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99세 새해를 맞으며[황경춘]
임인년, 99세 새해를 맞으며
2022.01.28
지난해 8월 말 오랜 지병인 신부전의 최후 투병 수단으로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체내에 발생한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임무를 못 하는 콩팥 대신 인공신장을 통해 그 역할을 하는 의학 기술을 투석이라 합니다.
제 친동생과 사촌동생을 투석으로 잃은 쓰라린 경험이 있어 저는 투석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8월 병원에 두 번째 입원을 하여 젊은 여의사가 문진할 때에도 투석은 싫다고 분명히 답했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수족이 퉁퉁 부어 거의 인사불성 상태로 119구급차로 병원 응급실에 이송되어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보통 팔에다 하는 동정맥류 인공혈관 수술은 저의 경우에는 하기 힘들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오른쪽 앞가슴에 투석을 위한 동정맥류 카테터 수술을 하고 이틀 동안 투석을 하였습니다.
퇴원 후 정식 투석 절차를 밟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70년 가까이 살아온 은평구에서 이웃 동네인,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둘째딸이 사는 서대문구 홍은동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거처를 옮겨야 할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제가 투석을 하는 신장센터는 홍제동에 있으며 입원 시설은 없고 월·수·금 일주일에 3번 하루 4시간씩 투석을 받는 시스템입니다. 4~5년 전부터 척추 보행이 불편해진 저는 외출할 때 휠체어 신세를 지고 집 안에서는 보행 보조기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신세였습니다.
과거 25년 전 1남 5녀의 우리 집 대가족이 이사할 수 있는 아파트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고, 그때 2주택 이상 소유자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급히 집을 팔아야 하는 친구가 있어 저는 대지 100평의 분에 넘치는 집을 은행 대출로 구입했습니다.
이렇게 산 집을 훗날 주택 건축회사의 권유로 그 당시 유행하던 4층 다세대 건물로 신축하여 우리는 4층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건축법상 허가 사항이 없어 승강기는 추가로 설치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둘째딸이 사는 집으로 먼저 가는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입원 내내 간병인으로 고생한 둘째딸 집에 먼저 들르는 것이 너무 당연했습니다.
홍은동 아파트에 사는 둘째딸 집에서 저녁을 먹고 침실로 안내되어 들어갔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방에는 환자용 침대가 있었고 거실에는 산소호흡기까지 있었습니다. 모든 장비는 대여받은 것이라 했습니다. 퇴원 전에 아이들끼리 가족회의를 통해 저의 거처를 승강기가 있는 이 아파트로 옮기기로 하고, 필요한 장비들도 모두 준비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아이들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공신장센터 등록도 다 마친 상태로 이틀 후부터는 바로 투석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병상 30개 정도가 구비된 아담한 인공신장센터에 이틀에 한 번씩 아침 9시까지 두 아이의 도움으로 통원하는 것도 4시간 동안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 투석 치료를 받는 것 못지않게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파트 15층에서 휠체어를 탄 채 좁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에 있는 주차장까지 가는 것부터 작은 소동이었습니다. 다행히 투석을 받기 시작한 지 일주일 후에 10kg 가까운 체내 노폐물이 배출되어 몸무게가 40kg대로 날씬하게 변하는 효과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갑자기 몸만 이사한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투병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자유칼럼 등 글방 활동도 일시 중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할 때 가지고 갔던 간단한 생활용품 외에 제 컴퓨터와 책 등 문화생활의 필수품은 아직 옮겨오지 못해 모든 게 불편했습니다. 우선 신문 구독주소를 옮기고 간단한 일상용품은 이틀에 한 번 투석 때 찾아오는 아들 편에 전달받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의 투석 치료를 위해 집안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습니다. 4년 전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살게 된 저의 간호를 위해 녹번동 3층에 살던 넷째딸이 저를 위해 4층으로 옮겨 살다가 이번에는 홍은동으로 저와 같이 거처를 옮기고, 대신 홍은동에 둘째딸과 같이 살던 첫째딸이 녹번동 본가로 옮겼습니다.
이 두 딸도 큰 짐은 거의 원래 살던 집에 그냥 두고 옮겼기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못난 애비 때문에 이런 불편을 참고 사는 딸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뿐입니다.
인생의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의 거의 3분의 1에 가까운 부분을 투석이라는 불가피하나 지루한 시간으로 보내야 하는 백수(白壽, 99세)의 이 몸은 약간 초조한 마음이지만 투석 5개월 차인 현재 많은 효과를 보면서 범띠 해인 새해에 새로운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제가 치료받는 인공신장센터에서도 얼마 전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여 한때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코로나 예방접종을 미처 하지 못한 저도 얼마 전 백신 1차 접종을 받았습니다. 살아 있는 한, 사회에 짐이 덜 되도록 노력하며 저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새해에 모두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