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행정에 책임을 묻자 [고영회]
잘못된 행정에 책임을 묻자
2022.01.18
특허분야에는 특허 권리기간을 연장해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의약품을 개발했더라도 시판하기 전에 안전성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약물이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이니 부작용이 없는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그래서 심각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뒤 약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죠. 이 절차를 밟는 동안에는 특허권을 활용할 수 없으므로, 이렇게 안전성을 확인하는 데 걸린 기간을 최대 5년까지 권리를 연장해 주는 제도입니다. 합리적인 제도입니다.
작년에 개발하여 주사하는 전령(傳令) 알엔에이(mRNA)방식 코비드 백신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습니다. 어떤 반응,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주사를 맞는 게 총체를 생각할 때 더 낫다는 판단에서 백신 주사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주사를 강제로 맞게 하는 정책은 곤란합니다. 사람은 각자 몸 상태가 제각각이어서 일반화한 상태와 같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내 몸에 영향을 주는 일인데, 본인이 결정할 권리를 빼앗습니다. 인권이 짓밟혔니다.
행정법원은 2022.01.17.부터 시행하는 방역지침은 정부가 합리성 없이 개인 권리를 짓밟는 것으로 보고 제동을 걸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망신을 당했습니다. 집행정지를 받고서 ‘보습학원·독서실·박물관·영화관·대형마트 등에서 방역증명 해제’한다고 속보가 날아옵니다. 잘못된 방침을 정한 것부터 빌어야 하는데, ‘스스로 해제’했다고 보냅니다. 해제한 것이 아니고, 집행을 정지당한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즉흥으로 부동산 정책을 내는 바람에 난맥을 넘어 국민의 생활이 헝클어졌습니다. 집값이 오르는 것을 막겠다는 핑계로 대출 규제, 부동산 거래 규제, 부동산 관련 중과세를 졸속 도입하는 바람에 국민의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온 국민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그렇게 쉽사리, 장난스럽게 결정했습니다.
세종 때 세금제도를 고치는 과정에 대해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세종은 조세가 백성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제도를 고치는데 참 신중했습니다. 조세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전국 전현직 관료와 일반 농민 172,816명을 대상으로 여론을 5개월 동안 조사하고, 조사 결과 찬성이 앞섰지만, 수정한 세제를 일부 지역에 시범 시행하면서 보완하고, 마침내 완성했다고 합니다. 공무원은 이런 역사 사례를 공부하지 않습니까?
나는 국가정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모릅니다. 국가정책을 어떻게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지 궁금하여 행정학 원론 책을 펼쳐봤습니다. 국가 정책은 ①정책의제 설정(사회에서 등장하는 많은 문제 가운데 공적인 문제로 취급되어 정부에서 해결하기로 공식적으로 채택되는 과정), ②정책의 결정(정부 기관이 장래의 활동지침을 결정하는 것. 활동지침은 공익을 추구하는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문제의 파악, 정책목표의 설정, 정책대안의 개발과 결과예측, 정책대안의 비교평가와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③정책의 집행(정책의 내용을 실현시키는 과정), ④정책의 평가, ⑤정책의 종결(역효과가 나거나 중복되고 잘못 만들어진 불필요한 정책을 의도적으로 중지하는 것. 정책은 정당성의 상실, 환경엔트로피 저하, 조직의 위축 등의 원인으로 종결된다)이란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국민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적어도 행정의 기본을 공부하고, 행정 원리를 자기 몸에 배도록 단련한 사람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 행정은 저런 기본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합니다. 위 행정원리에 현재 우리에게 떠안긴 제도, 지침, 정책을 대입하여 살펴봅시다. 잘못된 제도를 마련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안 순간 바로잡는 게 정책을 마련한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잘못된 소신을 가진 사람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참 위험합니다. 국가 조직은 이런 것을 견제하고, 억제할 수 있게 짜져 있겠죠? 그런데도 조직이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요? 시민이 일일이 법에 호소해서 풀어야 합니까? 올바르게 제대로 행정하라고 공무원을 뽑았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돈도 꽤 많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합니까?
행정을 맡은 사람이 엉터리로, 제멋대로 제도를 마련해 강요했던 짓을 사후에라도 평가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재앙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 나라 국민으로 살기 참 힘듭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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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