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라면서 학대하는 모진 세상 [신현덕]

 

반려라면서 학대하는 모진 세상 [신현덕]


반려라면서 학대하는 모진 세상
2022.04.01

나이든 여성 한 분이 유모차를 밀고 힘겹게 지하철 문턱을 넘어 들어 왔습니다. 학생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손자를 돌보나 보다 생각했고, 눈감고 ‘멍때리기’를 하고 있는데, 잠시 후 “왜 이래” 하는 약간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손자 때문이려니 하며 눈을 떴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가 유모차에서 머리를 내밀고 내리려 했습니다. 훈훈한 기온인데도 도톰한, 무늬가 예쁜 옷을 입혔고, 머리에는 앙증맞게 리본도 달았습니다. 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어떤 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성이 “안 돼”, “내리지 마”, “들어가”라며 마치 손자를 대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진정되지 않자 끝내는 힘으로 머리를 유모차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개를 안고 전철을 탄 젊은 여성을 만났습니다. 사랑스러운 듯 개를 쓰다듬으며 대답 없는 대화(?)를 독백처럼 나눴습니다. “오랜만에 나오니 좋지?”, “오늘 엄마가 맛있는 것 사줄게”, “백화점에서는 조용해야 해. 알았지” 등등입니다. 옆에 있던 승객이 어떤 질문을 했나 봅니다. 여성이 “입양했어요.”라고 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강아지를 양자로 인정하는 말투였습니다. 필자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노인이 “개자식이군”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웃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시골에서 자랄 때, 마루 밑에 잠자던 강아지는 ‘메리(mary)’나 ‘독구(dog)’였습니다. 그때는 주인이 먹고 남은 것을 모아 개 밥통에 쏟아부었습니다. 없을 때는 개숫물에 쌀겨 한 바가지를 탔습니다. 나가서는 고샅을 마음껏 뛰놀다 길가의 똥을 핥았고, 개들끼리 얽혀 새끼도 낳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애완이 되자 ‘준비’(사업 구상하며 구입했다고) ‘마늘’(마늘 까던 날 데리고 왔다고) 등으로 정식 이름을 지어 주었고, 술상 위의 안주를 얻어먹으며 거실 소파에 올라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최근에는 반려라며 인간과 동등한 위치로 격상시켰습니다. 백화점이나 편의점에는 아예 강아지 먹이는 물론 완구까지도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심지어는 성견(犬)병 예방에 좋다는 보조식품과 영양제를 판다고 TV 광고조차 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42만 3,417가구(2021년)가 개를 키웁니다. 대부분 한 마리이지만 여러 마리를 키우는 경우도 점점 느는 추세입니다. 아마도 개의 총 마릿수는 사육 가구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특이하게도 개 사육에 극히 불리한 조건인 도시지역에서 월등하게 많이 기릅니다. 면 단위 이하에서는 40만 2,487가구뿐입니다. 도시지역에서 사육되는 개는 반인간이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타고, 옷도 입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놉니다. 이웃 개들끼리 어울리려면 주인의 넓은 아량이 필요합니다. 똥과 오줌은 바닥에 깔아 놓은 기저귀에 싸야 합니다. 개인데도 자유롭게 짝짓기도 못합니다. 함부로 짝짓기를 했다가는 주인에게 혼이 납니다. 오줌 냄새로 구역과 경계 등을 표시하는 행동을 아무렇게나 했다가는 주인에게 형편없는 개 취급을 당합니다. 본성을 많이 잃은 개일수록 좋은 개라고 말합니다. 본성대로 자주 행동하다가는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팔려 가거나, 유기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는 길들여진 동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1만5천~2만 년 전부터 인간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동물성 식품을 생산하는 '농용동물' 등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유기축산이 서서히 떠오릅니다. 조건을 맞추기가 엄청 까다로워 국내에선 연간 한두 농가가 겨우 허가받을 뿐입니다. 모든 유기사료는 국내생산이 불가능하며 외국에서 수입합니다. 까다로운 사육장과 사육조건 등도 지켜야 합니다. 합성화합물이 들어간 사료, 항생제, 구충제, 성장촉진제, 호르몬제 등을 일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생활 바닥은 시멘트나 타일같이 미끄러운 재료의 사용(흙바닥이 적합)은 불가하며 일정한 면적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아야 합니다. 활동에 방해되는 것들을 몸에 부착해서도 안 됩니다. 분뇨는 초지나 농경지에 환원하여, 유기 자급사료를 생산하거나 다른 유기작물 재배에 이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나라 반려견은 말만 번지르르할 뿐 유기축산 가축보다도 훨씬 박한 대우를 받으며 재롱을 떨고, 어릿광대 같은 슬픈 삶을 삽니다. 행여나 주인의 과보호와 선입견으로 인해 ‘등겨 먹던 개가 말경(末境)에는 쌀을 먹는 꼴’이 날까 걱정됩니다. 만약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개라면 반려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본성을 존중받는 보살핌에 만족한다고 할 겁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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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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