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지도자 창섭이 [한만수]
새마을 지도자 창섭이
2022.02.24
선거철이 다가왔습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연이어 있는 해이지만 코로나19가 겹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6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유권자들의 의식이 많아 높아져서 부정 선거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 때가 되면 공공연하게 유권자들에게 선물을 돌렸습니다.
그 시절은 머리 깎는 비용을 아끼려고 삭발과 단발머리를 당연시했었습니다. 장날 옷전에는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 군복들이 널려 있고, 면사무소 앞에는 미국과 한국이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밀가루며, 옥수숫가루, 버터 등을 배급받는 행렬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보릿고개가 되면 초근목피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그림자 한 점 없이 해맑았습니다. 콧물을 훌쩍이며 엿장수를 따라다니고, 동네에 아이스케이크 장사가 오면 군침을 흘리며 아이스케이크를 사 먹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러다가도 이내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괴뢰군!”이라고 함성을 지르며 깡통 차기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자마자 뛰어나가면 배 꺼진다고 호통을 치던 부모님들은 요즈음처럼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12월이 되면 이장이 나누어 주는 국회의원 달력에 풀을 잔뜩 발라 사랑방이나 안방 문 옆에 벽지처럼 붙여 놓습니다. 그 덕분에 국회의원 이름은 외우지만, 그들이 무슨 정치를 하고 있는지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장터에 있는 선술집이며 기생집은 담배 수납을 하는 날처럼 밤이 늦도록 흥청거렸습니다. 술이 마시고 싶으면 몇몇이 술집에 모여서, 동네 구장이나 선거운동원에게 전화해 어서 와서 술값을 내라고 밀린 외상값 받는 것처럼 큰 소리로 요구합니다.
어른들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비틀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쉽게 부를 수 있는 ‘승리의 노래’를 합창하며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단발머리 여자아이들은 막냇동생을 포대기로 등에 업고 리듬에 맞춰 고무줄을 하며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 만이냐"를 즐겁게 불렀습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때 공술만 얻어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장이나 반장은 대낮부터 자전거에 주민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을 싣고 집집이 방문을 합니다. 물론, 이 선물은 누구를 찍어 달라고 주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논밭에서 일하거나, 출타 중이라서 반장으로부터 빨랫비누나 세숫비누를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웃으로부터 반장이 나누어준 선물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반장 집으로 달려가서, 나는 왜 선물을 주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항의를 합니다.
초등학교 동창 창섭이가 학교 가는 길에 어제 선물로 받은 세숫비누로 세수를 하니까, 얼굴이 훨씬 미끈거리거나, 희어졌다고 깔깔거리며 자랑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창섭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웅변을 했습니다. 웅변대회가 다가오면 노을이 지고 있는 냇가 둑이나, 뒷산 누군가의 묘지 앞에서 웅변 연습을 하는 창섭이를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창섭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연사! 목이 터지라 외칩니다” 하고 목에 핏대를 세우면 가슴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감동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6월이 되면 땡볕에 전교생을 운동장에 앉혀 놓고 6·25를 주제로 한 웅변대회가 어김없이 열립니다. 연사가 교단에 올라가서 "이 연사는 공산당을 싫어합니다."하고 목청껏 외치면 선생님들이 일제히 박수를 유도합니다.
이윽고, 웅변대회가 끝나면 교장 선생님은 연단에 오르셔서 공산당을 무찔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끄덕끄덕 졸기 시작할 무렵이면 심사평은 몇 마디로 대충 끝내고, 1등으로 면내(面內) 유지의 아들인 상고머리 학생 이름을 불렀습니다.
“웅변은 창섭이 니가 훨씬 잘했구먼.”
“츠, 기춘이 아부지가 누군지 모르고 하는 말이냐?”
“맞아! 기춘이 아부지가 육성회장이잖여. 니가 양보할 수밖에 없구먼.”
창섭이는 억울함과 분노를 참지 못했는지 숨죽여 울면서 땅바닥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찌르자 공산당!’이라고 쓴 글씨 위로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눈물방울이 글자를 지울 때마다 바짝 마른 땅바닥의 먼지가 폴삭폴삭 일어났습니다.
농고를 졸업하고 고추 농사를 짓던 창섭이는 새마을 지도자가 됐습니다. 창섭이는 새마을 지도자를 하면서 인생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미신타파’라는 명분을 앞세워 고갯마루에 있는 서낭당을 헐어 버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창섭이가 몇몇 새마을 회원들과 서낭당을 부수고 있다는 소문에 동네 어른들이 달려갔습니다. 그중에 창섭이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다른 어른들보다 앞장서서 창섭이 허리띠를 붙잡고 늘어지며 서낭당 철거에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300년이 넘었다는 서낭당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해 창섭이는 충청북도 새마을지도자 협의회에서 협회장상을 받았습니다. 부상으로 화장품과 벽시계 등을 푸짐하게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창섭이네 집에서는 밤이 늦도록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 시절 우수 새마을지도자들을 공무원으로 특채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창섭이가 공무원 임명장을 받던 날 밤 창섭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아들이 서낭당을 부수어 버리고, 벌은 어미가 받았다고 수군거리셨습니다.
공무원이 된 창섭이는 면사무소와 군청을 오가며 열심히 근무를 했습니다. 자식 2명은 퇴직하기 전에 결혼을 시켰습니다. 퇴직 후에는 본업인 농사꾼이 되어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에 남은 동창들의 모임 회장을 하는 창섭이가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창섭이는 본론을 말하기 전부터 모 정치인을 선택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작가란 놈이 그따위로 정치에 무관심하니까 이 나라 정치가 개판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저는 정치적 토론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냥 웃었습니다. 창섭이가 내 말이 그렇게 웃기는 말이냐며 더욱 화를 냈습니다. 급기야는 혼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다 못해 상종도 못 할 놈이라며 악을 썼습니다. 결국 전화를 건 이유도 말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저는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당장 내일 거리에서 창섭이를 만나게 되면, 창섭이가 먼저 술 한잔하자며 제 손을 잡아 끌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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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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