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본새 [노경아]

 

대통령의 말본새 [노경아]


대통령의 말본새
2022.03.15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웠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선거 정국은 늘 시끄럽고 어수선했지만, 2022년은 유독 거칠고 혼란스러웠습니다. 21세기 우리 정치사에 ‘최악의 대선’으로 남을 것입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마구잡이 발언을 들으며 얼굴이 붉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국민을 위한답시고 연단에 선 이들은 하나같이 말본새가 사납고 둔탁할 뿐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달변가일 필요는 없지만 언어 표현력은 좋아야 합니다. 말은 생각의 표출로, 대통령의 말은 국가의 지향점이자 정책방향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대통령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역사에 기록됩니다. 역대 대통령의 특이한 말버릇이 오래도록 이야깃거리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투리로 인해 구설에 오르곤 했죠. ‘이대한(위대한) 국민 여러분’ ‘학실히(확실히)’ ‘씰데(쓸데)없는 소리’ ‘강간(관광)산업’ 등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며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때론 거침없는 화법으로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기도 했죠. 일본을 향한 발언인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가 대표적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비문(非文)투성이였죠. 이른바 '박근혜 번역기'를 돌려야 겨우 해석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우리말로 먹고사는 나는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타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어문 전문가들과 만나 그의 언어에 대해 토론한 적도 여러 날입니다.

 

 



"세계가 참 부러워하기도 하는 그런 경제발전, 이런 데 대해서 이건 반노동적이고 어떻게 해 가지고 잘못된 이런 것으로 자라나는 사람 머릿속에 심어지게 된다." 2016년 언론인 오찬간담회에서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내놓은 박 전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문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대명사가 반복되면서 논점이 사라졌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저 정도는 약과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혼이 비정상” 등 범상치 않은 말을 할 땐 내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죠. 말본새가 엉망인 데다 국민을 향해 거짓말까지 했던 그의 정치 인생 마지막 모습은 비참했습니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니까요.

말본새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말을 하는 태도나 모양새가 말본새입니다. 발음이 [말뽄새]인 탓에 종종 일본어 잔재로 오해받지만 순우리말입니다. 말본, 말버릇과 같은 의미죠. 마음새(마음을 쓰는 성질), 일본새(일하는 태도·북한말)에 말본새까지 좋아야 진정 ‘품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말본새는 곧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특히 세상의 주목을 받는 대통령은 말본새가 고와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도 사회도 집안도 편안합니다. 대통령의 말본새가 거칠고 경박하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의 품격까지도 떨어집니다. 정치인으로서 힘겹게 쌓아온 것들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격언집에 실릴 명언까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프면 자유를 모른다” “한국과 중국 청년은 서로 싫어한다” “아프리카 손발 노동” “민주화운동 수입”…. 선거 과정에서 말실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권좌에 올랐으니 말본새를 꼭 바꾸기 바랍니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책임 있는 말만을 논리정연하게 해야 합니다. 욕심을 낸다면, 유머와 위트를 (과외를 하더라도) 배워 여유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거물 정치인 밥 돌도 “정치에서 웃음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고 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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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 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 담당 연구원, 이투데이 교열팀장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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