고, 조직폭력배처럼 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심지어 다른 노조원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도 숱하다. 현장에 경찰이 있어도 노조 조합원들에 둘러싸인 경찰들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노조의 불법행위를 막아 달라는 요구가 늘어난 이유다.
그러자 정부는 3월 31일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채용 강요 등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방안’을 심의ㆍ확정했다. 어떤 현장이든 이유를 불문하고 불법행위는 법으로 응징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언급한 세가지 사례는 각각의 사안처럼 보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처벌 강화책만으로 건설현장의 안전을 담보하고, 부실시공을 근절하며, 노조의 떼쓰기와 불법행위를 없앨 수 있을까. 건설업계의 생태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렇다’는 답을 내놓기 힘들 거다. 처벌만으로는 건설업계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근원적 문제란 적정 공사기간(공기工期)과 적정 공사비용(공비工費)의 산정이다.
사실 언급한 세 사례는 적정 공기ㆍ공비 산정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가령,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와 부실시공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시공사가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 단축은 시공사가 이익을 더 챙기려는 꼼수의 결과물이지만, 수주 경쟁 과정에서 낮아진 공사 단가를 메우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애초에 적정 공기와 공비가 정해져 있다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
시공사가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고 공비를 감축할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시공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건설업계 노조가 건설현장을 들이닥쳐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할 명분도 줄어든다.
노조가 무조건 떼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공사가 갖은 현장에서 벌여온 불법행위들을 꼬투리 잡아 신규 현장의 일자리를 보장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껏 시공사에 노조의 협박이 먹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니 시공사가 불법을 저지를 일이 없다면 노조의 협박 무기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처벌 중요하지만 문제 핵심 해결해야
이런 점들을 미뤄보면 중대재해와 부실시공, 노조의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건 사후대책인 ‘강력한 처벌’이 아니라, 사전대책인 ‘적정 공기ㆍ공비 산정’이다. 익명을 원한 건설업계 관계자도 “적정한 공기와 공비를 산정해야 건설노동자가 죽거나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건축물의 품질이 올라가며, 소비자의 권익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에선 건설현장 안전을 위해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는데, 이 역시 ‘적정 공기ㆍ공비 산정’이 전제로 깔려 있어야 의미가 있다”면서 “작업재개 시 작업중지 일수만큼 공기를 조정하지 않으면 또다시 무리한 공기 단축이 일어나고, 중대재해의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적정 공기ㆍ공비 산정’이 건설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는 거다.
‘적정 공기ㆍ공비 산정’의 중요성을 정부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2020년 4월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 이후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공공ㆍ민간 공사 모두 ‘적정 공기 산정을 의무화’하겠다”면서 “무리한 공기 단축 시 형사 처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맹점은 대책 발표 이후 공공공사엔 ‘적정 공기 산정 의무화’가 시행됐지만, 민간공사 현장엔 여전히 적정 공기 산정기준조차 없다는 거다. 이 때문인지 최근 국토부는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인허가 단계에서 적정 공기ㆍ공비를 산정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이 적정성 검토 절차를 신설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법률로 발주자의 ‘적정 공기 산정 의무’를 규정하지 않는 한 적정성 검토절차는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은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적정 공기와 공비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다.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건설안전특별법의 골자는 발주ㆍ설계ㆍ시공ㆍ감리 등 모든 공사 주체들에게 안전책무를 부여하겠다는 거다. 이에 따르면 민간공사 발주자는 공기와 공비의 적정성을 인허가권자(사업계획 승인권자)에게 검토받아야 한다. 건설현장의 안전성이 이 법을 통해 진일보할 수 있다.”
결국 정부만큼이나 국회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거다. 하지만 건설안전특별법은 2020년 9월 발의된 후 1년 반이 넘도록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과연 이번 국회는 건설현장의 안전과 부실시공 근절, 노조의 떼쓰기를 막아낼 수 있는 이 법을 통과시킬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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