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흔드는 중대재해법] 건설업계 비상, 中企는 무방비(2)
[산업계 흔드는 중대재해법] 외국기업의 52% “처벌 땐 사업축소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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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책임질 ‘빨간줄 임원’까지 만들었다
건설사 중대재해법 초비상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중견 건설사 오너들은 줄사퇴해 ‘월급쟁이 대표이사’를 세우고, 대형 건설사들은 사고 때 법적 책임을 뒤집어쓸 안전 담당 임원 자리를 신설했다. 건설업계의 이런 움직임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건설업계가 ‘처벌 1호’가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경영자를 형사처벌까지 하는 법 때문에 각종 ‘꼼수’가 난무하게 됐다”며 “실제 처벌 사례가 생기면, 안전 담당 임원들도 줄사표를 낼 판”이라고 했다.
중소기업 역시 혼란에 빠졌다. 대기업은 최소한의 준비라도 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럴 인적 역량도 자금도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단체별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법 내용이 모호해 중소기업인들에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의 목소리만 듣는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패닉’… ‘빨간 줄 임원’ 신설도
작년 하반기부터 중견 건설업체 오너 경영인들이 법적 책임이 따르는 대표이사직에서 줄줄이 물러나고 있다. 김상수 한림건설 회장, 최은상 요진건설산업 부회장, 태기전 한신공영 부회장, IS동서 권민석 사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중견 건설사들은 경영에서 오너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에 오너가 징역형을 받으면 회사 전체가 마비된다”며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했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 역시 ‘안전 담당 임원’을 신설하거나 각자 대표 체제를 통해 안전사고 책임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삼성물산은 최근 최고안전보건책임자(Chief Safety Officer·CSO)를 부사장급으로 격상해 신규 선임했고, 현대건설·한화건설도 CSO 자리를 신설했다. 호반건설도 아예 지난달 임원 인사에서 안전 담당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CSO가 실질적인 결정권자로서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려는 조직 개편인 셈”이라며 “업계에서는 안전 담당 임원을 나중에 징역을 살 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빨간 줄 임원’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안전 관련 인력을 뽑거나 기술 등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중소 건설사나 하도급 업체는 속만 태우고 있다. 이들은 “안전관리자를 뽑으려 해도 안전기사자격증을 보유한 인력이 많지 않고, 수요가 갑자기 늘면서 몸값도 비싸졌다”고 말한다. 한 중소 건설업체 사장은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안전 장비 착용을 소홀히 하는 근로자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사고 원인과 관계없이 경영진만 처벌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무방비’ 중소기업 “법 내용도 몰라”
작년 12월 15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진행한 중대재해처벌법 설명회에는 온·오프라인을 합쳐서 500명이 넘는 중소기업인이 참석했다. 중앙회 설명회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숫자다. 기업들은 “우리같이 작은 회사도 처벌 대상이 되느냐” “안전 관리 담당자를 고용할 돈이 없는데 어떡하느냐” “법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도대체 어떨 때 처벌을 받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등 질문을 쏟아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곧 시행되지만 법 내용이 모호한 데다가, 중소기업은 사전에 이를 충분히 파악하고 관련 조직을 통해 대비할 역량이 없었던 탓에 질문이 쏟아진 것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각 중소기업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느라 정부 측 참석자들도 진땀을 뺐다”며 “최대한 빨리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어렵사리 행사를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인은 “대기업은 대형 로펌과 협업하거나 내부 법무팀을 통해서라도 대응 방안을 마련해왔지만, 중소기업은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며 “컨설팅을 한 번 받으려 해도 수천만 원인데 어떤 중소기업이 대비를 했겠느냐”고 했다.
인천, 부산 등 지역 상공회의소와 대한건설협회, 대한승강기협회 등이 설명회를 열었을 때에도 회원사들이 대거 참여해 “우리도 처벌받느냐”며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법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많은 업체가 여전히 ‘사고 나면 엄청 강하게 처벌받는다’ 정도로만 알고 있어 답답하다”고 했다.
최연진 기자
이미지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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