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하이테크 기업과 초격차 압력 [허찬국]

 


거대 하이테크 기업과 초격차 압력
2022.02.14

주식시장에서 결정되는 주가(株價)는 그 기업의 현재와 기대되는 미래의 성과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발행된 주식 수에 주가를 곱한 금액, 즉 시가 총액(시총)은 해당 기업의 가치를 반영합니다. 어떤 기업이 더 가치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며 시총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면 다양한 비교가 가능합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올 1월 7일 기업 시총을 기준으로 세계 1,000대 기업 리스트를 발표했습니다. 작년에 비해 미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비중이 과거 10%대 중반에서 초반으로 준 반면 미국 기업들의 비중이 50%를 넘었습니다. 유럽과 일본의 비중은 계속 하락세입니다.

작년 중국의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세계 10위권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텐센트는 10위의 대만 반도체 회사 TSMC 바로 아래로, 알리바바는 26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는 수년째 10위권 중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근래 중국 정부가 자국 하이테크 대기업들을 옥죄기 시작하며 이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고, 그 여파로 알리바바의 시총은 약 한 해 사이 반 토막 났습니다. 중국 정부에게는 자국 기업들의 세계적 위상보다 공산당의 명령을 잘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합니다.

 

 


석유 매장량의 가치를 반영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3위)와 TSMC를 제외하면 닛케이 순위 10위권은 미국 기업 시총 순위 판박이입니다. 미국의 5대 하이테크 기업들을 시총 규모 순으로 나열하면 애플(1위), 마이크로소프트(2위),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4위), 아마존(5위), 메타(과거 페이스북, 7위)입니다. 애플과 메타의 시총이 각각 약 3조, 0.9조 달러로 이들 간에도 규모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래 국내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러의 시총이 1조 달러를 상회하며 메타보다 순위가 한 단계 높았습니다.

팬데믹 기간 하이테크 기업들의 시총은 크게 늘었습니다. 거리두기 조치에 따른 재택근무, 비대면 상거래, 영상물 스트리밍·게임 등이 현격히 늘며 해당 기업들의 영업 이익이 크게 늘어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지요. 이런 추세는 빈부격차 확대에 일조했습니다. 가격이 오른 주식을 많이 보유한 부유층의 부(富)는 자산 보유가 일천한데 팬데믹으로 소득이 준 계층에 비해 크게 늘었지요.

성과가 좋아 여유로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작년 이 기업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렸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던 2010년대에 각 기업들이 석권했던 분야가 점차 퇴색하며 새로운 분야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선제적 행보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5대 하이테크) 기업들의 전체 매출 중 다른 기업과 중복되는 비중이 2015년 약 20%에서 작년에는 약 40%에 달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의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경쟁력이 월등한 영역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노력이 치열합니다. 2021년 이 기업들의 투자 규모(2,800억 달러)가 미국의 전체 기업투자의 약 9%를 차지했습니다. 5년 전 이 비율이 4%였으니 두 배나 늘어난 규모지요.

이코노미스트지는 두 가지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첫째, 현재의 스마트 장비를 무엇이 대체할지 불확실성이 큽니다. 새로운 기술과 장비 개발에서 뒤처지면 20여 년 사이 기라성처럼 세계 대기업으로 등장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수익의 원천이 되는 구독자 기반을 넓히기 위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애플의 클라우드와 구글의 유튜브를 몇 년째 매달 만 원 정도를 내며 구독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며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컴퓨팅 플렛폼을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구독자 기반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687억 달러를 들여 ‘스타크래프트’로 유명한 게임업체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SNS에 영업기반이 집중된 메타의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틱톡과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득세하고 있고, 사용자들의 정보보호 강화로 맞춤 광고 전략이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짜 뉴스 확산 주범이라는 비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국면 전환을 위해 새로운 메타버스 분야에 명운을 건 듯합니다. 아예 사명(社名)을 ‘Facebook’에서 ‘Meta Platforms’로 바꾸었고 연간 100억 달러를 관련 분야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EU에서 이들 거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우려가 커 각종 규제와 소송이 예상되고 있고,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며 데이터 장사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향후 기술 개발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가 불확실한 가운데 이들 기업 중 그 누구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기에 철저한 각자도생의 처지입니다. 생존하기 위해 자기 분야의 2위 기업과 격차를 크게 벌려야 하는, 즉 초격차(超隔差)전략이 필수적인 것이 작금의 상황입니다.

이 기업들의 피곤한 굿판은 향상된 기술과 제품이라는 떡을 소비자에게 줄 테니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만. 일반 소비자와 달리 나라의 앞날을 책임지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작금의 추세는 냉정히 직시해야 할 세계 경제의 큰 와류(渦流)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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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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