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의 참담한 민주 파괴"
김세동 전국부장
자칭 민주정부라는 문재인 정권에서 삼권분립, 법치주의, 중립적 선거관리 등 민주주의의 주요 원칙을 심각하게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법원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로 들어갔던 판사가 잠시 로펌에 몸을 실었다가 최근 대통령 민정수석으로 영전했다. 요즘엔 행정부 소속인 검사도 이렇게 하지 못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에 자신의 대선캠프 특보를 지낸 사람을 인사청문회도 없이 앉혔던 문 대통령은 임기 3년을 마치고 물러나는 관례에 맞서 비상임 선관위원으로 다시 3년 더 쓰려다 선관위 전체 직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욕심을 접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간사 출신 김영식 전 대통령 법무비서관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김 민정수석은 2019년 2월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3개월 만에 법무비서관이 됐다. 그에 앞서 김 민정수석과 똑같이 국제인권법 간사를 지낸 김형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문 정권이 출범한 2017년 5월 판사직을 내던진 지 이틀 만에 법무비서관에 임명됐다. 여권 사람들이 틈만 나면 비하하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검사 퇴임 후 1년 이내 청와대 임용이 법으로 금지됐는데, 이 정부 들어선 심지어 검사도 아닌 판사의 청와대 파견이 연달아 이뤄진 것이다. 법무부 외청 소속인 검사의 청와대 근무를 금지하면서 판사의 청와대 파견 금지법을 만들지 않은 건, 삼권분립의 한 축인 판사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하수인이 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해주 씨 사례에서 보듯 문 대통령은 법에만 위배되지 않으면 역대 어느 정권도 차마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일을 태연히 해치운다.
법원은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와 친정부적 유튜브 채널의 기자라는 사람과의 통화 내용을 MBC 등이 공개하는 걸 허락했다. 김 씨의 동의를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함정을 판 유도 질문 같은 것으로 얻어낸 녹취의 공개는 불법적이다. 수다와 잡담으로 이뤄진 대화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김 씨의 설익은 판단성 견해가 대부분이다. 이걸 ‘공적 관심사’를 이유로 공개해도 좋다고 결정할 만큼 법원의 타락이 심각하다.
현 정권의 최대 치적이라는 검찰개혁도 참사로 끝났다. 검찰로부터 청와대 고위인사, 판·검사, 국회의원 등에 대한 수사권을 가져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석열 수사’만 하는 ‘정권수호처’가 됐다. 출범 이전부터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능력이 의문시돼 여권은 봐주고 야권은 망신 줄 기구로 예상됐지만, 생각보다 빨리 바닥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여권에 불리한 수사를 하던 검사들을 쫓아낸 자리에 친정부적 검사들을 앉힘으로써 검찰을 완벽히 장악했다. 대장동 수사에서 보듯 부끄러움도, 능력도 잃어버린 것 같은 검찰은 이제 국민적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검찰 수사권을 대부분 가져간 경찰은 공수처 판박이로 독립성과 수사능력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여권의 비리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수사를 통해 밝혀낼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문 정권 입장에서 사법·검찰개혁은 실패한 게 아니라 성공한 것이겠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