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시대를 숙맥으로 살 건가[김홍묵]

 

장수 시대를 숙맥으로 살 건가[김홍묵]


장수 시대를 숙맥으로 살 건가

2022.04.14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 프랑스 작가)는 저서 <웃음>에서 인간의 나이별 자랑거리를 열거해 놓아 폭소를 터뜨리게 합니다.
-2세~똥오줌 가리는 것이 자랑거리
-3세~이가 나는 것이 자랑거리
-12세~친구들이 있다는 게 자랑거리
-18세~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20세~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35세~돈이 많은 게 자랑거리

이들 자랑거리는 50세를 고비로 거꾸로 돌아갑니다.
-50세~돈이 많은 것이 자랑거리
-60세~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0세~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5세~친구들이 있다는 게 자랑거리
-80세~이빨이 남아있는 게 자랑거리
-85세~똥오줌 가릴 줄 안다는 게 자랑거리라고.
삶이란 결국 똥오줌 가리기에서 시작해 똥오줌 가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SNS에 오래전부터 국내에 떠도는 연령대별 공통점도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50대~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지식의 평준화)
-60대~인물이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美醜-미추- 구분 애매)
-70대~돈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돈 쓸 줄 몰라)
-80대~건강한 사람이나 병약한 사람이나(약봉지 속에 파묻혀)
-90대~집에 있으나 산에 있으나(누워 있긴 마찬가지)
나이 들면 학력·빈부 가릴 것 없이 별 차이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누구나 공통으로 누릴 수 있는 ‘평등’입니다.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秦始皇 BC259~BC210)도, 로마제국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100~BC44)도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전국(戰國) 통일의 기초를 닦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는 즐겨 부른 노래 아쓰모리(敦盛) 가사(인생 50년 / 돌고 도는 무한에 비한다면 / 덧없는 꿈과 같도다 / 한 번 태어나 죽지 않는 자 있으랴)처럼 48세에 분사했습니다.

# ‘노인의 지혜’ 더 이상 의미 없어져

인간 수명 50년. 1680년대 영국에서는 50년을 사는 사람이 다섯 명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청(淸)·러시아와의 전쟁 승리에 도취해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끝에 참담하게 패배한 일본의 전쟁 직후 평균수명은 39세였다고 합니다. 영국은 자연 연령이 50세 미만이었고, 3세기 뒤의 일본은 전쟁통에 수많은 국민이 희생된 탓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노인이 되면(50세가 되면) 현명하다는 인식이 하나의 사회규범이었습니다. 책이 없어 지식이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대부분이 문맹이어서 노인을 구전(口傳)과 경험을 통한 지혜가 축적된 세대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깬 것이 기술의 개발과 발달입니다. 인쇄 기술이 출현하면서 인생 50이 더 이상 지혜를 의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지식을 구전하는 전통이 사라진 것입니다.
대신 인간은 획기적 기술 개발에 따라 ‘자동화로 인해 2030년까지 일자리가 8억 개가 증발한다’는 우려나 ‘완벽한 인공지능 개발이 인류의 종말을 부를 수도 있다’(스티븐 호킹)는 경고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또 한 가지, 인간은 20세기를 거치면서 두드러진 영양 공급, 보건 환경 개선과 경이로운 의약의 발전으로 100세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처럼 놀랄 만한 기술 개발 속도와 수명 연장은 평균연령과 기대수명 사이의 간극을 넓혀 현재의 연령 틀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영국인의 예상 평균수명은 52세였으나 세기말에는 80세로 늘었습니다. 2050년엔 일본인의 5분의 1이 80세 이상이고, 중국의 65세 이상 인구가 4억3,800만 명을 웃돌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세계에서 11번째로 깁니다.

 

 


# 기술과 수명 조화된 새 틀 만들어야

기술과 수명에 맞춰 노년을 보람 있게 사는 법은 없을까?
우리는 실제로 수천 년 동안 뇌리에 박힌 수치화된 연령 틀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7세, 형사 미성년자 13세 이하, 투표권 18세, 정년 58~65세, 지하철 무임승차 65세···.
그 틀에 대한 인식이 굳어져 대부분 노인들은 신기술에 외면당하거나 컴맹이라고 자녀들로부터 구박받고, 희망과 용기로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실행하지 못한 채 숙맥불변(菽麥不辨; 콩과 보리를 구별 못함)으로 사는 게 현실입니다.

런던경영대학원 교수인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과 앤드루 스콧(Andrew Scott)은 공저 <뉴 롱 라이프 The New Long Life>에서 장수와 신기술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기술적 창의성은 인간공동체의 개인적·집단적 개선을 위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안해내고 있지만, 그것이 바로 인류에게 이익을 주지는 않으므로 새로운 형태의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사회적 창의성(social ingenuity)‘이 그것입니다.

사회적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첫째 연령 인플레이션(age inflation)을 고려하라.
1922년 영국의 65세 사망률은 오늘날 78세 사망률과 같습니다. 13년의 차이가 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생일 케이크의 촛불 수효와 상관없으니 미래에 대한 투자, 새로운 직능 학습, 새로운 관계 구축을 통해 미래의 플랫폼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둘째 나이에 관한 사회규범을 타파하라.
록 그룹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 멤버들 평균연령이 미국 대법관의 평균연령보다 15세가 높다고 합니다. 나이에 근거한 편견은 앞으로 찾아올 기회를 걷어차고, 다양한 선택지를 제한합니다. “몇 살이나 됐다고···” “이 나이에 무슨···” 식의 규범에 얽매이다 보면 일찍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다단계 삶을 개척하라.
대부분 젊은이들은 20대에 신입사원이 되어 50대 후반이나 60대 중반에 은퇴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성취 속도가 다르고, 사망 연령이 늦어져 퇴직 이후의 경력단절과 재정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업이 신입사원의 진입점(進入點)을 다변화하고, 퇴직 후 경제활동 설계를 지원해야 합니다.

 



사회적 창의성의 개발은 어른에 만족하지 않고 어르신이 되겠다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며 정부, 사회, 기업, 교육계 등 국가적 정책 개발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시너지효과가 납니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인이 편 가르기와 표 모으기에 몰입하기보다 국가의 생존과 백년대계를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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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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