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울 출신 대통령 [임종건]

 

첫 서울 출신 대통령 [임종건]


첫 서울 출신 대통령
2022.03.18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은 한국정치사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그가 최초의 서울 출신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는 지역적으로는 영남의 절대적인 지지와 서울 충청 강원에서의 승리에 힘입어 당선됐다.

아버지의 고향이 충청, 어머니의 고향이 강원인 그는 그곳에서 유세할 때마다 ‘충청의 아들’ ‘강원의 아들’이라고 했다. 대통령 직선제가 재시행된 1987년 이후 대통령을 내어본 적이 없는 그 지역민들에겐 기분으로나마 고향출신의 대통령으로 삼게 하는 효과가 있음직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지방출신이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황해도, 내각제 하의 2대 윤보선 대통령은 충남 출신이었다. 그 후로 경북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동안 집권하면서 한국에서 지역정치의 폐단이 나타났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잠시 강원 출신의 최규하 대통령을 거쳐, 경남 출신의 전두환 대통령, 경북 출신의 노태우, 경남 출신 김영삼, 전남 출신 김대중, 경남 출신 노무현, 경북 출신 이명박, 대구 출신 박근혜, 경남 출신 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폐단은 깊어졌다.

출신지로만 보면 영남출신 대통령의 집권기간 55년, 전남 출신 5년 이후, 실로 60년 만에 서울출신 대통령의 출현이다. 영남 출신 가운데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출신지에서의 지지보다 호남에서의 절대적인 지지로 당선됐으므로 호남정권으로 간주된다.

 

 


직선제 선거로 당선된 노태우 이후의 대통령들은 대개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전국정치인으로 성장했고, 고향을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대권을 장악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정치궤적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정치 경력이 전혀 없이 27년 동안 검사로 일하다, 2021년 3월 검찰총장 사퇴, 6월 대통령 출마선언, 7월 국민의힘 입당, 11월 국민의힘 후보 선출이라는 일사천리의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불과 1년 사이에 급조된 정치인 출신의 대통령이다.

이번 대선에서 충청권 유권자들은 ‘충청의 아들’을 자처한 윤 당선인에게 3~5%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외가가 있는 강원도에서도 ‘강원의 아들’이라는 그에게 충청도에서와 비슷한 표차로 승리를 안겨주었다. 

 

역동적 제스처로 유세하던 때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대선 때마다 영호남 대결에 신물을 느껴 온 여타 지역 유권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통해 정치적인 소외감을 부분적으로나마 해갈시킨 것은 이번 선거가 갖는 부수적인 효과이다. 주목할 것은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50년쯤 후면 지방인구의 수도권 이주가 집중됐던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개발연대의 이주자들이 거의 퇴장하게 된다. 수도권 인구의 절대다수는 아마도 수도권이 고향인 사람들이 차지하게 된다. 그들의 고향에 대한 인식은 서울에서라면 강북이냐 강남이냐, 구(區) 별로는 종로냐 강남이냐를 따지는 식일 것이다.

그들의 기억에서 부모의 고향은 잊히든지 희미해질 것이므로, 그동안 수도권의 부모세대들이 고향출신 정치인에게 보여주었던 충성심을 그들에게서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들의 투표성향은 자기중심주의에다 지역이기주의가 가미된 것일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의 투표성향이 성 인식문제를 둘러싸고 정반대로 나타난 투표성향이 그런 전조일 가능성이 있다. 주체적 선택을 중시하는 유권자들에게 지역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수도권은 전국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지역 출신들이 섞여 있어 지역색도 희석돼 있다. 전체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함에도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산다. 경기도 인구가 1,300만 명으로 전국 최다이고 서울은 950만 명으로 두 번째다.

두 지역에서 패한다면 다른 지역에서 승리해도 이기기 어렵다. 이번 선거가 초박빙으로 간 것은 두 후보가 서울과 경기도에서 승패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호남이 특정정당에 몰표를 준다 해도, 인구의 크기로 인해 그 효과는 수도권에서 승리하는 것에는 비교가 안 된다.

물론 20대 대선에서 완강한 지역정치 구도는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호남에선 이재명 8 대 윤석열 1, 대구·경북에선 윤석열 7 대 이재명 2로 이전 선거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편향됐다. 대구·경북의 7 대 2는 그곳으로 이주한 호남출신자를 감안하면 호남의 8 대 1과 같다.

이같은 편중 투표가 지속된다 해도 대선의 승패는 수도권과 충청 강원의 3~5%P 차이로 결정된다는 것이 이번 투표가 말해주는 것이다. 호남과 대구·경북의 편중도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부산 울산 경남의 윤석열 5 대 이재명 3의 수준으로라도 낮춰질 때 한국에서 선거 민주주의는 이뤄진다.

수도권을 장악한 수도권 출신 후보가 나와 지방출신 후보와 맞붙는 중앙 대 지방 대결 양상의 대통령 선거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때는 영·호남이 연합해야 수도권 후보와 경쟁이 될 것이다. 바로 그때가 한국 정치에서 영호남 대결이 끝나는 날이다. 한심하고 맥빠지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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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및 사장, 한국신문협회 이사를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퇴임 후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현재 한국 ABC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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