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그 심오함 [이성낙]




반가사유상, 그 심오함
2022.01.04

지난해 11월 12일 국립중앙박물관이 2층에 ‘사유의 방’이란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우리나라의 국보인 두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 78호, 83호)’을 나란히 모셨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전시 공간은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미명(未明)이라고나 할까. 저물어가는 해가 남기는 마지막 노을이랄까. “광활한 우주를 품은 방에 반가사유상 두 점”(조선일보 허윤희 기자)이라는 표현처럼 그 조용한 어둠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종전에는 한 분의 미륵사유반가상만을 영접할 수 있었는데 이제,

반가사유상, 그 심오함 [이성낙]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한 공간에 나란히 전시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불러옵니다. 여기에 더해 방문자는 전시실 입구에서 보살상까지 바닥의 미세한 경사를 감지하면서 작품에 접근합니다. 건축가 최욱(1963~ )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아주 각별합니다.

이번 ‘사유의 방’ 프로젝트는 민병찬(閔丙贊, 1966~ ) 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구상을 실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참조: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2021.12.04.), 허윤희 기자의 인터뷰 르포타지(Reportage)]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영을 맡으면서 반가사유상을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작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반가사유상이 있다고 말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불후의 걸작 ‘모나리자(Mona Lisa)’의 미소를 보려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미술 애호가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민병찬 관장도 그런 마음을 품었을 테지요.

차분히 살펴보면 ‘모나리자의 미소’와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같은 듯하면서도 아주 다른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는 다빈치라는 당대 최고의 명장이 한 정숙한 여인의 ‘미소’를 순간 포착해 묘사한 것으로 서양 미술사에서 최고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모나리자’보다 한참 앞선 7세기 전반의 작품 ‘반가사유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보살이 연화대(蓮花臺) 위에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모습입니다(半跏趺坐). 그렇게 편한 자세로 앉아서 정진하던 중 깨침의 절정인 ‘득도(得道)’의 순간에 아주 옅은 미소가 입가에 퍼집니다.

반가사유상, 그 심오함 [이성낙]


같은 맥락에서, 근대 조각의 시조 로댕(Auguste René Rodin, 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ueur, 1881~1882)’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형적 시각에서 보면, 근육질에 역동적(力動的)인 묘사가 어딘지 ‘사색’ 하면 떠오르는 우리네 정서와는 사뭇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 (Karl Jaspers, 1883~1969)는 1960년대에 일본 교토를 방문했을 때 고류지(廣隆寺)가 소장한 일본 국보 1호 ‘미륵보살반가상’을 보고 찬탄(讚歎)하는 마음이 담긴 귀한 인상기를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완성된 표현이라는 여러 가지 모델을 접해왔습니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 신의 조각도 보았고, 로마 시대에 만든 뛰어난 조각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는 아직 완전히 초극하지 않은 지상적, 그리고 인간적인 것의 냄새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성과 미의 이상을 표현한 고대 그리스 신의 조각을 보아도 지상의 때와 인간적인 감정이 어딘지 모르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표현한 로마 시대 종교 조각에도 인간 존재의 극도로 정화된, 즉 기쁨이라는 것이 완전히 표현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것들은 지상의 감정의 때를 남긴 인간의 표현이고, 인간 실존의 제일 깊은 곳까지 도달한 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고류지의 이 미륵보살에는 그야말로 극도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시간과 속박을 넘어서 달관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몇십 년간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이것만큼 인간 실존의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불상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최고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 그림의 마음씨》 (이우복, 학고재, p.247~249, 2006)

필자가 대학생 시절, 당시 살아 있는 신성(神聖)으로까지 숭앙받던 철학자 야스퍼스가 일본의 ‘반가사유상’을 보고 남긴 글입니다. 야스퍼스가 그 ‘불상’을 본 것은 일본이었지만, 그건 사실상 우리 ‘반가사유상’에 대한 찬사나 진배없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본 ‘목조반가사유상’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조형물로, 아마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제작한 장인 또는 그와 같은 공방에서 일한 장인이 만든 작품이 일본에 전해졌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통론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품에 쓰인 나무가 한반도에서 많이 자라는 적송(赤松)이기에 이 이론에 신빙성을 더합니다.

야스퍼스는 서양, 특히 기독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철학자이기에 그 ‘불상’을 보며 남긴 찬시(讚詩)와도 같은 헌사(獻辭)가 더욱 값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불상’의 조형물이 전하는 심오한 내면세계를 느끼긴 했어도 불교에서 득도(得道)라는 깨침의 순간, 그 솟구치는 조용한 희열까지는 미처 지각(知覺)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하튼 아주 오래전에 완벽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조형하면서 그 심오한 불심(佛心)을 자연스레 표현해낸 예인(藝人)이 있었다는 사실에 머리가 절로 숙여질 뿐입니다. 그래서 “예술은 길다(Ars longa)”라는 말이 회자되나 봅니다.

 


[주해: 1) 문화재청은 국보나 보물 같은 문화재에 ‘지정 번호’를 매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2021년 11월 19일부터 이를 폐지했으나 여기서 언급한 두 반가사유상(국보 78호와 83호)은 명칭의 차별화가 쉽지 않아 기존 표기법을 사용했음을 밝혀둡니다. 2) 필자의 글 <반가사유상, 그 ‘엄지발가락’>(데일리임팩트, 2021.12.29.)과 겹치는 내용이 있음을 밝혀둡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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