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모르는 포식자 '블랑카 수달' VIDEO:Snakes and Even Alligators Are Afraid of This Beast
몸길이 최대 2m에 이르는 족제비과의 거대 괴수
피라냐는 간식, 악어까지 송곳니로 씹어먹어
재규어와 1대1로 붙어도 쉽게 지지않아
지상 최대의 수달인 남미 왕수달이 악어의 한종류인 카이만을 죽인 뒤 잡아먹고 있다.
블랑카(Blanka)를 아십니까?
헐크를 연상케하는 초록색의 몸, 우락부락한 근육질, 이글거리는 눈매와 짐승 같은 이빨이 떠올려지나요? 온몸을 회전하는 공포의 롤킥과 전기뱀장어를 연상케하는 공포의 스파크 공격이 연상되는지요? 고개가 끄떡여지면 당신은 90년대 전자오락실의 최강자 스트리트파이터2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옛 X세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스트리트파이터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꾸준히 등장했으니 많은 분들에게 익숙하겠죠. 남미에 터잡고 사는 초록색 초강력 초인 블랑카. 공교롭게 이 동네에 초월적 능력을 지닌 블랑카 같은 존재가 또 삽니다.
사람이 아닌 족제비계의 울트라 파워 캡짱, 바로 아마존강을 포함한 남미 중북부에 사는 왕수달입니다. 족히 몸길이 2m까지 육박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이 수달은 현존하는 수달 중에 가장 큰, 그것도 압도적으로 큰 몸집을 자랑합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과 돌이라도 빠개서 부술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에서 이미 맹수의 포스가 훅 뿜어납니다. 실제로 왕수달은 북미의 울버린과 함께 족제비가(家)를 파워와 덩치로 호령하는 절대양강이죠.
올해 유독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식지의 파괴와 밀렵으로 급격히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던 이 ‘블랑카 수달’이 아르헨티나의 베르메호강에서도 발견이 됐다는 소식입니다. 베르메호강은 파라과이·볼리비아와도 연결되는 남미의 젖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미 북부에 집중돼있는 왕수달의 영역이 남부 아래로 뻗어가고 있다는 시그널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한국의 수달도 1980~90년대 절멸직전까지 갔으나 지금은 여의도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죠.
스미스소니언 매거진과 가디언 등 많은 영미권 언론들이 지난 여름 이 뉴스를 보도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어요. 생태적 다양성 측면에서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지만, 베르메호강 유역에 터잡고 있던 물고기와 많은 양서류, 파충류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입니다. 식인고기로 유명한 피라냐 등 남미의 괴어(怪魚)들을 포함해 살아 숨쉬는 것은 닥치는대로 잡아서 찢고 씹어먹는 천상 사냥꾼이거든요. 한마리 하루에 무려 16㎏어치 사냥감을 먹어치울 때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일대를 호령하던 남미악어 카이만과 고양잇과 맹수 재규어에게도 숲과 강의 제패권을 다툴 호적수가 나타난 셈이죠.
곰의 법칙과 정반대로 가는 수달의 법칙
족제비는 고기로 연명하는 수많은 맹수들 중에서 가장 널리 뻗어 분포하는 종류입니다. 주택가를 휘젓고 다니던 족제비가 나무로 올라가 담비가 됐고, 숲속과 초원에선 오소리가, 물에선 수달과 해달이 됐죠. 북미와 시베리아의 황량한 툰드라를 호령하는 울버린도 있습니다. 몸의 특정 부위를 극도로 업그레이드한 녀석들은 스컹크이고요. 심지어는 애완동물(페릿)과 인간의 옷을 길러지다 도축당하는 가축(밍크)으로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중에서도 도드라진 적응의 최강력자들은 수달입니다. 수달들도 유라시아·아프리카·남미까지 골고루 뻗어나가서 강과 하천의 최상위 포식자가 됐습니다. 이 점은 곰이랑도 비슷해요.
그런데 곰과 수달은 정반대로 덩치를 키웠습니다. 곰의 경우 춥고 거친 환경에사는 종류일수록 더욱 덩치를 키웠습니다. 그래서 가장큰 북극곰의 몸집은, 동남아 열대우림에 사는 꼬맹이 말레이곰의 두 배가 훌쩍 넘습니다. 그런데 수달은 그 반대예요. 전세계에는 대략 13종의 수달이 살고 있는데, 가장 기온이 더운 남미 밀림과 강에 사는 이들 ‘블랑카수달’, 왕수달이 덩치나, 파워나, 성질머리면에서 동족 최강입니다. 몸길이로만 따지면 남미에 사는 곰인 안경곰(1.8m)보다도 길다랗죠. 여느 수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상궃은 얼굴에 가슴팍에 번져있는 하얀 털 때문에 덩치 뿐 아니라 생김새만으로 다른 수달종들과 구분이 어렵지 않습니다.
별명은 ‘강의 늑대’
아마존 왕수달의 별칭은 강의 늑대입니다. 파워, 성질머리, 생활습성을 보더라도 이보다 어울리는 게 없습니다. 우선 드센 기질과 용맹함, 먹성이 덩치에 비례해 막강합니다. 요약하자면, ‘악어도 씹어먹고, 재규어와도 맞장뜬다’고나 할까요. 남미는 크로커다일·앨리게이터·가비알과 함께 악어 4대 문파를 형성하는 카이만의 본고장입니다. 카이만도 자 자라면 몸길이 5m 훌쩍 넘지만, 나일악어·미시시피악어·바다악어 등에 비하면 왜소하고 힘도 떨어집니다. 성질도 상대적으로 온순한 편이고요. 그래서 왕수달의 저녁거리 목록에는 물고기·뱀·개구리등과 더불어 어린 카이만이 늘 포함됩니다. 서른 여덟개의 칼날가는 이빨과 강력한 턱힘을 가진 이들에게 악어의 비늘은 조금 번거로운 껍데기일 뿐입니다. 어린 악어의 연약한 배를 북 찢어 발긴 뒤 내용물을 으적으적 씹어먹는 거죠.
왕수달이 악어를 잡은 뒤 연약한 배쪽을 이빨로 찢어서 살과 내장을 파먹고 있다./Craig Fast 플리커
왕수달이 강의 늑대인 까닭은 또 있습니다. 늑대처럼 철저히 가족 단위로 생활을 하고 영역 표시도 확실히 하거든요. 많게는 스무마리까지 한 집단을 이루고, 집단과 집단 사이 영역 구분이 확실합니다. 배설물을 포함한 분비물들로 많게는 10㎞까지 이르는 영토를 구분하고, 다양한 울음소리로 소통을 하지요. 이 맹수들이 함께 하니 두려울게 없습니다. 그래서 악어도 씹어먹고, 남미 최대의 고양잇과 맹수인 재규어와도 대적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카이만과 왕수달의 대결은 남미 약육강식의 중요한 서사랍니다. 둘의 관계는 마치 해리포터와 볼드모트와 같습니다.
카이만과 왕수달은 같은 하늘에 있어서는 안될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이야기지요. 어린수달에게 특히 카이만은 최대의 위협입니다. 바로 위의 동영상처럼 이 위협을 선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무리 전체가 협업에 나서 카이만을 제거하는 장면이 종종 벌어집니다. 자신의 몸집이 두 세 배가 넘는 거대한 성체 카이만을 상대로 한 무리의 왕수달들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지구력을 소진시킨 뒤 마릿수로 밀어붙여서 결국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고 맙니다. 배가 뒤집힌 채 목숨을 잃은 카이만은 수달 무리의 저녁밥상 희생제단에 놓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싸움과 치고 빠지기에 미숙한 어린 수달들이 희생되는 일도 적잖이 일어나지요.
정말 무서운 적수는 남미 최대의 고양잇과 맹수인 재규어입니다. 그러나 함께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고 싸우는 이들을 제압하는 것은 재규어로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 1대1로 붙어도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 동영상은 수달이 무리를 짓지 않아도 충분히 전투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리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물가에서 쉬고 있던 수달을 재규어가 덮쳤지만, 끝까지 맹렬하게 사납게 저항하자 되려 겁을 먹고 물러서는 모습입니다. 남미 강가와 정글의 3대 맹수, 왕수달과 카이만, 그리고 재규어의 죽고 죽이는 생존싸움은 이렇게 오늘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성사되기 어려운 드림 매치 ‘울버린 VS 블랑카’
남미에 이처럼 ‘블랑카 수달’이 있다면, 북미 끄트머리에는 울버린이 있죠. 개인적으로 족제비과의 이 두 거대 괴수가 맞붙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곰이랑 착각할 정도로 다부지고 단단한 몸집과 가공할만한 앞발 공격이 일품인 울버린, 그리고 철갑도 뚫을 것 같은 날카로운 송곳니와 날랜몸동작이 타고난 왕수달이 최강자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이는 것은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않는한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죠. 성사된다면 관중들은 아마 초강력 방독면을 착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둘다 파워만큼이나 냄새로도 악명을 떨치니까요. 사실 항문분위에서 나는 강렬한 냄새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건 족제비 무리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울버린은 시체를 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썩은내를, 수달은 비린내를 달고 살다시피하죠.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
Snakes and Even Alligators Are Afraid of This Beast